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기록입니다. 기록에는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에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죠. 이번 학기 '후후'에서는 다양한 콘텐츠에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려지는 역사 속 사람들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주 후후의 주인공은 '기생'입니다. 콘텐츠 속 조선시대 기생은 때로는 당당한 종합예술인으로, 때로는 정치 또는 경제적 권력자로 등장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의 실제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는 메
조선왕조 500년 동안 27명의 임금은 왕위를 뺏고 빼앗기고, 국권 찬탈의 위기까지 겪으며 다사다난한 역사를 걸어왔다. 이들 중 아들과의 관계에서 비운의 최후를 맞은 인물들이 있다. 바로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와 광해군의 아버지 선조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비극의 주인공이 돼야만 했을까. 두 아버지는 모두 왕권의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제21대 영조는 잘 알려져 있듯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에게서 태어났다. 게다가 그는 단명한 선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까지 받으며 조선왕조에서 가장 심각하게 정통성을 위협받은 임금 중 한
역사는 기록입니다. 기록에는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에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죠. 이번 학기 '후후'에서는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지는 역사 속 인물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주 후후의 주인공은 '영조'인데요. 조선의 르네상스를 연 유능한 군주에서부터 제 손으로 직접 아들을 내쳐야만 했던 비운의 아버지까지. 미디어와 대중이 기억하는 영조의 모습을 정말 다양하죠. 역사 속 '인물'의 '뒷'이야기, 영조의 이야기를
역사는 기록입니다. 기록에는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에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죠. 이번 학기 '후후'에서는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지는 역사 속 사람들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상인이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때로는 핍박받는 하층민으로, 때로는 민생을 살리는 영웅으로, 때로는 정치권력과 결탁해 폭리를 취하는 악독한 존재로 묘사되죠. 이번주 후후의 주인공은 '상인'인데요. 역사 속 '사람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 사회는 상인을 천하게 여겼다. ‘청빈’을 중요시하는 사대부 입장에서 상인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생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힘쓴 의로운 상인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인물이 바로 ‘거상 김만덕(1739~1812)’이다. 김만덕은 원래 제주 지역에서 이름을 떨친 기생이었다. 이후 기생 신분에서 벗어난 그는 제주도와 육지 물품을 교역하는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제주도의 특산물인 미역, 말꼬리 털, 전복 등을 육지에다
역사는 기록입니다. 기록에는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에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죠. 이번 학기 '후후'에서는 다양한 문화콘텐츠에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려내는 역사 속 인물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주 후후의 주인공은 '명성황후'인데요. 해방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는 유독 극적인 변화의 굴곡을 겪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는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에서 그려내는 그의 모습이 크게 작용했죠. 재평가의 역
역사 속 수많은 인물들이 공을 세우기도 과오를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독 ‘민중의 표적’이 되는 인물이 있다. 명성황후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줄곧 비교 대상이 되는 이유다. 명성황후의 경우 외척 세력을 끌어들여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또한 그는 청과 러시아와 같은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지탄받아왔다. 사치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도박과 밀애를 즐기는 철없고 음란한 왕비로 알려졌다. 두 인물은 오늘날까지도 국가를 몰락에 이르게 한 여인들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토록
내시란 왕의 시중을 들던 거세된 남자를 의미한다. 우리가 그동안 콘텐츠에서 마주한 내시는 움츠린 어깨와 구부정한 허리, 간사한 목소리만 강조되곤 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내시는 왕을 보필하고 궁중 업무를 담당했던 중요한 인물이다. 우리가 내시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깜짝 퀴즈를 마련해 봤다. 지금부터 자타공인 ‘내시 전문가’인 장희흥 교수(대구대 역사교육과)와 함께 그동안 몰랐던 ‘내시’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자.① 내시에게도 아들이 있었을까? “
‘내시’라고 하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푸른 관복을 입고 등장하는 자들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흔히 ‘내시’라고 통칭하는 ‘환관’은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기원전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와 로마제국,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세계 곳곳에 존재했다. 세계 역사상 내시의 활동이 드러난 시기는 기원전 8세기경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대체로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에 손준식 교수(역사학과)는 내시의 탄생이 전제군주제의 등장과 함께했다고 말한다. “고대 국가에서
여러분, 『별주부전』 이야기 아시죠? 병든 용왕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간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토끼가 육지에 간을 빼놓고 왔다는 거짓말로 용궁을 빠져나온 이야기죠. 판소리로, 전래동화로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는 이 이야기의 발단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642년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최고 권력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같은 해 신라는 백제의 공격에 시달리고 있었죠. 당시 신라 귀족이었던 김춘추는 고구려를 방문해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연개소문은 도리어 조령과 죽령 이북 땅을 내놓으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결
역사는 기록입니다. 기록에는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에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죠. 이번 학기 '후후'에서는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역사 속 인물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역사 속 '인물'의 '뒷'이야기, 이번주 후후의 주인공 연개소문을 만나봅시다.오는 19일 영화 이 개봉한다. 에서는 당태종 침략에 맞서 싸운 안시성 성주 양만춘 장군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안시성 전투 총괄 책임자는 따로 있다.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