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또는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자세히 알지 못했던 예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그럴 땐 키워드로 보는 예술 사전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주 예술 사전을 넘기는 손은 키워드 ‘영웅’ 앞에 멈췄습니다. 세계를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웅, 그 영웅을 파멸시키려는 악당, 영웅이라고 하기엔 삐딱하고 불완전한 안티히어로까지. 영웅과 악당, 안티히어로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럼 우리 함께 그들의 여정 속으로 빠져봅시다! 권지현 기자 rnjswlgus1103@cauon.net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어요. 어린 아이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주며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 주는 사람도 영웅이죠.” 영화 <다크 나이크 라이즈>의 배트맨 대사 中

우리의 영원한 영웅 슈퍼맨. 앞으로 손을 뻗은 채 광활한 상공을 가로지르며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사진출처 다음영화
우리의 영원한 영웅 슈퍼맨. 앞으로 손을 뻗은 채 광활한 상공을 가로지르며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사진출처 다음영화

 

“S는 무슨 뜻인가요?” 슈퍼맨의 연인 로이스 레인이 그에게 물었다. 슈퍼맨은 답한다. “이거 S 아닙니다. 우리 별에서는 희망이라는 뜻입니다.” 영화 <맨 오브 스틸> 속 한 장면이다. 세상을 지키고 희망을 주는 존재인 영웅. 누군가는 그들처럼 되기를 선망한다. 세계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오 나의 영웅! 당신이 필요해 
  영웅(英雄)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해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인물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신화에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략가 오디세우스, 초인적인 신력의 소유자 헤라클레스가 있다. 또한 용감하게 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고 포로를 구해 낸 유충렬, 가난한 백성을 도와준 의적 홍길동도 한국 신화 속 영웅으로 불린다. 험난한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 영웅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초능력을 사용하는 영웅이 익숙하다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비현실적인 존재일 테다. 인간은 왜 이런 비범한 영웅을 그려오던 걸까. 작품 속 영웅은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데 이는 일반 대중의 삶과 닮아있다. 현실을 은연히 보여주는 영웅의 모습은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해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대중에게 특정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영웅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전영돈 교수(한성대 미디어디자인학과)는 캡틴 아메리카와 원더우먼을 근거로 영웅의 필요성에 관해 설명했다. “‘선(善)’ 그 자체의 성격을 지닌 영웅은 보통 우리를 구원해주는 존재죠.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대중에게 큰 파급효과를 지니는데요. 한 예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성조기 코스튬을 한 캡틴 아메리카나 원더우먼이 등장했습니다. 성조기를 몸에 두른 영웅이 나치를 물리치는 모습을 통해 미국은 선(善), 나치는 악(惡)으로 표현하기도 했죠.” 

  세상을 위해 싸우는 자들 
  긴박한 액션과 숨 막히는 전투를 벌이는 영웅은 작품을 보는 내내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웅의 승리를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긴장하며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와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져스’가 있다. 저스티스 리그는 영웅의 원조라 불리는 슈퍼맨, 최초의 여성 영웅 원더우먼, 그리고 땅의 아들이자 바다의 왕, 심해의 수호자인 아쿠아맨 등으로 이뤄졌다. 어벤져스에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체를 가진 캡틴 아메리카, 고성능의 수트를 입고 세상을 지키는 아이언맨, 강력한 힘을 지닌 헐크 등이 있다. 

  이들은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와 맞서 싸운다. 외계의 침입자와 싸우거나 넘어지는 건물을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또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거나 각기 다른 영웅이 모여 악의 무리에 대항해 정의를 구현하기도 한다. 그들이 계속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우리가 영웅이 머무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김준현 교수(서울사이버대 웹문예창작학과)는 현대 사회에서 영웅이 계속 기억되고 존재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영웅은 퇴장함으로써 곧 영웅으로 기억되는데요. 그러나 영웅담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퇴장하길 원하지 않아요. 영웅이 대중의 옆에 있으면서 보상받기를 원하죠. 그렇기에 끊임없이 영웅과 관련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주인공 도봉순은 괴력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건달을 무찌르고 시민을 도와주는 일상 속 영웅이다.사진출처 JTBC 홈페이지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주인공 도봉순은 괴력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건달을 무찌르고 시민을 도와주는 일상 속 영웅이다.사진출처 JTBC 홈페이지


  영웅에 조건은 필요 없으니까 
  슈퍼맨, 아이언맨, 토르 등 우리가 기억하는 대다수 영웅은 백인 남성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다양한 영웅의 모습이 등장했다. 

  한국의 『방한림전』,  『홍계월전』 그리고 중국의 『목란사』까지 오래전부터 여성을 영웅으로 내세운 작품은 존재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남장 등을 통해 남성으로서 자신을 내세웠기에 완전한 여성형 영웅은 아니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유교 사회 속 여성이 영웅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더우먼의 등장 이후 여성 그 자체를 모델로 한 영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화 <캡틴 마블>에서는 슈퍼맨에 필적하는 강력함을 지닌 캡틴 마블이 등장했다.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는 도봉순이 괴력의 소유자로 등장해 행패를 부리는 건달을 물리치기도 한다. 

  백인만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시대를 넘어 다양한 인종이 영웅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웹드라마 <팔콘과 윈터 솔져> 속 ‘팔콘’, 영화 <블랙 팬서> 속 ‘블랙 팬서’ 그리고 영화 <저스티스 리그> 속 ‘사이보그’ 등이 있다. 특히 블랙 팬서는 마블의 첫 흑인 영웅으로 백인 배우 위주의 할리우드 영화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했다는 의의를 가진다. 또한 영화 <이터널스>의 ‘길가메시’,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샹치’와 영화 <뮬란>의 ‘뮬란’ 등 동양계의 영웅도 적극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날아다니거나 특별한 능력을 지녀야만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을 괴롭힌 코로나19와 사투한 의료진은 감염 위험 속에서 목숨을 걸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자연재해와 싸우는 사람도 있다. 지난 8월 폭우로 인해 강남역의 한 하수구가 각종 쓰레기로 막혀 제대로 배수하지 못했다. 그때 그 하수구에 손을 넣어 쓰레기를 건져 올린 시민이 있었다.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영웅’이라 지칭했다. 이젠 우리 주위의 누군가도 영웅이라 불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앞으로 영웅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할까. 한민 문화심리학자는 시대의 욕망에 따라 변화할 영웅의 모습을 언급했다. “시대의 욕망과 대중의 바람에 따라 영웅상은 달라질 겁니다. 최근 작품을 보면 한 명의 영웅이 독단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여러 명의 영웅이 등장하는데요. 영향력 있는 한 두 사람의 힘으로 돌아가지만은 않는 현대 사회를 반영하고 있죠. 마블 영웅을 포함해 ‘평범한 여러 사람의 힘’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영웅. 그들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노력 끝에 찾아오는 성공을 통해 우리도 그들처럼 빛날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영웅이 되는 것에 기준은 그 무엇도 정해져 있지 않다.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이미 영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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