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서민희 기자
사진 서민희 기자

소망이란 붓으로 민화를 칠하다
여러분은 ‘민화’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민화의 동양적 작품표현이 생각납니다. 교과서에서 많이 본 그림이죠. 그런데 익숙하지만 친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그려보면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민화에 스며들기 위해 화실로 향했습니다. 

  선을 그리고 옮기다 
  민화 체험은 밑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고른 그림은 접시에 담긴 앙증맞은 수박 그림입니다. 그림은 ‘장지’라는 종이 위에 그리는데요. 장지는 두껍고 질기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우개질에 취약한 특성을 가집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장지 위에 바로 밑그림을 그리기엔 어렵죠. 그래서 다른 종이에 밑그림을 그린 다음 장지에 옮기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밑그림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요? 먼저 수박 도안이 그려진 종이 뒷면에 연필을 칠합니다. 그다음 연필이 묻은 부분이 장지와 닿게 놓고 볼펜으로 종이에 있는 수박 그림을 꾹꾹 눌러 따라 그립니다. 그러면 종이 뒤에 묻은 흑연자국이 장지에 묻어 옮겨지죠. 이제 밑그림 작업은 끝났습니다. 저는 시간 관계상 도안을 사용했지만, 밑그림은 자유롭게 구상할 수 있습니다.  

  한 땀 한 땀 색을 입히다 
  밑그림을 완성했으니 이제 붓을 들 차례입니다. 채색에는 민화 필(小) 2개와 세필 붓 1개, 총 3개의 붓을 썼는데요. 전체적인 부분은 민화 필(小)을, 세밀한 부분은 세필 붓을 이용했습니다. 사용된 색깔의 종류는 총 9개인데 색을 다양하게 조합해서 사용했습니다. 민화에서의 색깔 이름은 우리가 흔히 접하던 명칭과 조금 달랐습니다. 문제를 하나 내볼까요. ‘맹황색’은 무슨 색일까요? 정답은 초록색입니다. 어린잎과 비슷한 색이라는 뜻으로 초록색과 유사한 색이죠. 흰색은 호분색, 빨간색은 홍매색 등 다른 색에서도 동양적인 느낌을 풍기는 이름으로 표현된답니다.  

  채색을 시작해볼까요. 수박이 담긴 접시 부분을 먼저 색칠합니다. 접시 부분은 선명하고 깔끔한 느낌으로 칠해야 하는데요. 따라서 물감이 번지지 않도록 물감의 농도를 진하게 작업했습니다. 삐져나가지 않게 집중해서 칠하려고 노력했지만, 선을 넘어버렸습니다. 헉! 소리가 나더라고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민화를 그리는 장지는 덧칠을 할 수 있는 특성이 있어 수습이 가능하기 때문인데요. 삐져나온 부분을 다른 색으로 덮어 칠했더니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이영선 Bliss민화화실 대표는 수정이 가능한 민화의 장점을 설명했습니다. “민화는 여러 번 채색해도 종이에 부담이 가지 않아요. 민화를 체험한 많은 분이 ‘실수를 용서받아서 좋다’고 하셨어요.” 

  다음은 수박을 표현할 순서입니다. 수박은 먼저 칠한 접시와 다르게 채색하는데요. ‘바림’이라는 기법을 사용해서 색을 입힙니다. 바림이란 색에 단계를 주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이는 흔히 알고 있는 ‘그라데이션’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호분색과 맹황색을 섞고 물을 많이 더해 묽게 만들어준 다음 수박을 전체적으로 칠해줍니다. 바림을 표현하기 위한 밑색을 깔아주는 건데요. 밑색을 담하게 칠하고 어느 정도 마르면 그 위에 맹황색을 진하게 올립니다. 그리고 물 먹인 붓으로 이를 풀어주면서 색에 단계를 만들어 줍니다. 수박의 과육 부분도 같은 방법으로 표현하죠. 마지막으로 씨앗을 그려주면 수박 그림이 완성됩니다.  

  간절한 마음을 더하다 
  그리고 보니 조금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그림에 그림자나 명암이 나타나지 않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동양화는 사물을 실제처럼 형상화하는데 큰 관심이 없습니다. 민화 역시 사물을 사실처럼 묘사하는 것보다 그림이 갖는 의미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예를 들어 출세를 바라며 잉어를,  다산을 소망하며 과일을 그리는 것이죠. 제가 완성한 수박 그림은 목숨 수(壽), 복 복(福) 자를 쓴 ‘수복’과 발음이 비슷하다 해 장수와 복을 상징합니다. 최근 죽음이 두려워지면서 가족들과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잘 맞는 그림을 고른 것 같네요. 

  민화를 통해 삶을 바라보다 
  체험을 하고 나니 민화가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민화에 우리의 삶이 묻어 있기 때문인데요.  삶도 한 번에 완성할 수 없고, 계속해서 경험을 칠해야 하죠. 옅어 보이는 경험은 사실 미래를 위한 밑색입니다. 실수를 해도 망치지는 않습니다. 덧칠하면서 수정할 수 있으니까요. 민화에는 무언가를 소망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녹아있습니다. 이 순간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할 수 있었죠.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크고 작은 꿈들을 품으셨을 텐데요. 그 바람을 담아 민화를 그려보는 건 어떨까요.  

3시간 만에 완성한 수박 그림. 통통튀는 색감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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