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캠퍼스를 적시고 조용했던 학교도 활기를 되찾았다. 학교를 채우는 발걸음들이 북적인다. 바야흐로 새 학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수강신청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흑석동의 따사로운 봄볕도 얄궂게 느껴질 수 있다. 딱히 문화시설이 없는 흑석동에서는 소위 ‘우주 공강’이라 불리는 붕 뜨는 공강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기 십상이기 때문. 그동안 의미 없이 보낸 시간들이 스쳐 간다면 그들에게 추천한다. 공강, 어디까지 즐겨봤니?
 

  오죽하면 시인 이장희씨도 ‘봄은 고양이로다’와 같은 시를 썼을까. 점심을 먹은 뒤 밀려오는 춘곤증처럼 나른한 오후의 공기와 닮은 곳이 있다. 바로 13마리 고양이가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고양이 카페 ‘책 읽는 고양이’다. 중앙대병원을 지나 C사 편의점을 끼고 돌면 고양이가 그려진 벽화로 된 간판이 보인다. 입구로 들어가면 자리를 하나씩 차지한 고양이들이 여유로움을 뽐낸다. 흡사 고양이 우리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도 있지만 이곳은 커피와 음료를 파는 엄연한 카페다.


    하지만 일반 고양이 카페와는 조금 다르다. 무심한 듯 도도해 보이는 고양이들에게 나름의 사연이 있는 것. 사실 이 고양이들은 주인으로부터 버려지거나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길고양이들이다. 사장님의 어깨 위에 앉아 애교를 떠는 고양이 ‘꽁치’에게도 사연이 있다. 꽁치는 동물병원에 버려져 안락사의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다행히도 사장님의 도움으로 책 읽는 고양이의 식구가 됐고 그 후로 그의 곁을 떠날 줄을 모른다. 꽁치처럼 살가운 고양이들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하기 힘든 고양이도 있다. 바로 ‘루나’다. 파랗고 큰 눈으로 오묘한 표정을 짓는 이 고양이는 하루 종일 늘어져 있는 게 일이다. 귀여운 마음에 혹시라도 손을 갖다 댔다간 물릴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몇 년 전 주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루나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오묘한 파란색 눈동자 속에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서려 있는 것 처럼 보인다.
  

▲ 상자를 보금자리로 삼은 고양이 진순이는 '책 읽는 고양이'의 식구다.                                                                                                                              사진 서지영 기자

 

 하지만 길 잃은 고양이들만을 위한 카페는 아니다. ‘책 읽는 고양이’는 공정거래무역을 거친 원두와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는 ‘착한 카페’를 표방하고 있다. 공정거래커피는 올바른 임금 분배도 긍정적이지만 무엇보다 유기농으로 재배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길고양이를 데리고 온 것과 같은 맥락이에요. 사회에 도움이 되는 착한 카페를 열고 싶었죠.”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카페 문을 연 구철민 사장에게도 고양이를 들이는 일은 계획됐던 일이 아니다. 카페를 차리려고 구상 중에 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길고양이들을 만나게 됐다. 떠돌이가 된 고양이들의 아픔을 보듬어주기로 한 그는 카페에 고양이들을 한두 마리씩 풀어놓았다. “이왕 하는 거 서로 돕고 착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착하게 살면 망하진 않겠지’라는 신조가 있었거든요.”   
 

 따로 입장료는 받지 않는다. 대신 1인 1음료 주문이 필수지만 오천 원 안팎의 음료들은 다른 동물 카페들과 비교했을 때 합리적이다. 갈 곳 없는 고양이들에게는 아픔이 치유되는 곳. 갈 곳 없는 학생들에게는 고양이들과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낼 수 있는 곳. 그리고 착한 커피 한잔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곳. 따스한 바람에 여유가 생긴다면 봄을 닮은 고양이들을 만나러 가보자.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