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든

자폐성장애는 발달장애의 범주로 분류된다. 증상과 성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도 불린다. 보통 사회성 결여와 언어 또는 의사소통 문제, 제한되고 반복적인 양상을 보이는 행동 등을 지닌다. ‘자폐증’으로도 표현되곤 하지만 이는 낡은 표현일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폐성장애로 지칭하는 게 바람직하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등록장애인수 현황’에 따르면 2020년 등록된 자폐인은 3만명에 달하며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자폐인에 관한 제도와 인식은 한참 부족한 게 현실이다.

  턱없이 높은 허들, 발판은 어디에
  한국의 장애인 복지지출 규모는 2017년 기준 전체 GDP의 약 0.6%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약 1.9%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적은 예산이 투입되다 보니 자폐인을 위한 복지 제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국내 최초 자폐인 교수인 윤은호 교수(인하대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는 자폐인들을 위한 고등 교육 시스템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자폐인들이 대학을 진학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장애인 특별 전형으로 입학 가능한 학과가 제한돼 있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기 어렵죠. 대학원은 아예 국가 차원의 지원이 없어요.” 

  김성천 교수(사회복지학부)는 자폐인이 성인이 되면 복지 공백에 놓인다고 언급했다. “장애인 복지 서비스가 나아지는 중이라고 하지만 성인이 된 자폐인을 향한 대책이 없어요. 보통 자폐인은 사회성이 미흡해 생산 활동 참여가 제한됩니다. 자립하기 어려운 구조죠. 그러나 이들을 위한 취업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현재 장애인의 안정된 일터 공급을 위해 장애인보호작업장이 존재하지만 지원이 부족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하지만 미등록 자폐인은 미비한 복지 서비스조차 받을 수 없다. 국가가 지원하는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선 장애인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올해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장애정도판정기준’에서는 자폐성장애를 인정받기 위해 의료기관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 ▲자폐성장애의 진단명에 대한 확인 ▲자폐성장애의 상태 확인 ▲자폐성장애로 인한 정신적 능력장애 상태의 확인 ▲자폐성장애 정도의 종합적인 진단 등에 따라 장애 정도가 판정된다. 

  그러나 판정 체계가 지나치게 의료적 판단을 중심으로 이뤄져 장애 등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3차 병원을 방문해 비용을 지불하고 지속적인 치료가 있어야 인정되기 때문에 장애 등록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등록 자폐인들은 안전망 밖으로 밀려날 뿐이다. 김성천 교수는 사용자의 니즈(needs)에 부합하는 판정 체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장애인의 복지 체계는 의료인의 판단을 더욱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 중심으로 개편해야 하죠. 그저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판정 기준을 구축하다 보니 문제가 반복되는 겁니다. 장기간 연구를 통해 개편해야 하는데 많은 예산이 투여된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어요.” 

  이제 그 색안경을 벗어주세요
  사회의 냉담한 시선은 자폐인을 비롯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장애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김성천 교수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수많은 비속어가 장애인을 향한 한국의 후진적인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은 아주 심각한 수준이에요. 한국은 장애인을 지칭하는 비속어가 가장 많은 국가로 손꼽히죠. 차별 어린 시선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문화는 사회 제도의 고장으로 이어집니다.”

  윤은호 교수도 적극 동의했다. “사회를 이끌어갈 젊은층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폐인을 향한 혐오 용어를 양산하고 있어요. 정치인 역시 상대를 비난할 때 ‘자폐적’이라는 용어를 서슴없이 내뱉죠.” 그는 자폐인이 한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혐오의 성역이라고 느낀다고 전했다.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할 방법으로 두 전문가 모두 자폐인이 일상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김성천 교수는 이같이 설명했다. “정책을 통해 자폐인에 관해 교육도 하고 자폐인들을 위한 터전을 만들어야 해요. 시민들이 자폐성장애에 자주 노출되면서 익숙해져야 하죠. 교류를 통해 서로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연습하다 보면 더 좋은 인식이 자리 잡을 겁니다.” 

  윤은호 교수는 자폐인을 시설에 있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폐쇄적인 시설에서 생활해야 하는 자폐인들이 많아요. 이들이 사회로 나와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장기적인 청사진이 시급하죠.”

  자폐인을 향한 선입견을 형성하는 미디어의 행태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드라마 혹은 영화 소재로 자폐성장애가 종종 활용되곤 한다. 다수의 자폐인은 미디어에서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것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이는 왜곡에 가깝다. 해당 인물이 천재성을 지닌 이유는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번트 증후군은 전반적인 지적 능력은 떨어지지만 좁은 영역에서 비범한 능력을 보여준다. 서번트 증후군이 나타나는 자폐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미디어가 형성한 ‘특별한 자폐인’에 관한 편견은 자폐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을 옥죈다. 

  김성천 교수는 미디어가 다양한 시선으로 자폐인을 비춰야 한다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자폐성장애는 주인공의 성공을 부각하는 극적인 장치나 시련으로 사용됩니다. 이에 자폐인과 그 가족들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죠. 특별한 자폐인뿐만 아니라 보통의 자폐인 모습도 반영해 다양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4월 2일은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자폐인의 날’이다. 자폐성장애에 관한 사회적 공감을 높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푸른 빛을 켜는 ‘블루라이트 캠페인(Light It Up Blue)’이 진행된다. 푸른색은 자폐인들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며 희망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국내에서도 N서울타워 등 전국 랜드마크 90여 곳에서 파란색 조명을 밝힌다. 우리 모두 벽을 허물고 마음을 푸른 빛으로 물들이는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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