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놓인 노년층 고려해야 
배움에 나이 없는 문화 조성 필요

세계보건기구(WHO)는 고령친화도시의 조건 중 하나로 ‘교통수단의 편의성’을 들고 있다. 교통수단의 편의성이란 고령자의 관점에서 이용이 쉽고 저렴한 대중교통 편의 환경 구축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미 2017년 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노년층은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을까.

 
노년층 배제된 ‘현금 없는 버스’ 
  2021년 10월, 서울특별시(서울시)는 ‘현금 없는 버스’ 시스템을 도입하며 앞으로 해당 시스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금 없는 버스란 버스 요금 결제 시 현금을 받지 않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올해 4월 기준 서울시에서 운행 중인 현금 없는 버스는 109개 노선, 약 1800대로 이는 전체 서울 운행 버스의 약 25%에 해당한다. 

  현금 없는 버스의 도입 배경에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저조해진 현금 승차 비율이 자리한다. 지난해 5월 기준 서울 버스의 현금 승차 비율은 전체 승객의 약 0.6%에 불과했다. 현금 없는 버스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대안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이러한 제도가 현금을 이용하는 버스 탑승자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시내버스의 경우 민간사업자가 공급하는 서비스지만 공공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공급자의 측면에서 특정 결제 수단이 편하다는 이유로 현금을 이용하는 수용자를 배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차별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비율이 소수라 할지라도 현금이 편한 사람은 현금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금 없는 버스와 같은 디지털 전환이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술 중심의 변화보다는 변화의 외곽에 남게 되는 취약계층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실제 한국은행의 「2021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70대 이상 노인의 최근 1개월 내 현금 이용 경험률은 약 98.8%에 달했다. 김영선 경희대 디지털 뉴에이징연구소 소장은 “고령자가 현금이 아닌 다른 대안에 적응하기까지 드는 기간을 충분히 고려해 계도기간을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디지털 전환을 먼저 선도한 해외국가들에서도 디지털 취약계층 소외 및 활동 제약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이동권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현금 사용 선택권’이라는 개념으로 디지털 전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법률과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기준 서울 버스의 현금 승차 비율은 전체 승객의 약 0.6%로 이는 약 2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5월 기준 서울 버스의 현금 승차 비율은 전체 승객의 약 0.6%로 이는 약 2만명에 달한다. 사진 이주희 기자

예매조차 어려운 노년층 
  노년층의 대중교통 이용 불편은 시내버스뿐만 아니라 시외·고속버스에서도 나타난다. 국내 모바일 시외·고속버스 예매 앱인 ‘티머니 GO’의 운영사 티머니에 따르면 자사 모바일 앱을 통한 시외·고속버스 예매 비율은 2015년 기준 약 15.4%에서 2022년 기준 약 76.4%로 급증했다. 10명 중 8명에 가까운 시민이 모바일 발권을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온라인 앱 사용법이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현장 발권에만 의존해야 한다.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온 김명옥씨(73)는 “키오스크로 표를 예매하는 것이 어려워 젊은이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병원 방문을 위해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온 한봉화씨(70) 역시 “온라인 예매를 아예 할 줄 몰라 직원을 통한 현장 발권으로 표를 구매한다”고 전했다. 이어 “시대가 변한 만큼 노인들도 그에 맞춰 살아야 하겠지만 키오스크를 다루는 방법이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며 “현장 발권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오로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지만 예매가 가능해서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온라인 예매 시스템이 노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이동권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임춘식 명예교수(한남대 사회복지학과)는 “노인들은 온라인 사전 예매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기차역이나 터미널에 가서 선구매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있다”며 “이렇게 선구매를 하지 않으면 표가 매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74.1%의 노인들이 정보제공서비스가 온라인 중심으로 이뤄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약 60.4%는 교통수단 예매 과정에서 불편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이나 주변 지인을 통해 온라인 예매 방법을 터득할 수도 있으나 사회적 연결망이 없는 독거노인에게는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임춘식 명예교수는 “디지털 환경에서 소외돼 가는 노인들은 극단적인 경우 삶의 의욕을 잃기도 한다”며 “노인들은 도움 요청이 거절당할 때마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 예매 방법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에 대한 노인 교육 체계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꾸준히 제고해 가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순둘 교수(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는 “시외·고속버스 예매를 100%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해버리면 고령의 노인들은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현금 없는 버스 운영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디지털 예매 방식으로 전환되기까지의 계도기간에는 전화나 매표소 운영과 같은 노인에게 친숙한 예매 방식을 함께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2021년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서울디지털재단, 2022)」에서는 키오스크 미사용 고령자의 약 33.8%가 ‘사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를 이유로 꼽았다.
「2021년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서울디지털재단, 2022)」에서는 키오스크 미사용 고령자의 약 33.8%가 ‘사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를 이유로 꼽았다. 사진 이주희 기자


‘편의’에 앞서 ‘사람’을 봐야 
  디지털 전환 시대에 놓인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각 지자체 차원에서 현금 결제의 대체 수단에 대한 정보와 디지털 기술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지역센터나 노인복지센터에서 지역사회와 연계해 디지털 기술 교육을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선 소장 또한 “노인 관련 기관들은 코로나19 당시 키오스크와 앱 사용 등 다양한 디지털 교육을 제공한 경험을 되살려야 한다”며 “버스 이용에 대한 교육 또한 시간을 갖고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교육이 전반적으로 자리잡히기 위해서는 노인을 존중하는 문화 조성이 바탕이 될 필요가 있다. 임춘식 명예교수는 “노인들은 어느 정도의 나이에 도달하게 되면 교육과 단절되기 시작한다”며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움에 나이가 상관없는 문화가 조성돼야 디지털 기술 교육이 긍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젊은이들 또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도중 어려움에 처한 노인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중교통의 중요성은 사회적 약자에게 있어 더욱 크게 다가온다는 점을 고려해 맞춤형 복지가 제공될 필요도 있다. 김상철 정책위원장은 “버스를 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나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데 있어 문제를 겪지 않는 사람들이 대중교통 디지털화를 편리하게 얘기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일상과 관련된 사안이 갑자기 디지털화되거나 무선화되면 어떨지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종인 연구원은 “해외의 경우 노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지자체에서 별도의 버스 노선을 운행하기도 한다”며 “우리나라도 노인의 신체 능력을 고려해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노인이 되기에 대중교통과 노인의 이동권 문제는 결코 타인의 이야기로만 바라볼 수 없다. 대중교통에서의 노인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지자체가 제도의 공백을 메꾸고 노인 대상 디지털 기술 교육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모든 도시가 고령친화도시가 되는 그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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