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ami, Florida, USA. 여행 감성을 자극하는 세계 곳곳의 이국적인 풍경들로 가득했던 요시고 사진전 속 작품이다.
<Miami, Florida, USA>. 여행 감성을 자극하는 세계 곳곳의 이국적인 풍경들로 가득했던 <요시고 사진전> 속 작품이다. 사진 박서영 기자

일상 속 미술관에서 온 초대장
전시가 건네는 위로의 손길

일상에서 여행의 감각을 느끼지 못한 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19 이후 통제된 삶에 지친 사람들은 쉴 곳을 찾아 나섰다. 예술은 기다렸다는 듯 마음을 달래줄 공간을 선물했다. 바로 여행과 휴식을 주제로 한 전시들이다. 많은 활동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지금, 전시는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을까.

  코로나19가 쏘아 올린 거대한 공
  코로나19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변화했다. 미술관도 그 변화의 물결을 피해갈 수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람이 어려운 상황에서 다수의 미술관은 전시를 연기하거나 취소했고 자연스레 방문객의 발길도 끊겼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2020년 문화예술행사 관람률은 약 60.5%로, 2019년보다 약 21.3%p 감소했다. 그중 미술 전시회는 지난해보다 약 5.3%p가 하락해 약 8.7%를 기록했다. 위기에 다다른 미술관은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국내 미술관은 사전 예약제와 온라인 전시회를 도입했다. 미술관이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자 한 시도였다. 양연경 교수(한성대 아트앤디자인커뮤니케이션연구소)는 이러한 시도가 전시산업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전시의 온라인화는 디지털 가상공간의 사용성을 확대했고 전시를 기획하고 보여주는 큐레이션 방법에도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이전부터 온라인 전시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가 구현을 앞당겼어요.”

  김은진 교수(한양대 융합산업대학원 미술치료학과)는 여전히 오프라인 전시회가 가진 강점에 주목했다. “미술관은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색다른 경험을 만들어요. 실체를 접하는 기회가 거의 사라진 현대인들은 미술관에서 실제와 상호작용하며 생생함을 느낄 수 있죠.”

  예술, 거기 있어 줄래요
  야외 활동을 하지 못해 생기는 우울함과 답답함을 한 번쯤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와 우울증을 뜻하는 ‘Blue’가 결합한 ‘코로나 블루’의 대표적 증상이다. 예술계는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기 위해 미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내 대형 미술관에서는 치유와 회복을 주제로 한 전시들이 연이어 열렸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지난해 4월 코로나19로 불안을 겪는 시민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국제주제기획전 <이토록 아름다운: The Nature of Art>를 개최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지난해 5월부터 8월까지 특별기획전 <재난과 치유>를 진행했다.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전시 및 행사 분야에서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과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가 나란히 예매율 1, 2위를 기록했다. 두 전시는 ‘휴식’이라는 공통 주제를 가진다. 김인설 교수(가톨릭대 공연예술문화학과)는 이러한 소재의 전시 감상이 일상에서의 도피라고 말했다. “최적의 도피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것인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죠. 미술관은 간접적이지만 예전의 자유로운 느낌을 충분히 재현할 수 있어요.” 여행의 갈증을 느끼던 이들이 미술관을 찾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요시고 사진전>을 찾았던 관람객 대부분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라는 평을 남겼다.

  김은진 교수는 여행을 소재로 한 전시가 지닌 의미를 치유의 관점에서 정의했다. “치유의 개념은 상처를 스스로 회복한다는 거예요. 먼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것이 중요하죠. 여행이나 자유를 주제로 한 전시는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오현숙 교수(한서대 교육대학원 미술치료교육전공)도 전시를 통해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가 갇힌 세계에 있다 보니 정작 자신의 상처를 살펴볼 시간이 없었어요. 전시를 보면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 있을 거예요. 그 작품을 감상하며 마음의 상처를 확인하고 치유할 수 있는 거죠.”

  어쩌면 위기는 기회일 수 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로 위기를 맞았던 미술관은 그 속에서 치유의 힘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미술관은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해 위기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쉽게 즐길 수 있던 전시가 온라인 사전예약 문화로 자리 잡았다. 예술 향유 격차가 커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2020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행사를 관람했다고 보고한 연령대는 20대가 가장 높은 비중인 약 84.3%를 차지했다. 70세 이상은 약 20.5%로 가장 낮았는데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약 29.4%p나 하락했다. 이에 양연경 교수는 전시 큐레이션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대처하느라 특정 연령대의 문화 소비에만 집중했다는 한계가 있었어요. 전시 큐레이션은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 향상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황희곤 교수(한림국제대학원대 컨벤션전시이벤트전공)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발판이라고 분석했다. “온라인 전시회는 계속 발전할 거예요. 사회적으로 디지털 격차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죠. 이 시기가 지나면 기성세대도 온라인 제도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변화가 디지털 문해력을 갖추는 기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를 항해하는 예술
  전시가 우리에게 회복의 힘을 주는 건 분명하다. 김인설 교수는 미술관이 치유의 연결망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전시를 보고 혼자 치유하는 것으로 끝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해요. 전시를 통해 얻은 마음의 안정을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죠.”

  미술관이 전하는 힘은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김은진 교수는 앞으로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내면과 대화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관람객이 작품을 직접 체험하는 전시가 늘고 있어요. 그 체험이 단순히 즐거움을 느끼는 목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지금의 전시는 여행과 휴식을 주제로 우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그만큼 지친 사람들에게 ‘쉼표’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답답한 일상 속 전시회는 달콤한 휴식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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