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위에 꽃피운 독창적 감성
절제된 슬픔에 침잠한 아름다움

가을의 들국화를 닮은 음악가가 있다. 요하네스 브람스, 그의 음악은 화려하고 귀를 사로잡는 선율은 아니지만 은은하고 그윽한 방식으로 쓸쓸한 가을 녘의 향수를 자극한다. 당대 음악가들이 브람스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3B’라 불렀던 만큼, 브람스가 낭만주의 음악사에 남기고 간 잔흔은 여전히 고유한 향을 풍기고 있다. 고전적 형식미에 바탕을 두고 그 위로 낭만적 어법을 결합했던 ‘고전적 낭만주의자’ 브람스의 음악 세계를 들여다봤다. 

   고독한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 

사진출처 The Guardian
사진출처 The Guardian

 

  183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브람스는 유년 시절부터 음악적 소질을 드러냈다.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그는 11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지만 가난했던 가정 형편 탓에 어린 시절부터 식당과 술집에서 연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브람스가 보낸 유년기와 신중하고 내향적인 성정을 고려하면 그의 실내악 작품 속 침잠된 우울과 멜랑콜리의 정서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17살의 브람스는 당시 유명한 지휘자였던 요제프 요하임의 소개로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을 만난다. 브람스의 초기 작품들을 접하고 깊이 감동한 슈만은 1853년 <음악신보>에 브람스를 소개하는 글을 기고하며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슈만의 전폭적인 지원과 믿음 아래 브람스는 <피아노 소나타 제1번 C장조>를 발표하며 자신의 음악 세계가 시작했음을 알렸다. 해당 작품은 초기작임에도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오희숙 교수(서울대 음악학과)는 <피아노 소나타 제1번 C장조>가 베토벤의 형식적 전통을 계승하되 표현 방식에서 낭만주의를 결합하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표방한다고 설명했다. “<피아노 소나타 제1번 C장조>는 명확한 형식 구성과 3악장에서의 론도 형식의 고전적 구조를 특징으로 합니다. 전반적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계승하지만 표현 방식과 주제의 음향에 있어서는 더없이 낭만적인 곡이라 할 수 있죠.” 

고전과 낭만 사이, 시대를 엮는 브람스의 음악 

  <피아노 소나타 제1번 C장조>를 시작으로 브람스는 19세기에 만연하던 낭만주의 사조와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베토벤과 슈만의 음악 사조를 이어받은 그는 형식적인 부분에서는 고전주의를 유지하되 낭만주의적 화성 진행과 서정적 멜로디를 결합해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처럼 ‘신고전악파’로서의 행보를 굳건히 한 브람스가 절대음악의 가치를 중시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브람스의 절대음악 철학은 순수음악에서 벗어나 모든 예술을 하나로 모으고자 했던 ‘표제음악’의 이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곧 19세기 독일 음악계에서 가장 주요한 대립으로 꼽히는 절대음악의 브람스파와 표제음악의 바그너파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실내악과 교향악 등을 주로 작곡하며 정통과 고전미가 깃든 형식을 고수한 브람스와 달리 바그너는 교향시나 오페라를 내세우며 음악을 중심으로 예술을 합일시키고자 했다.

19세기 독일 음악계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절대음악과 리하르트 바그너의 표제음악 진영으로 나뉘었다. 두 진영은 낭만주의 시대 음악에 있어 각각 전통과 혁신을 표방했다. 사진출처 a앨범 Brahms: Serenade No. 1/Wagner: Siegfried Idyll
19세기 독일 음악계는 요하네스 브람스의 절대음악과 리하르트 바그너의 표제음악 진영으로 나뉘었다. 두 진영은 낭만주의 시대 음악에 있어 각각 전통과 혁신을 표방했다. 사진출처 a앨범 Brahms: Serenade No. 1/Wagner: Siegfried Idyll

 

  표제음악과 절대음악 사이 두 예술가의 치열한 대립은 단순한 음악적 견해차를 넘어 예술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접근 방식을 도출해 냈다. 『스토리 클래식』의 저자 오수현 작가는 낭만주의 시대의 전통을 표방한 브람스와 혁신을 내건 바그너의 대립이 갖는 의의를 전했다. “브람스는 독일 음악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로 평가되는 반면 바그너는 기존의 음악적 전통을 과감하게 깨트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진보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어요. 브람스가 전통의 틀 내에서 최고의 완성도를 추구했다면 바그너가 제시한 음악적 방향성은 후대 작곡가들에게도 계승되면서 20세기 무조음악의 출현으로 이어졌죠.” 

