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가려진 ‘상(商)’ 을 보다
  • 박수정 기자
  • 승인 2018.11.1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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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입니다. 기록에는 '관점'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기에 역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기도 하죠. 이번 학기 '후후'에서는 다양한 시선으로 그려지는 역사 속 사람들에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상인이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때로는 핍박받는 하층민으로, 때로는 민생을 살리는 영웅으로, 때로는 정치권력과 결탁해 폭리를 취하는 악독한 존재로 묘사되죠.  이번주 후후의 주인공은 '상인'인데요. 역사 속 '사람들'의 '뒷'이야기, 상인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극중 인물 '천봉삼'이 '천가덕장'의 객주인이 돼 동료 상인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출처: KBS2TV [장사의신 - 객주 2015]
극중 인물 '천봉삼'이 '천가덕장'의 객주인이 돼 동료 상인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출처: KBS2TV [장사의신 - 객주 2015]

농본주의 사회에서 천시된 삶
중세 사회에서 가장 근대적인 삶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긴다’는 속담이 있다. 봉변당한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엉뚱한 곳에 가서 화풀이할 때에 쓰는 말이다. 이 속담은 조선시대 백성이 위세 높은 종로 시전 상인에게 곤욕을 치러도 아무 말도 못 하다가 한강 변에 있는 난전 상인에게 화를 푸는 모습에서 유래했다. 짧은 속담 하나에도 조선의 상거래 문화가 드러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겼던 조선 ‘고객님’을 응대하는 판매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조선 시대 상인을 만나보자.

  사농공상의 나라

  조선에는 ‘사농공상’이라는 관념이 존재했다. 법제적인 개념은 아니었지만, 농업보다 상업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조선은 나라의 근본을 농업에 뒀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에서 물자의 교환으로 이뤄지는 상업은 육체로 노동하는 농업에 비해 멸시받았다.

  공창석 원장(매경안전환경연구원)은 조선 사회가 ‘돈’을 천시했다고 말한다. “양반들은 장사에 이용되는 돈이 더럽다고 생각했어요. 때문에 자신이 돈을 직접 만지지 않고 젓가락으로 집거나 하인에게 시켜 집게 했죠.”

  게다가 조선은 건국 초부터 통상수교를 거부하며 중국과 일본 두 나라와만 한정적으로 교류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자본주의 열강이 통상무역을 요구해오자 더욱 완고한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조선 시장의 규모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상인 출신의 대부도 등장하기 힘들었다. 조선 부자의 상징, ‘경주 최 부잣집’도 넓은 논밭을 가진 만석꾼 집안이다. 조선시대 부자들은 대부분 토지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 사회가 상인과 상업을 필요로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김동철 교수(부산대 사학과)에 따르면 양반이 아예 상업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양반이 직접 상행위를 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자신의 하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상업에 참여했죠.”

  그들만의 리그

  대표적인 조선 상인으로 종로의 시전 상인이나 한강 주변 난전을 떠올리기 쉽다. 이들은 일정한 곳에 정착해 장사하는 상인이다. 그러나 ‘상인’이라 하면 이리저리 이동하며 장사했던 보부상도 빠질 수 없다. 목화솜 두 개가 꽂힌 패랭이, 긴 지팡이를 짚고 봇짐을 멘 모습.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보부상의 이미지는 그들이 조직을 이룰 수 있는 근간이 됐다. 보부상 특유의 복장을 통해 서로를 알아보며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부상들이 결집해 만들어진 공식적인 조직이 존재했다. 이는 보부상 대표 ‘접장’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연결된다. “보부청 신임 도(道)접장을 손에 넣으시면 20만 8도 보부상들을 손에 넣게 되는 겁니다.” 드라마 <장사의 신-객주 2015>의 대사 일부다. 해당 드라마에서도 나타나듯 접장을 중심으로 한 보부상들의 연대는 매우 끈끈했다.

