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창은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일컫는다. 고수가 북을 치는 장단에 맞춰 소리꾼이 노래를 부르는 판소리와 달리 병창은 연주자가 직접 노래를 한다. 이는 주로 국악에서 사용하는 연주방식으로 판소리의 한 대목이나 민요 등을 악기에 얹어 부른다.

  그렇기에 ‘피아노병창’이라는 표현을 들은 기자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완성된 서양 악기인 피아노와 국악의 병창이 어떻게 합쳐질 수 있다는 말인가. 곧장 피아노병창 관련 영상을 검색했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편견과 달리 피아노로 연주하는 오묘한 국악의 멜로디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매력에 빠진 기자는 한국장애예술인협회를 통해 피아노병창을 창시한 최준씨를 만나볼 수 있었다.

  아기 바람, 최준 <First love> 中
  날이 풀려 따뜻해진 어느 봄날 오후, 기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시 삼청동에 위치한 최준씨의 연습실에 찾아갔다. 한 손에는 그를 위한 케이크를 든 채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서자,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최준씨와 그의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피아노 2대가 눈에 들어왔다. 1대는 컴퓨터와 마이크가 연결돼 있었다.

  “머리 스타일이 너무 잘 어울려요.” 자리에 앉아 준비해온 질문지를 꺼내는 기자에게 최준씨는 칭찬 한마디로 대화를 시작했다. 함께 동행한 사진 기자에게도 카메라가 멋지다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기자도 그에게 칭찬으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최준님도 옷이 너무 예뻐요.” 밝은 분홍색 옷을 입은 최준씨는 생긋 미소를 보였다.

  “준아, 기자님께 앨범 사인해서 드리자.” 그의 아버지는 지난해 가을에 열린 최준씨의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과 펜을 들고 왔다. 최준씨는 앨범에 이렇게 남겼다. ‘중대신문 소지현에게. 잘 들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는 바람 소리가 마음에 들어 선풍기를 좋아한다며 문구 옆에 작은 선풍기를 그려 넣었다. 따뜻한 메시지가 담긴 최준씨의 앨범을 한 손에 든 채 기자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Sunset, 최준 <Again, start> 中
  
“피아노와 현악, 국악까지 다 함께 연주하니까 너무 좋았어요.” 피아노병창을 어떻게 만들게 된 건지 묻자 최준씨는 이렇게 답했다. 간단하지만 명료한 대답에 기자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좋아서 하게 된 것에 이유가 어디 있겠나. 최준씨의 아버지는 웃으며 그의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준이가 초등학교 때 피아노와 판소리를 배웠어요. 그러다 성인이 되어 실용음악과에 진학했죠. 처음에는 저희도 그 두 개가 접목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준이가 피아노를 치면서 판소리를 할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적벽가> 중에 ‘군사설움 대목’을 피아노병창으로 처음 불러줬어요.”

사진 김수현 기자
함덕해수욕장에서 춤춘 영상을 보여주고 감미로운 연주를 선물하기도 했던 최준씨. 사진 김수현 기자
함덕해수욕장에서 춤춘 영상을 보여주고 감미로운 연주를 선물하기도 했던 최준씨. 사진 김수현 기자

  최준씨는 작곡도 하고 아버지와 산책과 여행을 다니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제주도의 함덕해수욕장이다. “바다가 아주 시원해요. 바다 향기도 좋고 바람도 좋고. 함덕 서우봉 해변에서는 춤도 췄어요.” 그는 휴대전화에서 영상을 찾아 기자에게 내밀었다. 화면 속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흥겹게 춤을 추는 최준씨를 보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제가 춤을 출 때 한국 무용의 선비춤 동작 같았어요.” 그는 바닷가에 가면 혼자 휴대전화를 세워두고 춤을 추며 그 정취를 즐긴다.

  그는 여행을 다녀온 뒤 일기를 쓰듯 곡을 남긴다. 방 한켠에는 그가 방문했던 여행지의 지도와 관련 책자가 붙어 있다. 부산시부터 강원도 강릉시, 전라남도 담양군의 죽녹원까지 다양했다. 최준씨의 아버지가 다녀왔던 장소를 정리해주면, 최준씨는 그 기억을 되살리며 곡을 써내려간다. 최근에는 부산시에 다녀와 추억을 떠올리며 곡을 만들고 있다.

  “녹음하던 건데요. 들어보실래요?” 최준씨는 기자들을 만나기 전 작업하던 곡이라며 피아노 앞에 앉았다. 멋진 <송정역>연주가 시작됐다. 높은 음의 멜로디가 감미롭게 흘러가는 노래에서 최준씨가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방울방울 흘러나온다. 그는 부드럽게 건반을 누르며 음악을 감상하던 기자와 눈을 맞췄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통한 기분이었다.

  이어 그는 <지하철 환상곡>을 들려줬다. 그의 첫 앨범 <First Love>의 13번째 수록곡이다. 송정역과 달리 낮은 음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곡이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가다가!” 그의 말과 함께 건반을 누르는 최준씨의 손이 점차 빨라졌다. 역에 정차했던 열차가 다시 출발하면서 점차 빨라지는 모습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러다 화려한 마무리로 곡을 끝냈다.

  허공을 걷는 길, 최준 피아노병창 앨범 中
  기자를 위한 작은 공연이 끝난 뒤 최준씨는 자리에 앉아 다시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지하철 내부에서 창밖을 찍은 영상이었다. “지하철 소리가 아주 부드러워요.” 영상 속 화면에만 집중하던 기자에게 최준씨는 지하철 엔진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아닌 지하철 소리를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촬영한 것이었다.

  남들보다 청각이 예민한 그는 각 지하철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를 듣고 신형과 구형 전동차를 구분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최준씨가 엔진이 움직이는 소리 덕분에 지하철을 좋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자를 만나는 날에도 최준씨는 아버지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왔다. 하지만 가끔 이런 그를 오해하는 사람도 있어 곤란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준이가 자폐성장애와 함께 약간의 틱장애도 갖고 있어요. 옆으로 사람을 응시하며 ‘으으’ 소리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래서 본인을 노려본다고 착각해 불쾌해하더라고요. 가끔 지하철 밖을 찍는 준이에게 자신을 촬영했다며 휴대전화를 보여달라고 하기도 하죠.” 말을 마치자 최준씨는 4호선의 진접역이 새롭게 개통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최준씨를 보며 그의 아버지는 이번 주에 함께 다녀오자며 대답했다.

  boundless, 최준 <Again, start> 中
  최준씨는 피아노병창 외에도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해외 유명 DJ 알렌 워커의 음악에 감명을 받은 그의 아버지가 최준씨에게 이런 장르도 있다고 들려주자, 최준씨는 바로 춘향가를 EDM(Electronic Dance Music) 방식을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올해 여름으로 계획 중인 그의 공연에서는 이러한 EDM 스타일의 국악을 선보이려고 한다.

  최준씨는 꿈이 무엇인지 묻는 기자에게 반짝이는 눈으로 오케스트라 형식의 판소리를 구성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연주와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행복한 하루를 살아간다. 그가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멜로디가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장벽이 모두 허물어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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