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최예나 기자
사진 최예나 기자

10·29 이태원 참사로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지 1년이 흘렀다. 갑작스레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1년의 시간을 견뎌왔을까. 희생자 김의진씨(당시 29세)의 어머니인 임현주씨(57)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하루 아침에 의진이를 잃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 분향소와 추모 공원에 매일 갔죠. 하지만 언제까지 슬퍼만 할 수는 없었어요. 의진이가 왜 그런 희생을 당해야만 했는지 진실을 찾기 위해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협의회)’ 활동에 힘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협의회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참사 후 유가족들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 서로를 찾았어요. 장례식장에서 혹은 추모 공원에서 만난 가족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이면서 지금은 115명의 희생자를 중심으로 협의회가 만들어졌죠. 우리는 누구도 희생된 이들 앞에 고(故)를 붙이지 못해요. 그래서 그들을 별이라고 부르죠. 진실 규명을 위해서 모인 가족들은 별가족이라고 부르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협의회가 바라는 것은. 
“이번 참사는 누군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에요. 누구나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죠. 만약 국가가 미리 일방통행을 시켰거나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대응 또한 지체됐어요. 참사 직전 신고가 있었을 때 바로 왔어야 하는데, 참사가 1시간 이상 지난 후에야 구조가 이뤄졌죠. 유가족에게 부고 소식이 약 15시간 후에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지휘자도, 책임자도 없어 너무 많은 희생이 있었던 거예요. 저희는 159명의 희생 앞에 정확한 진상 규명으로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제정해 정치적 명분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진상조사가 속히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의진씨는 어떤 아들이었는지. 
“의진(義眞)이는 이름처럼 정의와 진리를 아는 아이였어요. 착하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죠. 건설환경연구원으로 일했는데, 개인적으로 투자도 하면서 미래에 대한 큰 포부를 갖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기도 했는데요. 그날도 낮에 대학 친구 결혼식을 다녀오고 친구와 주고받는 문자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 했죠. 그런 꿈들이 있는데 그걸 이루지 못해 너무 아쉬워요.”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 
“의진이가 살아온 삶이 있고 꿈꿔온 미래가 있는데,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며 희생된 아이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진위를 파악하지 않고 참사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비방하고 폄훼하는 분들을 볼 때 많이 힘들었어요.” 

-시민들의 연대에 힘을 받기도 했다고. 
“세월호와 같은 많은 사회적 참사를 그동안 겪으면서 사실 제가 그렇게까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연대한 적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삶이 바빠서기도 하고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깊게 이해하지 못했죠. 그런데 실제로 제가 유가족이 되고 난 후 정말 많은 시민이 연대해 주시고 공감해 주셨어요. 우리를 대신해 소리를 내주는 그런 것들이 아주 고마웠습니다.” 

-대학생들에게 바라는 부분은. 
“종종 참사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바라보는 학생들이 있어요. 참사가 한 개인의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닌,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함께 공감해 주고 정확하게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의진씨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의진이는 엄마 가슴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 엄마는 의진이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엄마가 지금까지 의진이가 살아온 성실한 삶을 분명한 기록으로 남기고, 의진이가 꿈꿨던 버킷리스트를 채워 나갈게. 너희들의 희생이 안전사회로 가는 초석이 되도록 엄마와 별가족이 반드시 진실을 찾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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