  오석민 소장(지역문화연구소)은 이들의 연대 의식을 보여주는 일화를 소개한다. “순조실록에 따르면 한 보부상이 주민에게 맞아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해요. 이때 사망한 보부상의 형이 동료를 모아 옥문을 부수고 살인자를 끌어냈다는 기록이 나오죠. 보부상 동료를 쉽게 동원할 수 있는 탄탄한 조직 체계가 있었던 겁니다.” 후일 흥선대원군은 보부청이라는 기구를 설립해 보부상의 체계적인 관계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MBC 드라마 [군주 - 가면의 주인] 중. 조선 최고의 막후세력 '편수회'가 조선 팔도의 물을 모두 사유화해 돈을 받고 팔고 있다.
MBC 드라마 [군주 - 가면의 주인] 중. 조선 최고의 막후세력 '편수회'가 조선 팔도의 물을 모두 사유화해 돈을 받고 팔고 있다.

조선에도 정경유착이 있었나

  그렇다면 이처럼 체계적인 조직을 통해 막강한 부와 권력의 축으로 성장한 상인 집단은 없었을까. 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에서는 물을 사유화해 국가를 주무르는 상인조직 ‘편수회’가 나타난다.

  그러나 상업이 천대받던 조선에서 왕권을 위협하는 거대한 상인 조직이 성장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정치 · 경제 집단이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교환하는 ‘정경유착’ 역시 조선 내에서는 무리가 있었다.

  다만 정치 권력이 상인 층의 도움을 받은 몇 가지 일화는 전해진다. 김동철 교수는 정조도 상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정조가 수원 화성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에 가려면 한강을 지나야 했어요. 그 당시는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한강에 있는 경강상인들의 배로 다리를 만들었죠.” 경강상인들은 그 대가로 삼남 지방에서 세금으로 조달되는 곡식 운송권을 받아 특권을 누렸다.

  오석민 소장은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가 대피할 수 있던 배경에 보부상 조직이 있었다고 말한다. “보부상 출신의 이용익이라는 인물이 명성황후가 장호원까지 대피하는 것을 도왔다고고 하죠. 약 120km의 거리를 이동해야 했는데 자신이 몸담고 있던 보부상 조직의 네트워크를 이용했다고 보는 게 상식적입니다.”

  근대를 가져온 사람들

  조선 후기의 상인들은 예술, 교육 등 다양한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김동철 교수에 따르면 상인들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문화 발전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김한태라는 역관은 서양의 메디치 가문처럼 김홍도의 예술 활동을 지원했어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와 여러 지리서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 상인 층의 자금에서 나왔다는 견해도 있죠.”

  행상들의 활동이 문학 작품에 반영된 사례도 있다. 조선 후기 사설시조 「댁들에 동난지이 사오」에는 간장게장을 구매하는 손님과 장사꾼의 대화가 생생히 드러난다.

  오석민 소장은 상인 출신 인물이 학교를 세운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3·1운동을 주도하고 오산학교를 세운 남강 이승훈 선생도 보부상 출신이에요. 오산학교는 이후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했죠.” 또한 앞서 언급했던 이용익은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이처럼 일부 상인은 교육진흥에 힘썼다.

  조선과 ‘부’의 아이러니

  농업을 바탕에 두고 최소한의 상업으로만 국가 재정을 탄탄히 하려던 조선의 농본주의는 결국 상공업이 발달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공창석 원장은 조선이 상업을 배척한 것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원래 한반도는 바다를 끼고 있는 지형 특성상 예전부터 무역을 중시하고 상업이 성행했어요. 그러나 조선은 상업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사농공상 관념을 바탕으로 한 ‘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자본주의 시대에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현재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아주 오랜 상인이나 기술자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공창석 원장은 경제 성장에서 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대한 ‘부’를 너무 악하게 보는 측면이 있어요. 부를 키우고 시장을 키워야 나라의 경제적 기반이 안정적으로 마련될 수 있죠. 국가의 경제기반을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전통 기업이 다른 나라에는 많습니다.”

  ‘상인’이라는 조직은 한반도 중세에서 가장 근대적이었기에 배척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려졌던 조선의 상(商)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큰 상(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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