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가 품은 꽃처럼 
우리 삶에도 사랑이 만개하길  
사랑이 한가득 담긴 그림을  
당신께 띄울게요

“사랑은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오는 감정이 아닐까요?” 사랑은 뜨겁고 쓰다. 때로는 달콤하고 풋풋하다. 사랑 속에서 느끼는 이 모든 찬란한 감정은 신이 인간을 축복하기 위해 내린 선물이 틀림없다. 사랑은 수천수만가지 감정과 이야기를 머금고 잔잔하게 흐른다. 우리는 그 사랑이 일으키는 물결을 타고 인생을 헤엄친다. 고꾸라지기도 순항하기도 하겠지만 사랑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결국 사랑은 우리 모두의 성장 이야기다. 여기 민화와 사랑을 한 데 버무린 작가가 있다. 황정희 작가의 사랑노래를 들어보자.

  운명처럼 다가온 물고기 
  황정희 작가의 ‘사랑의 선물’ 전시에는 민화 어해도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 사랑스러운 작품세계가 펼쳐져 있다. 이번 전시는 3년 만에 열리는 앙코르 전시로, 황정희 작가는 이번 전시가 지난 전시보다 더 큰 범주의 사랑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사랑이라는 주제는 이전 전시와 같은 맥락이에요. 다만 이번 전시는 사랑을 연인 관계에 한정하지 않았죠.” 황정희 작가는 관계의 상호작용 속에 한결같이 흐르는 사랑을 포착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껴요. 이런 모든 감정이 결국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작품에 녹여냈답니다.” 

  물고기는 황정희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사랑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하면서 황정희 작가는 물고기에 관한 강렬한 추억을 떠올렸다. 황정희 작가는 어린 시절 연못에서 봤던 자유로운 잉어 한 쌍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2마리의 잉어가 한치의 부딪힘도 없이 나란하게 물속을 헤엄쳐 나가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어요. 그들이 만들어내는 물의 파장은 우아하게 흐르는 음악 선율 같았죠.”  

  황정희 작가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며 민화의 한 갈래인 ‘어해도’를 처음 접했다. 어해도는 어류나 게, 새우, 가재 등을 그린 그림으로 평화로운 낙원 세계를 담아낸다. 어해도에는 구도에 얽매이지 않은 물고기의 헤엄치는 장면이 그려진다. 이와 더불어 화훼나 산수가 한 화폭에 담겨지기도 한다.

  황정희 작가는 어해도에 녹아있는 상징과 의미에 매료됐다. 우리 선조는 알을 많이 낳는 물고기 그림을 보며 다산을 기원했고,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 그림을 보며 출세를 염원했다. 이렇듯 예로부터 물고기에는 여러 길상적 의미가 포함돼 있다. 황정희 작가는 그중에서도 사랑에 초점을 맞춰 현대인의 모습을 물고기에 투영했다. “물고기 1쌍이 물속에서 노는 모습은 연인이나 부부의 사랑과 화합을 상징해요. 그래서 예로부터 신혼집에 장식했다고 전해지죠. 저는 이 의미가 가장 눈에 띄었어요. 어릴 적 물고기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 어해도와 만나면서 작품 세계가 형성됐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세상 
  황정희 작가는 생물학적 명칭이나 분류에 구속되지 않고 마음에 떠오른 물고기 형상을 그린다. 내면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의 자유로운 형태를 빌어 우리 삶 속 이야기를 표현한다. 작품 배경도 자유롭다. 물고기가 수중 생물이긴 하지만 작품 배경은 물속에 제한되지 않는다. 꽃, 별, 달 등의 자연물이 어우러지는 제3의 세상을 창조해 그 안에 이야기를 담아낸다. 황정희 작가는 대중과의 소통을 지향한다. 어려운 철학과 이론보다는 누구나 느끼는 감정에 관한 작품을 제작한다. “작품을 매개로, 제가 느끼는 마음을 관람객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서 행복하게 미소 짓는 여유가 생겼으면 해요. 대중 안에 스며들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면 제 작품이 민화와 비슷하다고 느껴요.” 

