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처한 도시를 구하기 위해 맞서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 영웅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주로 다뤄지는 내용이다. 이러한 서사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악’이다. 정의로운 영웅을 비추기 위해 처참히 무너져갔던 악한 존재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빛나는 영웅을 바라보던 시선은 이제 다소 어둡고 음침한 이들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영웅의 반대=악당? 
  악당, 악한 사람의 무리 혹은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을 가리킨다. 작품 속에서 악당은 보통 주인공이 넘어야 할 고난이자 물리쳐야 하는 적이다. 또한 좋은 품성을 지닌 주인공과 달리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불량한 성격을 지닌 캐릭터로 나타난다.

  악당이 탄생한 배경에 관해 조미라 강사(국어국문학과)는 주인공을 향한 연민과 두려움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관객은 주인공이 목표에 도달하기를 기대하면서도 승리하는 과정 속 인물이 겪는 시련과 고뇌, 갈등, 고통에서 연민과 두려움을 느끼죠. 그 연민과 두려움의 심연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바로 주인공의 약점이 투영된 악당이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작품 속 악당은 영웅 전술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영웅을 파멸시키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곤 한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백설공주>의 새어머니 그림하일드, <피터팬>의 후크 선장, <스머프와 친구들>의 가가멜 등이 있다. 또한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 영화 <범죄도시>의 장첸,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천서진 등 악역은 많은 패러디를 남길 정도로 강한 인상을 준 캐릭터다.

  이다운 교수(군산대 국어국문학과)는 작품 속 악역을 통해 관객이 경험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세계를 파괴하는 괴물성은 어쩌면 인간에 내재된 보편적 속성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렇기에 악을 나쁘다고 인식하면서도 친근한 대상으로 바라보죠. 관객은 악당을 통해 적당한 위반의 쾌감을 체험하면서, 악당의 실패를 통해 안전과 평화의 가치도 재확인하게 됩니다.”

  악한 그들에게 끌리는 이유 
  어릴 적엔 영웅을 동경하다 어른이 돼서는 오히려 악당에게 매료된 경험, 한 번쯤 해봤을 테다. 악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러 가지 콘텐츠와 작품은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디즈니는 영화 <말레피센트>, 영화 <크루엘라> 등 악역으로 등장했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에서는 악당의 과거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악의 존재로 거듭나게 된 그들의 서사를 풀어간다.

  이다운 교수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악당의 서사에 관해 설명했다. “최근에 등장하는 악당을 보면 욕망 추동의 타당한 계기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을 보여요. 그리고 악당 서사에 심리적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서사를 표면화하는 작품도 늘어나고 있죠.”

  자주 언급되는 악당으로는 ‘조커’가 있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배트맨과 대립하는 조연으로 광기 어린 행동과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달리 영화 <조커>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코미디언 지망생인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기까지의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한층 더해진 조커의 매력을 선사했다.

  서동수 교수(신한대 리나시타교양대학)는 대중이 ‘악’의 속성을 띤 캐릭터로 대리 만족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악한 캐릭터는 보통 사람의 이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 있어요.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악한 캐릭터를 보고 자신도 그러한 욕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죠.”

  대중을 매료시키는 악당은 주로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조미라 강사는 악당 캐릭터가 가져야 하는 자질에 관해 언급했다. “악당은 단순히 악의 개념으로 주인공과 맞서는 인물이 아니에요. 선과 악을 떠나 유일하게 주인공과 맞설 수 있는 실력, 자질을 지녀야 하죠. 나아가 주인공에겐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필요합니다.”

  이다운 교수는 더욱 매력적인 악당이 되기 위한 요인을 이야기했다. “주인공과 영웅, 감상자를 ‘제압할 만한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악당에게 서사를 압도하는 분위기와 에너지가 있어야 주인공과 영웅의 에너지도 타당해집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지닌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단발머리 악당 등이 특히 인상 깊었죠.”

악당은 이제 영웅을 위한 조연이 아니다. 치명적인 매력과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진 그들은 하나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악당은 이제 영웅을 위한 조연이 아니다. 치명적인 매력과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진 그들은 하나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영웅이 착하다는 법은 없다 
  영웅과 적대적 관계를 보이는 악당이 있다면, 영웅이지만 다소 삐딱해 보이는 ‘안티히어로’도 있다. 안티히어로는 타락한 사회에서 개인적 윤리나 고결성 때문에 갈등을 겪는 주인공이다. 애니메이션 <데스노트>의 야가미 라이토는 법과 정의에 의문을 품고 데스노트를 활용해 흉악범들을 차례로 죽인다. 또한 영화 <모비우스>의 모비우스는 흡혈박쥐로 인해 강한 파괴력을 가지게 되면서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신영 강사(글로벌예술학부)는 안티히어로의 불완전함이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보다 부족한 면모를 지닌 존재에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죠. 그것이 인간적이고 친숙하기 때문인데요. 이에 관객들도 안티히어로의 완벽하지 않은 지점들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겁니다.”

  이제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가르는 시대가 아닌, 누구나 작품 속 주인공이 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서동수 교수는 악당과 안티히어로를 통해 또 다른 희망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악한 캐릭터를 단지 배제나 감금,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통해 사회의 문제 증상을 들여다보며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희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부정의 부정이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조미라 강사는 악당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악당을 떠올리면 대개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악당을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주인공은 선, 악당은 악이라는 윤리적 이분법에 갇힐 우려가 있어요. 따라서 악당은 스포츠 경기의 라이벌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갈등이 있기에 인생의 희로애락도 있는 법이니까요.”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 시대, 이제 착한 영웅과 나쁜 악당이라는 키워드는 옛말이다. 이전엔 보지 못했던 악당의 이면, 그리고 정의롭지 않은 영웅인 안티히어로는 우리의 편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마냥 밉지만은 않은 그들이 풀어갈 색다른 일탈에서 짜릿함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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