시를 읽을수록, 시가 좋아질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가 자기들끼리 자기들만 아는 말로 떠드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면 조금 무력해진다. 그리고 씁쓸하다. 내게 아무리 시가 재밌고 좋은 것이어도, 그것이 아주 좁고 작은 세계(아무도 관심 없고, 아무도 모르는) 일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그래도 사실이다. 시는 읽는 사람만 읽는다. 재미도 없
신문이 아직도 객관적인 매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신문은 더 이상 단순 정보 전달자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1차 뉴스를 신문이 아닌 포털 사이트이나 휴대폰 단말기를 통해 접한다. 신문은 그 이해를 돕는 2차 매체다. 신문 독자들은 팩트 그 자체보다 뉴스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분석력을 원한다. 신문의 힘이 팩트 디렉
다른 대학신문들을 앞서가던 중대신문이 어느 순간부터 ‘단순 알림장’ 같은 성격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양캠 경영경제 학생회 통합’, ‘가정교육과 폐지’, ‘계열별 평가’와 같은 중대 사안들을 다루면서 중대신문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다. 단순한 양캠 입장, 계열별 평가로 경쟁력이 높아질 거라는 본부 인사의 의견,
9월 1일, 새 학기는 해마다 돌아오고 월요일마다 중대신문도 변함없이 발행된다. 방학 동안 바쁘게 변했던 학교 소식과 더불어 중대신문이 변했다. 아마 여기까지 신문을 다 읽고 나면 무엇인가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 속에서 중대신문은 잠시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본·분교 통합 승인’이
이번학기 중대신문 개강호에서 총장 인터뷰, 본·분교 통합문제, 멀티캠퍼스 추진 상황의 기사가 돋보였다. 그러나 나의 눈을 번쩍 뜨게 한 것은 출판부에 대한 특집기사와 사설이었다. 나는 아직도 1999년 6월의 작은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대학당국은 재정악화라는 이유로 출판부를 거의 폐지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 이후로 출판부 일을 비전문가 계약직, 한
‘좋아하는 신문’과 ‘좋은 신문’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로운 기사들이 많이 실리는 스포츠·연예 신문에 손이 끌리게 마련이고, 경제신문들은 아무래도 늘상 읽기에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내게 ‘좋은 신문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신문을 다 읽고 나서 스크랩이 많이 쌓인’ 신문이라고 답할지
지난 호 중대신문은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프로농구판을 주름잡는 중앙대”, “20대의 성(性)문을 열다”, “LUCAUS ONE으로 하나 된 중앙인.” 스포츠기획기사에서 사진기획에 이르기까지 온통 ‘청춘아, 즐겨라’로 일괄하며 5월을 배웅하는 듯했다. 나도 지난 주 학생들과 즐거운 함성에 파묻혀 김태우의 노래를 감상하고, 우리 학교에 근사한 노천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