  <사랑 품은 단지>는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물고기와 자연물을 활용한 기존 구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복을 상징하는 달항아리로 구성을 확장했다. 사랑을 품은 단지에는 모든 삶을 위한 황정희 작가의 애틋한 소망이 담겨있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에 놓인 복 단지. 그 안에 자리한 물고기의 이야기를 양분으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있어요. 우리 삶의 모습도 사랑 품은 단지 같기를 바라요.” <사랑 품은 단지>에는 2마리의 물고기가 등장한다. 황정희 작가는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관계성에 따라 물고기 개체 수를 다르게 설정했다고 말했다. “물고기 1마리는 나 자신의 모습을, 2마리는 연인, 친구, 나와 나의 꿈 등의 관계성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 이상의 물고기는 가족이나 현대 사회 속 여러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답니다.” 

  현대적 재료로 낸 전통의 맛   
  황정희 작가는 색감 활용에 적극적이다. 학생 시절부터 채색화에 큰 흥미를 느꼈고 작품에도 이런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황정희 작가는 주로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 작업을 하는데, 아크릴 물감은 완성된 후에 선명하게 발색돼 화사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아크릴 물감과 더불어 ‘과슈’라는 수용성 재료도 함께 사용한다. 과슈는 말랐을 때 아크릴 물감처럼 반짝거리기보다는 색을 흡수하는 무광 느낌을 줘, 동양 물감과 비슷한 표현이 가능하다. 황정희 작가는 어해도의 상징적인 부분을 일부 차용하면서도 구도와 소재는 현대적 색채와 조형을 갖추는 방향으로 작업한다. “어해도를 모티브로 작품을 구상해요. 그다음 캔버스와 아크릴 등의 현대적 표현 재료를 혼합해 그림을 완성하죠. 과거와 현대를 조화롭게 아우르고 싶어요.”

  동양 채색화는 전통 한지에 분채, 석채를 겹겹이 올려 채색한다. 분채와 석채는 황토, 광물 등 자연에서 얻어진 재료로 만든 안료다. 색을 여러번 칠하는 만큼 그 안에 깊음이 느껴진다는 점이 동양 채색화의 매력이다. 황정희 작가의 작품에 보이는 각각의 색면은 전통 채색화 기법처럼 칠하고 마르기를 4~5번 정도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화룡점정, 독특한 질감 한 스푼 
  <처음 그때>는 두 개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연작이다. 발랄한 색감과 반짝이는 스팽글(spangle)이 눈길을 잡아끈다. 스팽글은 반짝거리는 얇은 장식 조각이다. 황정희 작가는 <처음 그때>에서 연꽃잎 모서리에 스팽글을 사용해 특별한 느낌을 가미했다. “비즈(beads)를 통해 물고기 비늘의 반짝거림을 표현하기도 하고, 스팽글을 사용해 작품에 포인트를 더하여 대상의 반짝거림을 대신하여 표현하기도 해요.”

  또한, 황정희 작가는 작은 돌가루 느낌을 주는 스톤미디엄을 활용해 바탕 질감을 다채롭게 변주하기도 한다. <콩닥콩닥 설레임> 시리즈는 스톤미디엄을 활용한 작품이다. 황정희 작가는 서로 호감을 가진 두 사람 사이에 자연스레 피어나는 풋풋한 설레임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바탕에 스톤미디엄을 겹겹이 칠해 질감 표현에 중점을 뒀어요. 마주 보는 물고기 2마리를 화면 중앙에 배치하고 주변 나뭇잎, 꽃들이 그들을 감싸고 있는 구도로 표현했죠. 중앙에 자리한 물고기를 강조하고 싶었답니다.”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코로나19로 멈췄던 전시가 차츰 재개되면서 황정희 작가는 바쁜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지난해 초 코로나19로 주춤했던 전시가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많아지고 있어요. 올해 들어서도 전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답니다. 다양한 장소에서의 여러 전시를 통해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일 계획이에요.” 황정희 작가는 그림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화가를 꿈꾼다. “다양한 소재와 색채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질 생각이에요. 사랑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감정을 그림으로 풀어내고 싶어요.”
 

황정희  作, ‘사랑 품은 단지’, 2020, Acrylic on canvas, 65.1cm×65.1cm. 사진 제공 탐앤탐스 갤러리탐(耽)
황정희  作, ‘처음 그때 1’, 2017, Acrylic on canvas, spangle, 116.8cm×60cm 
황정희  作, ‘처음 그때 2’, 2016, Acrylic on canvas, spangle, 116.8cm×60cm
사진 제공 탐앤탐스 갤러리탐(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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