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중대신문은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프로농구판을 주름잡는 중앙대”, “20대의 성(性)문을 열다”, “LUCAUS ONE으로 하나 된 중앙인.” 스포츠기획기사에서 사진기획에 이르기까지 온통 ‘청춘아, 즐겨라’로 일괄하며 5월을 배웅하는 듯했다. 나도 지난 주 학생들과 즐거운 함성에 파묻혀 김태우의 노래를 감상하고, 우리 학교에 근사한 노천극장 하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운동장에 임시 가판대처럼 설치된 공연장이 아니라 맘껏 소리 지르고 즐길 수 있는 우리 학생들만의 멋진 공간. 그러나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2011년 5월의 꽃은 그렇게 무심하게 지고, 내 마음에 허전하게 남는 빈 공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5월에는 5·18 광주항쟁과, 5·2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 있다. 그러나 중대신문에는 그날의 역사적 의미를 되묻는 어떠한 기사도 칼럼도 부재했다. 촛불이 꺼진지 2년도 채 되기 전에 우리는 마음속에 품었던 희망의 불씨마저 스스로 꺼버렸단 말인가?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 자들을 통해 되풀이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약자들에게 가혹했다. 대학평가에 연연하는 우리의 자세는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강박과 불안에 기인하겠지만, 대다수는 늘 ‘루저’가 되는 승자독식의 게임의 법칙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듯하다. ‘루저’는 ‘곧 나의 운명’이 되는 것을 망각한 채. 그럼에도 대학등록금에 관한 토론회를 1면에 싣고 대학평가순위 결과를 2면에 배치, 사설에서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는 정신은 아직 미미하나마 살아 있었다. 이는 아마도 5월의 찬란함 뒤에 묻힌 수많은 소리 없는 아우성들의 우회적 반영이리라. 한 학기 동안 수고한 우리 기자들, 방학동안 더 정진하여 보다 나은 기사로 2학기를 맞이하길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이나영 성평등상담소장·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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