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 ‘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 사회부는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하려 합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이번 주는 ‘시청각장애인’으로 열어보려 합니다. 끝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글 김지우 기자 eraser@cauon.net  사진 봉정현 기자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환경 속에서 홀로 지내는 삶은 말 그대로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인터넷과 같은 정보 지대로부터도 완전히 소외돼 있다 보니 삶에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시청각장애인들도 많다고 하죠.”-시청각장애인 손창환씨(54)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은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애 유형을 15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15가지 유형의 공통점은 모두 한 가지 신체 기능의 장애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앞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어떤 장애 유형의 이름으로 마땅한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생의 막막함 속에서 외치는 시청각장애인의 먹먹한 방백에 귀를 기울여 봤다. 

  헬렌 켈러 이야기는 그저 동화였을까 
  시청각장애인(Deaf-Blind)은 시각 및 청각 기능의 동시적인 손상으로 인해 시·청각 감각 기능을 적절히 수행할 수 없는 장애인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등록장애인 현황 통계’를 발표했지만 시청각장애인의 수는 해당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시청각장애는 「장애인복지법」이 분류하는 15가지 장애 종류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청각중복장애인(Deaf-Blind)의 욕구 및 실태조사 연구」(한국장애인개발원, 2017)에 따르면 시청각장애인의 수는 약 5000명에서 1만여 명 정도로 추정될 뿐이다. 

  존재 자체가 추정에 그칠 뿐인 시청각장애인의 소외는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시각과 청각의 손상 정도와 시기에 따라 경험이 상이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 내에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 체계가 전무하기 때문에 시청각장애인들은 교육 체계의 부재를 강하게 경험한다. 7살 무렵 시청각장애인이 된 조원석 손잡다 대표는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 입학했지만 시청각장애인 학생에 대한 지원은 전문성 없이 단순히 ‘배려’ 차원에서만 이뤄졌다고 전했다. “시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초·중·고등학교를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아닌 만큼 저와 같은 학생들이 많지 않았기에 전문적인 교육이나 편의 제공이 이뤄질 수 없었는데요. 예를 들면 시각장애인 학우들은 필기를 받아 적기라도 할 수 있지만 전 항상 친구들의 필기를 빌려서 공부해야 했죠. 수업을 들을 때도 눈과 귀가 모두 안 좋은 저를 선생님 옆에 앉을 수 있도록 해주는 정도의 배려가 전부였습니다. 그마저도 교사 개인 재량에 따라 달라져 시청각장애인 학생은 요령껏 살아남아야 했어요.” 조원석 대표는 시청각장애인의 개별적 특성을 반영한 교육이 필수적이지만 현실은 장애 학생의 교육 현장에 투입되는 교육 인력이 이를 이해하는 경우조차도 드물다고 언급했다. “학교에서 외부 보행 교육을 진행했을 때 저는 한쪽 귀로만 희미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보니 몸이 자꾸만 한쪽으로 쏠렸는데요. 선생님들이 제게 ‘대체 왜 너만 직립보행을 못 하냐’고 비교하셨던 게 생각나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사를 양성하는 커리큘럼 자체가 없다 보니 시청각 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와 감수성이 없는 인력에게 교육을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7살 이후의 장애 발병으로 구분되는 후천적 시청각장애인이 느끼는 교육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린 시절 저시력 청각장애를 얻고 30대에 이르러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 손창환씨(54)는 수화를 배운 적이 없는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소통에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청각장애인들은 주로 촉수화로 소통합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수어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요. 저는 청각장애인으로서 과거에 수어를 배운 상태였기에 촉수화 소통이 가능했지만 그렇지 않은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국내 몇 없는 시청각장애인 지원 센터를 방문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수화를 배우지 않은 시청각장애인들도 보다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최근에는 촉신호 소통법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하죠.” 

시청각장애인은 주로 ‘촉수화’를 사용해 소통한다. 촉수화는 상대방의 손을 촉각으로 느끼며 말의 의미를 전달하고 대화를 나누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시청각장애인은 주로 ‘촉수화’를 사용해 소통한다. 촉수화는 상대방의 손을 촉각으로 느끼며 말의 의미를 전달하고 대화를 나누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시청각장애인의 소통 방식은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손창환씨가 촉수화 외의 또 다른 소통법인 ‘촉신호’를 담은 책자를 소개해 주고 있다.
시청각장애인의 소통 방식은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손창환씨가 촉수화 외의 또 다른 소통법인 ‘촉신호’를 담은 책자를 소개해 주고 있다.


  국내 시청각장애인 최초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조영찬씨(52)는 고등교육 과정상에서 겪는 시청각장애인의 어려움은 어둠 속을 헤쳐가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시청각장애인으로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겪은 어려움은 필설로 형언하기 힘든 정도였습니다. 우선 매 학기 교재를 대체 자료로 충당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모든 교재를 점자로 읽어야 하는데 교내 장애학생고등교육지원센터에 찾아가더라도 교재의 입력이 지연되면 학기가 끝날 무렵에 대체 자료가 완성되기도 했죠.” 

