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을 둘러싼 환상, 환상보다 아름다운 실상
  • 박수정 기자
  • 승인 2018.11.26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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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입니다. 기록에는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에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죠. 이번 학기 '후후'에서는 다양한 콘텐츠에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그려지는 역사 속 사람들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이번주 후후의 주인공은 '기생'입니다. 콘텐츠 속 조선시대 기생은 때로는 당당한 종합예술인으로, 때로는 정치 또는 경제적 권력자로 등장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의 실제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역사 속 '사람들'의 '뒷'이야기, 기생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KBS 2TV 드라마 '황진이' 중. 기생 황진이가 무용 솜씨를 뽐내고 있다. 드라마 '황진이'는 문예와 가무에 출중한 예술인으로서의 황진이 모습에 초점을 맞춰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KBS 2TV 드라마 '황진이' 중. 기생 황진이가 무용 솜씨를 뽐내고 있다. 드라마 '황진이'는 문예와 가무에 출중한 예술인으로서의 황진이 모습에 초점을 맞춰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우리는 기생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재생산되는 판타지와 이면의 실상

  화려한 가채와 붉은 입술, 매혹적인 몸짓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춤사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기생의 이미지다. 이처럼 기생은 우리에게 성(性)적인 모습으로 남아있다. 국가에서 체계적 훈련을 받고, 천민이지만 풍류를 즐길 줄 알았던 종합 예술인 기생이 왜 성적으로만 기억되는 것일까. 기생을 가리고 있는 환상의 정체를 밝힐 시간이다. 조선 시대부터 구한말까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귀족의 머리, 천민의 몸

  기생은 각종 유흥의 장에서 춤, 노래, 풍류 등으로 흥을 돋우던 여성이었다. 기생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그 제도가 발전해 우리 역사와 문화 일부로 자리를 굳힌 것은 사실이다.

  조선 시대 기생은 관청에 소속돼 관기(官妓)라 불렸다. 선발 기준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관노비 가운데 어리고 영리한 여자아이들을 뽑아 교육해 관기로 길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들은 주로 궁중에서 공연하거나 외국 사신 및 변방 군사를 접대했다. 신분 계급상 최하위층에 속하는 천민 여성이지만 공식 석상에서 상류층 남성과 교류하는 직업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기생 교육기관인 교방(敎坊)에서 시, 그림, 가무, 음악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았다.

  서지영 교수(브리티시컬럼비아대 아시아학부)는 기생의 다양한 특성 중 어느 부분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조선 시대 기생의 삶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관청에 소속된 천민 신분이었기에 예속이 많았어요. 정실부인도 될 수 없었죠. 하지만 지적·예술적 능력을 바탕으로 당시 다른 계층 여성이 경험하기 힘든 기회를 많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드라마 ‘황진이’에서 잘 드러난다. 작품 속 기생 황진이는 비록 천민이었지만 학식과 예술성을 두루 갖췄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선비와 대등한 위치에서 교류했으며 여성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신분 차별에 맞서나간다. 덕분에 그는 조선 시대 여성으로는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실제로 기생은 엄격한 가부장제 아래 대문을 나설 수 없었던 양반집 여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각각 영화 '간신', 영화 '관상', 드라마 '대군 - 사랑을 그리다' 중. 콘텐츠 속 조선시대 기생은 임금의 눈에 들어 권력의 중심에 서기도, 경제적 수완을 가진 객주가 되기도, 양반 남성의 술시중을 들기도 한다.
각각 영화 '간신', 영화 '관상', 드라마 '대군 - 사랑을 그리다' 중. 콘텐츠 속 조선시대 기생은 임금의 눈에 들어 권력의 중심에 서기도, 경제적 수완을 가진 객주가 되기도, 양반 남성의 술시중을 들기도 한다.

