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으로 공연예술과 미디어가 결합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하나의 장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관객의 관심과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살핀다면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하나의 시도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신광민 배우
 

배우들의 연기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고 있다. 이를 통해 무대와 거리가 먼 객석에서도 배우들의 표정 연기를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사진제공 이강물
배우들의 연기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송출되고 있다. 이를 통해 무대와 거리가 먼 객석에서도 배우들의 표정 연기를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다. 사진제공 이강물
공연 도중 무대 위에 카메라를 든 스태프들이 등장한다. 미리 정해둔 콘티에 따라 그들이 촬영한 영상은 실시간으로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투영된다. 사진제공 이강물
공연 도중 무대 위에 카메라를 든 스태프들이 등장한다. 미리 정해둔 콘티에 따라 그들이 촬영한 영상은 실시간으로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투영된다. 사진제공 이강물


당신이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에 방문했다고 가정해 보자. 무대 위에는 영화 세트장처럼 보이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은 연극적 공간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관객에게 노출된 공간이다. 공연 내내 이 상태가 유지된다. 그리고 무대 위에는 초대형 화면 하나가 놓여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일반적인 연극의 형태와는 사뭇 다르다. 미디어와 연극이 만나 탄생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는 어떤 공연을 의미할까. 

  대형 스크린과 연극의 만남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는 영화가 연극 및 뮤지컬 같은 공연과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하이브리드 장르다. 배우는 무대에서 연기하고, 스태프들은 연기를 실시간으로 촬영하며, 스크린에는 촬영한 영상이 투영된다. 멀티미디어 극·시네마 퍼포먼스·라이브 시네마 연극 등 불리는 이름도 다양하다.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를 연구한 신광민 배우는 영국의 연출가 케이티 미첼이 ‘라이브 시네마 연극’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라이브 시네마 연극은 케이티 미첼이 자신의 작업 형태를 분류하기 위해 만든 용어입니다. 그는 멀티미디어 퍼포먼스의 또 다른 미학적 방식을 소개해 연극예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죠.”

  케이티 미첼은 ‘2014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개막작인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연극 <노란 벽지>를 제작했다. 연극 <노란 벽지>는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라는 새로운 연극의 패러다임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작품이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유통되는 영상과 달리 이 연극은 눈에 보이는 무대 위 공간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이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라는 연극의 특성상 카메라맨은 공연 중 주인공인 여성을 쫓아다닌다. 한 전문가는 이 모습이 실제 극 중 여성의 강박증적 심리 상태와 맞아떨어진다고 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어떤 것의 범위나 경계를 초월하는 메타적 형식을 지녔음에 주목했다. 이태린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 대표는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실재와 재현의 상황을 함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기를 하는 재현의 상황도 존재하지만 그것을 외부에서 지켜보는 실재의 상황도 함께 존재해요. 관객이 이 두 모습을 함께 바라보면서 실재와 재현의 경계가 사라지고 공연에 다양한 변형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책 『퓨처시네마』(조성민·최양현 씀)를 통해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를 소개한 최양현 감독 또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의 메타적 형식이 미학적으로 흥미롭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스태프들은 카메라와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배우들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확대해 포착합니다. 미디움 쇼트, 롱 쇼트 등 화면의 크기 조정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실제로 관객들도 이 과정을 지켜보며 장면에 맞는 생동감을 잘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하더군요.”

  한국에 상륙한 새로운 바람
  지난해 10월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는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연극 <그루셰>를 선보였다. 국내 제작 연극으로는 처음 시도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장르의 공연이었다. 올해 7월에는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의 두 번째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연극인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가 무대에 올랐다. 두 작품을 연출한 이태린 대표는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공연이 주는 압도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10년 전 외국의 작품을 통해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장르를 접하게 됐어요. 관객의 입장에서 공연을 보니 무대 위 복잡한 광경을 완전히 정돈된 영상과 함께 바라본다는 점에서 무대에 압도된 느낌을 받았죠. 그런데 국내에는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 작품이 창작된 사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작품을 직접 제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연극 <그루셰>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번안극 <코카서스의 백목원>을 원작으로 한 음악극이다.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와 함께 공연 제작에 참여한 최양현 감독은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와 음악극의 만남을 의미 있게 바라봤다. “뮤지컬이라는 극의 형식에는 음악이 중요하게 작용하죠. 음악극 <그루셰>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에 음악극이 접목된 경우는 해외에서도 거의 찾을 수 없어요. 음악을 영상으로 표현하니 뮤지컬 영화, 뮤직비디오의 느낌을 구현할 수 있어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올해 공연한 연극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일제 강점기 포로 감시원 생활을 하게 된 20대 청년 최영우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태린 대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인만큼 미화와 변형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연극이 담는 이야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해 관객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실재와 재현의 상황을 함께 보여주는 메타적 형식의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이러한 의도를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장르의 연극인만큼 이를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는 연극과 영화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장르인 만큼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연극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의 중요성이 크다. 이태린 대표는 기술진과 연출진의 협업 과정을 설명했다.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범위가 무엇인지 기술진과 연출진이 함께 미리 정해야 해요. 또 연출진에게 익숙한 연극 대본과 기술진에게 익숙한 영화 대본의 형태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오는 혼란도 적지 않죠.” 최양현 감독은 사전에 계획된 콘티를 암기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전했다. “리허설 단계부터 카메라맨과 배우들이 함께 연습합니다. 배우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잘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을 찾기 위해 몇 달 동안 반복 훈련을 거치죠.”

  ‘퓨처시네마’를 향해
  많이 시도되지 않은 장르인 만큼 예술가들의 다양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태린 대표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재원의 수급도 중요합니다. 기술의 접목 때문에 순수 예술가의 사비로 창작하기에는 어려움이 크거든요. 미래에는 저희 말고도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창작자분들이 많아져 개선 방향을 함께 논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공연예술과 미디어의 결합은 계속될 전망이다. 신광민 배우는 이러한 점에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기술의 발전으로 공연예술과 미디어가 결합한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하나의 장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현재는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많이 제작되지는 않고 있어요. 아직 일반 대중의 관심과 공감을 얻지 못한 탓도 있겠죠. 하지만 관객의 관심과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살핀다면 라이브 필름 퍼포먼스가 하나의 시도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미래의 영화관은 어떤 모습일까. 미래의 무대는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이 둘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도 공연예술계의 새로운 시도가 미디어의 발전을 만나 더욱 성장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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