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에 전해지는 유명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정신병에 시달리던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과 온전히 그를 위해 삶을 헌신한 피아니스트 클라라 조제핀 비크 슈만, 클라라를 지켜보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간 슈만의 제자 요하네스 브람스가 그 주인공이다. 헬마 산더스 브람스 감독의 영화 <클라라>는 세 음악가 사이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그린다. 이들의 사랑이 만들어낸 선율의 모습을 영화와 함께 들여다봤다. 

  내겐 너무 아름다웠던 당신 

  영화는 클라라가 연주하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와 함께 시작된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아내 클라라를 위한 작품이었다. 작품의 주제는 ‘C-B-A-A’ 코드로 전개되는데 이는 아내 클라라의 별명인 ‘키아라’에서 따온 이니셜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이를 자신의 음악에 새겨넣을 만큼 열렬한 슈만의 사랑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클라라가 초연하는 <피아노 협주곡 A단조>의 선율은 객석에 가득 울려 퍼진다. 슈만과 관객은 그녀의 완벽한 독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모두가 환호할 때 객석의 가장자리에서 넋이 나간 채 그녀를 바라보는 청년이 있었다. 바로 슈만의 제자 요하네스 브람스였다. 

  먼발치에서만 바라볼 뿐인 당신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세 사람의 것이 되는 순간, 영화에서는 브람스가 연주하는 클라라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3개의 로망스>가 흘러나온다. 박소현 바이올리니스트는 영화에서 브람스가 클라라의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지닌 의미를 설명했다. “클라라는 20살 때 <피아노 독주를 위한 3개의 로망스>를 작곡해 슈만에게 헌정했습니다. 브람스가 그런 작품을 클라라와 슈만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연주하는 장면은 클라라처럼 20세의 자신도 그녀에게 직진하겠다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 유추해 볼 수 있죠.” 

세 음악가의 우정과 사랑은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이들의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세 음악가의 우정과 사랑은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이들의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그런 브람스를 의식한 채 슈만의 상태는 날로 악화됐다. 뒤셀도르프에서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을 맡게 되지만 자신의 음악적 역량에 대한 한계와 아내를 사랑하는 브람스의 존재가 끊임없이 슈만의 머릿속을 괴롭힌다. <교향곡 제3번 E♭장조>의 리허설에서 도망쳐버린 이후 그의 이상 증세는 투신에 이를 만큼 심각해져 간다.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기도한 뒤 클라라는 홀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 브람스는 그녀를 위해 <피아노 3중주 제1번>을 빌려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박소현 바이올리니스트는 브람스가 슈만을 향한 존경과 클라라에 대한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던 고뇌가 작품에 녹아들었다고 전했다. “<피아노 3중주 제1번>은 일곱째를 임신한 채 정신병원에서 슈만을 돌봐야 했던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입니다. 피아노의 독주로 시작돼 현악기 두 대와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3악장은 코랄의 느낌이 매력적인데요. 간결한 구성과 곡의 여백은 마치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시인의 이야기>의 분위기를 품고 있기도 하죠.” 

  오래도록 당신을 기억합니다 

  “알고 있어.” 클라라의 품에 안긴 슈만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기며 눈을 감는다. 『오늘의 감정, 클래식』의 저자 김기홍 작가는 슈만의 유언을 다양한 의미로 해석했다. “슈만이 남긴 말에는 유약한 자신의 곁에 평생 남아 있었던 클라라를 향한 미안함이 담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 브람스와 클라라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자신도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었다는 의미를 유추할 수도 있죠.” 

  슈만이 떠난 이후 클라라는 끝까지 슈만에 대한 사랑과 의리를 지킨다. 그런 클라라의 선택을 존중하며 브람스는 스승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채 그녀를 죽는 날까지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영화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D단조>를 클라라가 연주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연주가 절정에 달할수록 그녀를 바라보는 브람스의 눈엔 눈물이 차오르고 입가엔 옅은 미소가 드리운다.  

  『스토리 클래식』의 저자 오수현 작가는 세 음악가의 사랑이 더없이 숭고했기에 여전히 유의미하게 회자된다고 말했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현재에도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이들은 각자가 지켜야 하는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클라라는 슈만의 사랑을 끝까지 지켰고 한때는 브람스에게 흔들리기도 했었으나 그와는 최고의 벗으로 평생 우정을 지속했죠. 이들이 나눈 숭고한 사랑과 우정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불멸의 가치가 아닐까요.” 

  슈만과 브람스, 그리고 클라라의 음악은 진솔하고 아련한 사랑 고백으로 남았다. 사랑과 예술이 만들어낸 시대의 선율이 궁금하다면, 눈을 감고 이들의 음악에 마음을 적셔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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