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브로는 ‘시네마’와 ‘시나브로’를 합친 단어입니다.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극장·예술계는 조금씩 변화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죠. 이번 주 문화부는 스크린과 다양한 콘텐츠의 결합을 들여다봤습니다. 극장가는 생존을 위해 스크린에서 콘서트·스포츠 경기·뮤지컬 등을 상영하고, 공연예술계는 스크린과 연극이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얼마나 다양한 콘텐츠를 만날 수 있을까요. 문화부와 함께 스크린이 전달한 생생한 현장의 열기 속으로 함께 가보시죠. 진수민 기자 susky@cauon.net

사진제공 CGV
사진제공 CGV

19일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2023 리그오브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이 열렸다. 그러나 롤드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향한 곳은 전국 각지의 극장이었다. 결승전을 생중계한 CGV는 제주 와 서울을 제외한 전국 100여 개 관에서 전 좌석 매진을 기록했다. 최근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얼터콘텐츠(Alter-contents)’, 사람들이 얼터콘텐츠를 찾는 이유는 뭘까. 


  팬데믹이 영화관에 불러온 파장 

  얼터콘텐츠란 극장에서 영화를 대체할 수 있는 스크린 콘텐츠를 말한다. 세븐틴, 강다니엘 등 인기 아이돌 콘서트부터 프리미어리그 경기와 같은 스포츠 중계까지 각양각색의 장르가 극장에 쏟아지고 있다. 


   스크린을 통해 공연예술을 상영하는 이벤트는 과거부터 존재했다. 예술의전당이 진행하는 ‘SAC on SCREEN’ 사업은 공연예술을 스크린으로 옮긴 대표적인 예다. 신누리 예술의전당 영상사업부 대리는 2013년부터 문화 소외 계층에게 공연 영상을 보급해왔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은 무대에 오르는 공연들을 문화 예술 기반이 열악한 지역에서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습니다. 공연 영상은 스크린과 음향장비가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상영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얼터콘텐츠의 입지는 비약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박세준 롯데시네마 얼터콘텐츠팀장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낸 극장가에 있어 얼터콘텐츠는 하나의 자구책이었다고 설명했다. “2019년까지 지속해서 성장하던 영화 시장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습관을 잃어버렸죠. 더욱이 OTT 등 대체재의 등장으로 극장에 대한 수요가 더욱 감소했어요. 그래서 극장만이 가지는 특징인 3S(Screen·Sound· Seat)를 극대화해 영화를 대체할 콘텐츠를 개발했습니다.” 신누리 대리는 예술가들도 얼터콘텐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SAC on SCREEN’ 사업을 시작했을 때 공연영상 제작에 회의적이었던 예술가들도 막상 설 무대가 사라지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팬데믹을 기점으로 공연영상이 단순한 공연 기록물을 넘어 독자적인 콘텐츠로 인정받게 된 거죠.”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얼터콘텐츠의 성장 배경으로 ‘경험’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팬데믹을 지나오며 간접 경험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습니다. 이 시기엔 온라인을 통해 세상을 경험할 일이 많았죠. 간접 경험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간접 경험의 가치를 과거보다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어요. 간접 경험도 강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대중은 얼터콘텐츠에 주목했습니다.” 


   다채로운 콘텐츠, 다채로운 매력 

  극장의 대형 스크린이 주는 생동감은 관객이 얼터콘텐츠를 보러 극장을 찾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동원 공연 콘텐츠 회사 위즈온센 대표는 카메라를 활용해 인물을 섬세히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얼터콘텐츠의 차별화된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카메라가 개입되면 다양한 각도에서 인물을 가까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강점은 연극 등 스토리텔링이 있는 장르에서 더 빛을 발해요. 사소한 표정을 포착해 인물 간의 감정교류 등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장 공연을 여러 번 본 관객이라도 얼터콘텐츠를 통해 새로움을 느낄 수 있어요.” 박세준 팀장은 얼터콘텐츠의 강점이 시각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얼터콘텐츠는 영화관이라는 환경적 강점을 최대한 살려 상영되고 있습니다. 영화관은 TV나 모바일 기기보다 뛰어난 음향 시스템을 통해 얼터콘텐츠를 송출하죠”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도 관객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19일 극장에서 롤드컵 결승을 관람한 김유진 학생(수학과 4)은 극장에서의 즐거웠던 시간을 추억했다. “관객들과 한마음이 돼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주변 사람의 열정에 힘입어 저 또한 최선을 다해 응원한 경험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어요.”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박세준 팀장은 팬층이 뚜렷한 장르를 위주로 얼터콘텐츠가 상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얼터콘텐츠는 팬덤 기반의 콘텐츠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더 확장된 경험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현장 공연 및 스포츠 경기에 비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얼터콘텐츠는 현장 공연에 대한 수요층을 두텁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이동원 대표는 얼터콘텐츠가 오프라인 공연을 해외로 알리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그 예로 러시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들었다. “뮤지컬 실황 영화 <안나 카레니나>는 러시아 뮤지컬을 촬영해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영화가 상영되자 세계 각지의 공연 제작자가 해당 극단에 라이센스를 받고 싶다고 요청했죠. 비교적 빠르게 확산하는 얼터콘텐츠는 공연을 더 널리 알리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어요.” 


   한층 더 새로워질 얼터콘텐츠 

  극장·콘텐츠 배급사 등은 얼터콘텐츠의 매력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색다른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박세준 팀장은 얼터콘텐츠와 어울리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객에게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즐기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OTT와 차별화하기 위해 오프라인에서 팝업 매장과 콜라보 카페 등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있어요. 행사에서 굿즈를 판매하거나 실제 아티스트와 소통할 기회를 마련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죠.” 


  앞으로는 현장에 가지 않아도 현장을 보다 더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임희윤 평론가는 확장현실(XR) 기술을 적용한 공연에 주목했다. “XR 콘서트의 일상화가 우리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애플의 XR 헤드셋 ‘비전 프로’가 곧 출시되는데요. 이에 따라 다른 업체도 속속 유사 제품을 내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XR 기술이 보편화되는 흐름에 맞춰 XR 콘서트 역시 빠른 속도로 대중화될 거예요.” 


   콘텐츠 홍수 시대, 극장은 ‘얼터콘텐츠’라는 돌파구를 마련해 관객을 다시 상영관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각자 흩어져 지내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대형 스크린과 생생한 음향, 그리고 함께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얼터콘텐츠를 통해 다시금 극장이 주었던 감동과 설렘에 흠뻑 빠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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