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또는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예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그럴 땐 키워드로 보는 예술 사전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주 사전을 넘기는 손은 키워드 ‘로맨스’ 앞에 멈췄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로맨스가 전하는 이야기, 매체와 대상을 넘어 확장되는 로맨스, 그리고 남성과 남성의 사랑을 다룬 BL까지. 우리는 다른 이의 연애 속에서 어떤 환상을 기대하는 걸까요. 우리 함께 설레고 두근거리는 로맨스의 매력으로 들어가 봅시다!  권지현 기자 rnjswlgus1103@cauon.net 

“네가 가르쳐준 사랑이 내 인생을 얼마나 빛나게 했는지 
넌 모를 거야. 정말 고마워.”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中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주인공 '백이진'과 '나희도'는 바닷가에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며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눈을 감은 나희도를 보며 백이진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들의 끝은 이별이다.사진출처 '스물다섯 스물하나' 네이버 TV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주인공 '백이진'과 '나희도'는 바닷가에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며 같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눈을 감은 나희도를 보며 백이진은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그들의 끝은 이별이다.사진출처 '스물다섯 스물하나' 네이버 TV

 

서로 강하게 이끌리는 두 사람. 둘의 관심은 곧 호감이 된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웃는 날들이 많아진다. 호감이 사랑으로 변하는 순간, 그들은 남에서 연인이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로맨스(romance)’라 부른다.  

  로맨스의 문을 열다 
  로맨스는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뜻하는 말로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럽으로 영향력을 넓히던 중세 로마로 인해 로마의 영향권에 있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지에서 라틴어의 방언이 생겨났다. 이를 ‘로망스(romans)’라 불렀는데 로망스로 쓰인 연애담·무용담을 로맨스라 한다. 

  대표적인 고전 로맨스 문학에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셰익스피어 씀), 사랑하는 여인에게 약혼자가 있음을 알고 자살을 택한 베르테르의 이야기를 담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요한 볼프강 폰 괴테 씀) 등이 있다. 종이 위에 쓰인 로맨스는 나아가 미디어 속으로도 스며들었다. 영화 <어바웃 타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웹툰 <어쩌다보니 천생연분>까지. 이제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로맨스를 접한다. 

  사람들은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기에 로맨스물을 소비하는 걸까. 소설 『러브 플랜트』의 저자 윤치규 작가는 로맨스에 반영된 환상에 관해 이야기했다. “누구나 사랑을 하면서 겪는 후회들이 있잖아요. 사람들은 로맨스 서사 속에서 자신이 후회했던 일이 반복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결말이 어땠을지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했으나 어떤 한계 때문에 그 사람을 놓쳤을 경우, ‘만약 놓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호기심과 상상력이 로맨스 서사의 환상으로 투영됐다고 볼 수 있죠.” 

  아는 맛, 새로운 맛 
  로맨스는 진부한 표현 혹은 고정관념을 뜻하는 ‘클리셰’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로맨스 클리셰는 평범한 여자와 재벌 남자가 우연한 만남으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다. 드라마 <사내맞선>, 드라마 <상속자들> 등에서 이러한 클리셰를 사용했다. 클리셰는 대중이 예측할 수 있게 해 편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똑같은 인물 설정과 로맨스 서사로 대중이 흥미를 잃고 진부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클리셰를 비트는 ‘역클리셰’가 등장했다. 역클리셰는 기존 클리셰를 반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예상을 뒤집는 신선한 내용을 전한다. 역클리셰를 사용한 작품 중 하나로 조선의 궁녀 ‘성덕임’과 세자 ‘이산’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 있다. 책장 위쪽을 살펴보던 성덕임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로 넘어지려 할 때 이산은 성덕임의 머리를 책장 쪽으로 민다. 당연히 여주인공을 받아주리라 생각했던 대중의 예상에서 벗어난 이 장면은 신선한 웃음을 선사했다. 

