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ing Lodge Hohenlohe Tatranská Javorina, Slovakia
<Hunting Lodge Hohenlohe> Tatranská Javorina, Slovakia 사진제공 (주)미디어앤아트

어느 여름날 발 담갔던, 제주도의 푸르른 바다가 유난히도 그리워지는 날이었습니다. 문득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던 기자는 복합문화공간 그라운드시소 성수에서 열린 <우연히 웨스 앤더슨: 어디에 있든, 영감은 당신 눈앞에 있다> 전시장으로 향했죠. 기적처럼 눈앞에 세계 각지의 여행지들이 펼쳐졌습니다. AWA 전시비행기, 지금 탑승하실 시간입니다.

  AWA의 따뜻한 아카이빙
  ‘WELCOME ADVENTURES!’ 여행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한 강렬한 문구와 따스한 불빛이 기자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환상의 세계에 놀러온 아이처럼 가볍고 설렘 가득한 발걸음으로 전시장을 거닐었죠. 이어지는 일련의 사진들은 예술이자 힐링 그 자체였습니다.

  2017년 여름, 미국 브루클린에 거주 중인 월리와 아만다 코발 부부가 여행 버킷리스트를 구상하며 시작한 AWA(Accidentally Wes Anderson) 프로젝트는 점차 세계 각지의 다양한 여행자와 창작자가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AWA팀이 개최한 전시가 바로 <우연히 웨스 앤더슨>입니다. 웨스 앤더슨은 강렬한 색감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프렌치 디스패치> 등을 연출한 감독으로 유명하죠.

 

Kaeson station, Pyongyang Metro Pyongyang, North Korea 사진제공 (주)미디어앤아트
<Kaeson station, Pyongyang Metro> Pyongyang, North Korea 사진제공 (주)미디어앤아트

아련한 추억을 담은 색색깔의 팔레트
  전시는 북미,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수집된 ‘웨스 앤더슨 감성’의 사진 300여 점을 회고, 여정, 영감 세 가지 테마로 선보입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파스텔톤 색감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완벽한 대칭 구도의 이미지, 위트가 담긴 순간 포착까지. 영화 속 한 장면과 같은 사진들을 감상하며 비치된 QR코드를 스캔해 각 장소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도 세세히 살펴봤습니다.

  비행기, 기차, 버스, 자전거 등 우리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이동수단을 모아둔 ‘Mind the Gap’ 존에서는 열차 창문 프레임에 담긴 눈 쌓인 산봉우리와 에메랄드빛 호수를 두 눈에 소중히 담았죠. 창밖으 로 펼쳐지는 파노라마에 기자는 카메라를 잠시 끈 채 그저 편안히 영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홍색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특별한 색으로, 색채 심리학에서 치유와 휴식의 색으로 여겨지기도 하죠. 방공호를 겸해 땅속 깊이 자리 잡은 지하철인 북한의 개선역은 화사한 분홍빛으로 가득했습니다. 평양에서도 웨스 앤더슨적 장면이 포착됐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외에도 슬로바키아의 타트라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사냥용 별장과 눈 덮인 송스반 호수 사진 등 눈을 다채롭고 즐겁게 해주는, 그러나 달리 보면 평범한 사진과 미처 몰랐던 이야기들이 짧은 여행을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 주었죠.

Cross-Country Skiers Sognsvann Lake, Norway 사진 이서정 기자
<Cross-Country Skiers> Sognsvann Lake, Norway 사진 이서정 기자

  AWA 렌즈를 끼고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가 매일 같이 지나는 그곳도 분명 크고 작은 의외의 이야기를 담아두고 있을 거예요.’ <우연히 웨스 앤더슨>은 전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일상의 장면도 특별해질 수 있다고 말이죠. 반갑다는 듯 네모난 창문을 두드리는 빗줄기, 자전거를 타며 바라보는 노을 뿌려진 한강, 그 잔잔한 물결부터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동네 산책로까지.

  피사체를 담아내기 위해 연속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봅니다. 셔터를 누르는 손끝에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봅니다. 여행이 주는 행복이 꼭 뚜렷한 행선지를 둘 때만 유효한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있든, 영감은 우리 눈앞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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