  단절의 골은 깊어져 가고 
  적절한 교육 체계의 부재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안전’과 관련한 담론에서도 시청각장애인은 배제돼 있다. 시각과 청각 기능이 동시에 손실된 시청각장애인은 비상 상황 시 정보 입수가 어렵지만 「장애인복지법」상 규정이 없기 때문에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구체적인 재난 상황 대피요령이나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다. 실제 행정안전부 산하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서 발간한 「장애인 재난대응 안내서」를 보면 시청각장애인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조영찬씨는 시청각장애인은 위험 상황에 대한 안내가 주어질 때 스스로 대처할 방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경증 시청각장애인은 저시력이나 난청이 있어도 그나마 대처가 유리한 편이지만 저와 같이 시각과 청각 둘 다 중증일 경우는 재난 안내 문자나 비상 사이렌 경보 등 위험 상황에 대한 신호를 혼자선 확인할 수 없습니다. 24시간 체제로 보호자가 함께 해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대처할 방도가 없죠.” 

  코로나19 팬데믹은 시청각장애인들의 삶을 직접적인 어둠으로 내몰았다. 코로나19 자체에 대한 설명과 30번이 넘도록 바뀌는 방역 수칙 내용은 촉수화의 방식을 통해선 설명이 거의 불가했기 때문이다. 촉각을 이용해 소통해야 하는 만큼 감염에 대한 불안 또한 그들을 더욱 자택 안에만 머무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손창환씨는 코로나19 상황이 시청각장애인들을 신체적·정신적으로 더욱 불안하고 외롭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방역 수칙으로 인해 복지관에 가도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고 한 번씩 나가던 시청각장애인 자조 모임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10월 27일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렌센터를 방문해 시청각장애인 손창환씨(54)를 만났다. 인터뷰는 이연경 촉수화 통역사와 함께 진행했다.
10월 27일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렌센터를 방문해 시청각장애인 손창환씨(54)를 만났다. 인터뷰는 이연경 촉수화 통역사와 함께 진행했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적인 소통 창구 확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현실은 미진하기만 하다. 한소네(점자와 문자를 상호 호환해  인터넷 정보 검색 및 모바일 메신저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소통 보조기기)는 시청각장애인과 사회를 이어주는 필수적인 도구로 통하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최신형 한소네의 가격은 약 580만 원에 달한다. 개인이 소지하기에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시청각장애인 중 실제 한소네를 사용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심지어 국내 장애인 보조기기 시장은 생산 업체 1~2곳이 과점하고 있는 상태로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조절 기능이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이다. 이에 정부는 2010년부터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시청각장애인들은 해당 사업의 운영 기준과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보소통 보조기기 ‘한소네’는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을 통해 시청각장애인에게 대여되고 있지만 대여의 기준과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정보소통 보조기기 ‘한소네’는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을 통해 시청각장애인에게 대여되고 있지만 대여의 기준과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조원석 대표는 해당 사업이 형평성과 실효성의 차원에서 구조적 모순을 지닌다고 지적했다. “시청각 장애가 별도의 장애 유형으로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시청각장애인은 스스로를 시각장애인으로 체크한 후 사업 선정을 위해 치르는 점자 읽기 평가에 임합니다. 그러나 애초에 점자 교육과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는 시각장애인과 저희는 출발선이 다를 수밖에 없죠. 무엇보다 저희에게 소통 보조기기란 엄연한 생필품과도 같은데 이걸 장애 유형별로 받을 수 있는 대상자를 구분하고 심지어 테스트를 통해 대여해 주는 방식의 사업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구조적인 문제 아닐까요.” 

  손창환씨 역시 점자정보단말기 보조사업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실패뿐이었다고 전했다. “정부로부터 기기를 대여받고자 매번 사업에 신청했지만 번번이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결국엔 중고로 한소네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죠. 비장애인분들이 휴대폰이 없는 삶을 떠올렸을 때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시청각장애인들에게는 세상과 소통할 창구가 한소네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막막하게만 느껴질 따름입니다.” 

  설사 어렵사리 사업에 선정되더라도 문제는 계속된다. 조영찬씨는 아무리 어려운 확률을 뚫고 한소네를 대여받더라도 지속적인 소통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한소네의 보급 대수가 신청자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한소네를 받더라도 단일 장애인보다 시청각장애인은 소통에 있어 한소네의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점자 셀이 빨리 마모되고 기계의 수명이 금방 단축됩니다. 약 2년 정도가 수명이라는 말이 있죠. 최대한 관리를 잘해도 점자가 흐려지는 때가 오는데 이전에 대여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선정에서 제외되는 규정 때문에 다시 신청조차 할 수 없습니다.” 

  소통조차 어려운 환경에서 사회적 활동을 도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 손창환씨는 시청각장애인 대상자 간의 자조 모임이 부재했던 지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7~8명 정도의 시청각장애인분들과 2박 3일간 개인 비용을 들여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그전까진 서울에서도 시청각장애인 모임이 전혀 없었습니다.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환경 속에서 홀로 지내는 삶은 말 그대로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습니다. 인터넷과 같은 정보 지대로부터도 완전히 소외돼 있다 보니 삶에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시청각장애인들도 많다고 하죠.” 

  조원석 대표는 지방에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의 발굴과 그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의 시청각장애인들은 ‘손잡다’나 ‘헬렌켈러센터’ 등을 통해서라도 자조 모임을 가질 수 있지만 지방 시청각장애인들의 경우 커뮤니티 형성이 한참 뒤처져 있습니다. 시청각장애인들은 쉽게 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는데요. 서울에 비해 지방의 교통 편의성이 다소 약하다는 점도 요인으로 작용하죠. 지역에 있는 시청각장애인의 수를 파악하고 자조 모임을 주도하는 단체가 형성되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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