  음악의 본질적 가치와 순수성에 중점을 둔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적 우상이었던 베토벤의 음악을 철저히 연구하며 그를 넘어서고자 했다. 스스로를 ‘베토벤의 후계자’라고 인식하며 그의 위업을 계승하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람스 평전』의 저자 이성일 작가는 교향곡의 방향성을 준거로 브람스가 베토벤을 계승했지만 결코 그의 아류가 아님을 강조했다. “베토벤과 브람스 모두 절대 기악 형식인 실내악과 교향악의 탁월한 경지를 개척했습니다. 그러나 브람스 교향곡만이 갖는 색채는 분명한데요. 극적인 표현성에 주력한 베토벤과 달리 브람스는 크게 부풀리는 악상보다는 깊이 천착하는 것을 선호했죠. 때문에 그의 음악은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 교향곡이더라도 섬세하고 내밀한 기조로 흘러가기 때문에 마치 실내악을 듣는 듯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어쩌면 브람스가 추구했던 절제와 균형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교향곡에서 그대로 현현됐다고도 볼 수 있죠.” 

  거장의 존재에게서 오는 압박 속에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은 탄생했다. 장장 21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완성된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 C단조>는 베토벤이라는 거장을 의식했던 그의 음악적 고뇌에 부응하는 결실이다. 비장하고 장대한 분위기의 서주로 곡의 포문을 여는 제1악장에 이어 제2악장에서는 3부 형식의 불규칙한 멜로디와 반주가 제3악장까지 부드럽게 진행된다. 작품의 진미라 일컬어지는 제4악장에서는 장렬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보였던 서주와 달리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연상시키는 선율의 흐름으로 변주된다. 오수현 작가는 제4악장이 어둠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영웅적 서사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향곡 제1번 C단조>는 불길하면서도 느린 서주를 주도하는 C단조(고난)로 시작해 C장조(승리)로 끝나는 조성의 전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결 부분에서는 트럼본, 바순의 웅장한 선율을 음악적 장치로 삼아 가혹한 운명을 극복한 인간의 영웅적 서사를 드러내고 있죠. 이는 베토벤이 그의 교향곡 5번과 9번에서 담아냈던 메시지와 동일한데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베토벤의 계승자라는 선언이 이 작품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위로한다는 것은 

  생의 황혼에 다다르자 브람스의 음악은 지난날을 향한 회고와 고독 그리고 애상을 가득 머금었다. 브람스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교향곡 제4번 E단조 Op.98>이다. 해당 작품에서는 스승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을 사랑하다가 일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브람스의 고독과 통탄의 정서가 묻어난다. 브람스가 겪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은 그가 해당 작품의 자필 악보 1악장 첫머리에 써넣었던 ‘오, 죽음이여, 죽음이여. 이렇게 고독한데,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교향곡 제4번 E단조 Op.98>을 마지막으로 브람스의 생애는 막을 내렸지만 그의 음악이 남기고 간 향기는 여전히 짙은 농도로 회자되고 있다. 오희숙 교수는 브람스의 음악이 오늘날 음악 철학의 본보기로 자리하고 있기에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다고 전했다. “브람스 음악 특유의 실내악 구조와 예민한 감수성은 20세기 음악 작곡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브람스가 추구했던 형식적 균형감과 절제된 감정 표현은 내적 요소를 중시하는 현재의 음악 경향에서 중심 모델로 기능하고 있죠.” 

  브람스는 생을 마감하기 전 음악가 아벨과의 대담에서 ‘음악은 내면의 영혼의 에너지를 비추는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여전히 브람스의 음악에 담긴 고독과 우수는 우리의 내면을 조심스레 두드린다. 내면 깊은 곳에 외로움이 자리하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오늘도 브람스의 선율은 작고도 깊은 울림을 주며 우리의 마음을 감싸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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