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사회적 소수자를 조명할 때 나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곤 합니다. 소수자가 아닌 우리가 소수자를 조명한다는 전제가 깔린 셈이죠. ‘보통의 이야기’는 소수자를 이질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같은 사회 구성원의 위치에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죠. 오늘도 지극히 보통의 사람들을 만나 보통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니다. 4월 2일은 유엔에서 선포한 ‘세계자폐인의 날’입니다. 자폐인들은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각자만의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죠.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잠시 다녀와 봤습니다. 소지현 기자 jihyeon86@cauon.net

매사에 꾸준히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조상협씨. 기자와의 대화 내내 겸손함과 자신감이 그의 말투에 연신 묻어났다. 사진 오진실 기자
매사에 꾸준히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조상협씨. 기자와의 대화 내내 겸손함과 자신감이 그의 말투에 연신 묻어났다. 사진 오진실 기자

조금은 느리지만 
그럼에도 치열하게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 타인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사람, 수줍음 많은 사람. 그리고 그 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세계가 확고해 사람과의 만남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자폐인이다. 사람을 형용하는 표현 중 유독 ‘자폐성장애를 가진’이란 표현이 주는 거리감은 멀기만 하다. 낯섦에서 비롯된 행동이, 혹은 배려를 위한 행동이 그 거리를 만든 걸까. 

  사소한 배려로 한 발짝 가까이
  
신촌 어느 한 골목에 위치한 디자인 회사. 그곳에 자폐성장애가 있는 본인의 이야기를 흔쾌히 들려주겠다는 분이 있어 만남을 갖기로 했다. 자폐인들을 디자이너로 고용한 사회적기업인 ‘오티스타’에서 근무하는 조상협 디자이너와의 약속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앞두고 기자는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곤 ‘똑똑!’, 문을 두드렸다. 

  방안에 들어서자 분주하게 상자를 옮기고 책상과 의자의 위치를 조정하는 상협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편하게 앉으세요.” 바쁜 와중에 약속을 잡은 건 아닌지 걱정이 들 때쯤 상협씨가 기자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알고 보니 그는 여태 기자를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있던 거였다. 그의 세심한 배려에 긴장 가득했던 공기는 온기를 되찾았다. 

  나와 닮은듯한 너에게로
  
상협씨는 컴퓨터영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그는 적성을 살려 대학에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취미였어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제작해보고 싶단 생각까지 했죠. 그래서 컴퓨터영상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꿈처럼 환상적이진 않았다. “애니메이션 관련 직종을 열심히 찾아보고 도전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어요. 한동안 헤맸죠.” 대학 졸업 후 상협씨는 웹 디자인, 공무원 인턴, 공장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며 애니메이션 제작이라는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준비했다. 그러다 마치 운명처럼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인 오티스타를 만났다. 

  기자는 그림을 제작하고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현재 직무도 원래의 꿈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 않냐고 물었다. “많이 달라요.” 그는 아쉽다는 듯 대답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요구하는 그림의 방향성과 애니메이션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죠.” 

  비록 지금의 직무가 처음 꿈꿨던 직업과는 엄연히 다르지만 상협씨는 만족스럽다고 한다. “동료들의 그림을 보면 각자 개성이 뚜렷합니다. 그림이 깔끔하고 감각적이죠. 게다가 함께 일하는 분들이 자폐인의 특성을 잘 이해해주셔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는 이런 회사 생활에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 지었다. 다행히도 전공 공부 역시 그에게 도움이 됐다. “지금 제가 사용하는 기술들의 기본 바탕은 전공 공부에 있습니다. 디자인 감각이나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도 대학 다닐 때 배웠죠.” 

  일도 경험도 인연도, 차곡차곡
  
상협씨는 주로 다른 자폐인 디자이너들의 그림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맡고 있다. 그 밖에도 서류 작업이나 그림을 수정하는 작업을 담당하기도 한다.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이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기까지 그에겐 치열한 노력이 있었다. 상협씨는 업무를 할 때 주위 환경과 소통하며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혼자만의 작업 속도와 작업물은 업무에서 지양해야 합니다. 주위 환경과 꾸준히 소통하며 그 균형을 잘 잡아야 하죠.” 시간 엄수와 협동 작업이 요구되는 직장 생활에서 약 10년간 직접 부딪히고 배우며 깨달은 점이다. 

  근무 시간 외에도 상협씨는 자기 계발에 힘쓰고 있었다. 그는 평소 운동과 종교 활동을 즐겨 한다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예전 생활 습관은 엉망이었어요. 종교를 믿고 나서 관련 모임을 나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제 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죠. 이후 생활 습관에 변화를 주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고 규칙적인 생활도 실천했답니다.”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시나요?” 기자는 종교 모임에 종종 참여한다는 그의 이야기에 궁금해졌다. “자주는 아녜요. 종교적 믿음 때문에 가끔 모임에 가긴 하죠. 그래도 정기 모임을 제외하고는 사적으로 만나긴 어렵더라고요.” 상협씨가 전한 이유는 다양했다. 사는 곳이 멀어서, 각자 삶이 바빠서, 코로나19로 인해 만남에 제한이 있어서. 또한 적극적이지 못한 그의 성격도 한몫했다고 밝혔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서 교류하는 성격이 못돼요. 그래도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 정기 모임에 참여하거나 몇몇 지인들과 인연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유독 그의 땀방울이 무거웠던 이유
  
업무부터 취미까지 꾸준히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하는 상협씨는 이렇듯 스스로에게 유독 엄격한 사연을 들려줬다. “학창 시절 때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를 고집했어요. 그러다 보니 힘든 일이 조금 있었죠.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야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조언을 들으며 차츰 소통하는 법을 터득했죠. 그제야 사람들이 이전에 저와 대화를 나누기 정말 힘들었겠다고 이해가 되더라고요.” 

  담담하게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의 모습에 기자는 놀랐다. 그런 아픈 과거가 있었을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꽤 길었던 인터뷰 시간임에도 상협씨와의 대화가 어렵다고 느꼈던 순간은 전혀 없었다. 

  상협씨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부모님과 친인척들, 대학이나 직장, 각종 모임에서 만난 인연들 덕분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스스로 조심할 부분을 찾아보면서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나갔죠.” 

  이어 아직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 못한 자폐인이 주위에 있다면 조금의 시간을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처음부터 그들을 미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좋겠어요. 조그마한 신뢰에도 그들의 말과 행동이 많이 나아질 수 있거든요. 제가 바로 그 증인이죠.” 

  똑똑똑! 이젠 우리 차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약 2시간의 대화에서 기자는 상협씨와 거리를 좁혔다. 그가 겪은 일에 공감하고, 힘들었던 이야기에 속으로 분노하고, 그럼에도 치열하게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대화 속 상협씨는 ‘자폐인’이란 틀 안에서만 조명하기에 무리였다. 한 걸음 용기를 내 마음의 문을 연 상협씨처럼 이제는 우리가 다시 한 걸음 마음의 문을 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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