 

  폭력적 판타지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기생이 ‘매춘 여성’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돈을 받고 성적 상대가 돼 주던 ‘창기’와 관기는 엄연히 달랐다. 기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구한말 기생제도의 변화와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적 시각에 근간을 두고 있다.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자 관청에 소속됐던 기생들 역시 해체됐다. 관기 제도가 폐지되면서 관기와 창기의 소속 구분이 사라지자 둘의 구분이 다소 모호해졌다.
매음을 기반으로 하는 창기와 기예를 뽐내는 기생은 분명 다른 존재였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생과 창기를 헷갈리는 등 기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장유정 교수(단국대 교양학부)는 이를 창기와 기생을 혼용하는 관습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러 선행 연구에서 창기와 기생을 혼동해 사용했어요. 이제는 창기와 기생을 명확히 구분해 예술인으로서 기생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할 필요가 있어요.”

  기생을 매춘 여성으로 보는 시각은 젠더식민주의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서지영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기생이 생존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가 기생을 선발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어요. 관기가 해체되면서 기생은 술과 요리를 파는 요리점에서 주로 일하게 됐죠.”

  일제강점기 당시 요리점에서 일하던 기생이 주로 상대했던 대상은 일본인 남성이었다. 지배계층이었던 이들은 소설 등을 통해 식민지 여성인 조선 기생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에는 식민주의와 젠더관계에서 우위에 섰던 자들의 시각이 투영됐다.

  「표상, 젠더, 식민주의 : 제국 남성이 본 조선 기생」 (서지영, 2009)에서 식민지 여성에 대한 일본 남성의 시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당대 일본인 남성이 재현한 기생 이미지는 식민지에 대한 ‘이국취미’ 그리고 제국 남성의 식민지 여성에 대한 성애적 판타지와 긴밀하게 연계된다.”

  당시 일본 남성에게 미지의 영역인 식민지 여성은 신비로운 존재였다. 일본 남성은 기생을 미지의 식민지 여성으로 설정해 그들의 성적 판타지를 투영했다. 식민지에서 신비의 존재와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눈다는 판타지는 그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조선’스럽고, ‘여성’스러운 것을 찾고자 했던 일본 지배층 남성이 남긴 기록은 현재 우리가 기생을 인식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영화 '해어화'에서는 일제강점기 '권번'에서 양성된 기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해어화'에서는 일제강점기 '권번'에서 양성된 기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조 엔터네이너

  1943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해어화>에서는 조선 마지막 기생 ‘소율’이 대중가수가 되려 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근대 대중문화의 중심에는 기생 가수들이 있었다. 왕수복, 선우일선, 김복희 등 기생이 대중가수로 활동해 인기를 끌었다. 기생은 기존에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았기에 더 쉽게 음반을 내고 대중 가수로 활동할 수 있었다.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이들이 인기를 끌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당시 새로운 문화 주체로 떠오른 기생은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했다. 「1930년대 기생의 음악 활동 일고찰」 (장유정, 2004)에서는 기생과 우리나라 음반사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볼 수 있다. “1907년에 미국 컬럼비아에서 첫 상업 음반을 제작할 당시에도 기생이 음반 녹음에 참여하였다. 특히 잡가와 판소리와 같은 전통가요가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전통가요에 특출한 기생들이 음반녹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환상과 실상

  기생에게 예술인으로서의 면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현규 교수(다빈치교양대학)는 일제강점기 기생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한다. “당시 기생은 우리 전통문화 계승자였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거나 독립운동을 한 의기(義妓), 사회계급 여성 운동에 매진한 사상기(思想妓)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친일파에게 ‘기생에게 줄 돈이 있으면 나라 위해 피 흘리는 젊은이에게 주라’고 말한 조선 의기 산홍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고 전국 각지로 퍼지자 진주, 통영 등의 기생들은 독자적으로 만세 시위를 통한 항일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생은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로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기생은 천민이지만 교양인으로서 대접받는 특이한 존재였다. 화려한 가채 안에만 가두기에는 너무나 입체적인 인물상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러한 특수성은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한 판타지로 재현됐다.

  서지영 교수는 오늘날 기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 대해 제언한다. “기생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대중문화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어요. 그만큼 복합적인 여성 인물군이라고 볼 수 있죠. 기생에 대한 판타지와 그 이면에 있는 실상을 교차해서 읽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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