  로맨스 작품 속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녀도 클리셰를 뒤집었다. 악녀는 늘 매혹적인 외모와 욕망있고 계획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묘사됐다. 그러나 웹소설 『악녀는 모래시계를 되돌린다』(산소비 씀)에서는 새로운 악녀가 등장한다. 전생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여주인공은 우연한 기회로 모래시계를 얻게 된다. 모래시계와 함께 환생한 여주인공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치밀하고 계획적인 복수를 펼친다. 기존 악녀의 이기적이고 간사한 모습은 오히려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류수연 교수(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는 변화하는 로맨스 묘사 속에서 얻는 대리만족에 관해 설명했다. “페미니즘 리부트에 따라 주체적인 여성, 더 이상 착함을 강요받지 않는 여성의 등장은 필연적이었어요. 사회적 시선 앞에서 착함에 대한 강요를 거부하고 자기 역량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죠. 누군가에게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 인물들이 등장한 겁니다.” 

  이것도 사랑, 저것도 사랑 
  이제 로맨스는 성인 남녀의 사랑만 담진 않는다. 10대들의 사랑을 담은 하이틴 로맨스, 성 소수자의 사랑을 담은 퀴어 로맨스, 인간이 아닌 대상과의 로맨스 등 다양한 로맨스가 존재한다.  

  하이틴 로맨스는 청순한 여주인공, 밝은 남주인공, 풋풋한 첫사랑, 방황하는 청춘 등을 특징으로 한다. 하이틴 로맨스 작품을 접한 대중은 10대의 감성을 추억하며 아련함을 느끼게 된다고 평가했다. 

  이성애에서 탈피한 로맨스도 있다. 남자와 여자, 이성에만 국한됐던 성별의 경계를 허물고 성 소수자의 사랑을 담은 퀴어 로맨스도 있다. 동성애를 다룬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특별한 소재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대상과의 사랑도 그렸다. 로맨스 만화 <이웃집 외계인>은 평범한 여고생 ‘보라’와 유토피아 행성에서 온 외계인 왕자의 연애를 다루고 있다. <이웃집 외계인>을 집필한 소민 작가는 비현실적인 대상과의 로맨스를 보며 비현실성의 재미와 대리만족을 충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아닌 대상과의 로맨스를 담은 작품을 읽을 때만큼은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재밌는 사건을 접할 수 있는 거죠. 또한 인간이 아닌 대상이기에 가능한, 시간을 넘어서는 영원한 사랑을 주는 대상을 보면서 크게 만족할 수 있습니다.” 

  로맨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앞으로의 로맨스가 그릴 서사에 관해 최지운 강사(강원대 국어국문학과)는 여성의 욕망을 더욱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 전했다. “로맨스 장르는 통계적으로 여성 수용자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여성 대중이 바라는 사랑의 형태를 충실하게 구현한 작품들만이 성공하거나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현대 여성들이 바라는 욕망과 정서를 더 충실하게 담아내는 쪽으로 변화하겠죠.” 

  로맨스의 문을 닫다 
  사랑에는 시작이 있고 이별이라는 끝이 있다. 통속적으로는 사랑의 성공으로 가정을 이루는 것을 해피엔딩이라 하고 사랑이 실패해 이별하는 것을 새드엔딩이라고 한다. 이별 또한 로맨스의 한 과정이기에 로맨스 작품의 결말을 이별로 맺는 경우도 존재한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두 사람의 이별로 끝을 맺은 작품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나희도’와 ‘백이진’은 서로의 꿈을 의지할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며 열렬한 사랑을 한다. 그러다 청춘 속에서 서로의 한 페이지를 남긴 채 각자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떠난다. 

  소설 『러브 플랜트』는 주인공들이 모두 이혼을 경험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다시금 로맨스를 꿈꾸게 되는 조심스러운 과정을 그리고 있다. 윤치규 작가는 이별의 엔딩이 오히려 열린 해피엔딩이라고 언급했다.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은 전통적인 혼인관과 가부장의 가치에 학습된 강요라고 생각해요. 로맨스를 정해진 결말을 위해 복무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죠. 이 점에서 로맨스 서사 속 이별은 열린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는데요. 주인공의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로맨스가 찾아온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피엔딩으로 점철된 로맨스뿐만 아니라 이별을 그리는 로맨스를 통해 우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건강한 사랑, 건강한 이별은 무엇인지를 배우기도 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새롭게 정립하기도 한다. 하나의 작품이면서 우리의 인생이기도 한 로맨스. 작품 속 사랑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며 진정한 로맨스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사진출처 '스물다섯 스물하나' 네이버 TV
사진출처 '스물다섯 스물하나' 네이버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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