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훈 로이터통신 사진기자(사진학과 93학번)
  • 허효주 기자
  • 승인 2019.05.19 22: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찰칵’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찰칵. 찰나의 순간, 사진 한장 속에 이야기가 담긴다. 사진 속 모든 피사체는 얼음처럼 멈춰있지만 사진이 눈으로 흘러들어온 순간 마치 동영상처럼 이야기가 재생된다. 여기, 이야기 꾸러미를 한 아름 안고 있는 비주얼 저널리스트가 있다. 약 20년 동안 한 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 손에는 수첩과 볼펜을 든 김경훈 동문(사진학과 93학번)이다. 사진 속 김경훈 동문 또한 멈춰있지만 그에게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김경훈 동문이 카메라 렌즈를 응시한다.” 이 문장처럼 로이터 통신의 사진 캡션은 육하원칙에 따라 현재형으로 사실만 전달한다.  사진 고운호 동문(現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11월 미국과 멕시코가 맞닿은 곳. 최루탄 연기가 피어올랐다. 엄마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주인공 엘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두 딸은 기저귀 차림이다. 엄마는 두 딸의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달렸다. 이들은 온두라스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이민자였다. 김경훈 동문(사진학과 93학번)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사진 한 장에 담아냈다. 이 사진은 미국 내 큰 반향을 일으켰고 퓰리처상위원회는 지난달 15일 ‘브레이킹 뉴스 사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그는 사진 한장에 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눌러 담았을까. 지난 8일 그를 직접 만나 봤다. 정해진 답변 대신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최근 뜨거운 반응을 겪는다고.

  “항상 카메라 뒤에 있던 사람인데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하는 게 재밌네요. 사실 이 사진은 퓰리처상을 받기 전 미국에서 먼저 화제가 됐어요. 퓰리처상을 받은 후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요. 우리나라 언론 국제면에 소개되기도 했죠. ‘미국을 흔든 사진’이라며 ‘한국인이 찍었다’에 초점을 두더라고요. 확실하게 밝히고 싶은 점은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은 아니라는 거예요. 한국인 ‘사진 기자’로는 최초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진 속 상황은 어땠나.

  “멕시코시티에서 티후아나까지 이민자 행렬과 함께 약 2000km 정도를 함께 이동했어요. 그날은 미국 국경과 인접한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평화 시위가 계획된 날이었죠. 이민자들이 우발적으로 장벽 앞으로 뛰어가는 상황이 벌어졌고 미국 국경수비대가 최루탄을 쐈어요. 최루탄 연기를 피해 온두라스 출신 가족이 도망가고 있는 장면을 포착했어요.”

  -위험해 보이는데.

  “온두라스 가족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어요. 위험한 상황이긴 하지만 거친 환경에서 취재해 본 경험이 많아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또 위험한 곳에서 취재하려면 회사에서 ‘Hostile environment course’를 수료해야 해요.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무섭지는 않았어요. 급해서 쓸 겨를이 없었지만 헬멧과 방독면도 가지고 있었고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셔터를 누를 수 있었던 순발력은 어떻게 길러진 건가.

  “경험이 중요해요. 만약 기자 초년병이었으면 어려웠을 거예요. 운 좋게 찍을 수도 있겠지만요. 바둑 고수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것처럼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수를 읽을 줄 알아야 하거든요. 당시에도 경험에서 배운 촉이 발동해 여러 렌즈 중 와이드 앵글 렌즈를 장착하고 기다렸죠.”

  -로이터 통신 같은 뉴스통신사는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어떻게 전달하나.

  “서브 에디터가 사실을 확인한 후 싱가포르와 폴란드에 있는 픽쳐 데스크에 사진을 전송해요. 빠르면 10초 안에 신문사와 방송국 같은 고객이 사진을 볼 수 있죠. 카메라 옆에 달린 전송기를 이용해 사진을 보내고 보이스 캡션을 이용하면 더 빠르기도 해요. 사진을 자르는 편집 방법 지시를 내릴 수 있거든요. 실제로 월드컵 경기에서 ‘삐-’하고 호루라기가 시작을 알리면 20~30초 안에 첫 번째 사진을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어요.”

  -이번 수상작도 10초 내 전송됐는지.

  “카메라에 달린 전송기를 이용해 보내려고 하는데 그곳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 맞닿아 있어 전송기가 신호를 잡지 못하더라고요. 미국 신호가 잡혔다 멕시코 신호가 잡혔다…. 전송기도 헷갈렸나 봐요.(웃음) 결국 노트북을 이용해 15분 이내로 전송했죠.”

  -사진 한장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른 인터뷰 도중 ‘이 사진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촬영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당황스러웠죠. 지금까지 보도 사진을 찍으며 의제를 설정한 적이 없거든요. 로이터 통신이 편견을 갖지 않고 공정하게 보도하는 걸 최우선으로 두고 있기도 하고요. 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적인 이슈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보도할 수 있어 도쿄 지국에 속했던 저도 취재를 갔던 거죠.

  이 사진도 마찬가지예요. 사진 속 주인공이 가족이 아니라 트럼프가 말한 폭도였어도 저는 사진을 찍었을 거예요. 이민자를 도와줘야 한다 또는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사진을 찍은 건 아니거든요. 단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린 거예요. 이 사진은 독자가 문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기준이 되는 재료일 뿐이죠.”

  -그런 점에서 사진이 가진 힘은 크다.

  “맞아요. 사진 한장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고 여러 현상을 생각하게끔 하는 힘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죠. 미국 내 난민 문제뿐 아니라 우리나라 제주도 난민 문제 또한 다시 공론화됐거든요.”

  -만약 독자가 사진을 잘못 해석한다면.

  “이 사진도 의심을 받았어요. 배후 세력을 이용해 찍은 거짓 사진이라는 주장이 있었죠. 제가 생각하기에 비주얼 저널리즘은 재료를 제공하는 거예요. 사진을 보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자가 교정해 줄 수 없는 부분이죠.”

  -그만큼 사진 캡션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데.

  “포토 저널리즘에서 캡션은 사진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죠. 사진이 캡션과 합쳐 하나의 포토 저널리즘을 만드는 거예요. 그렇지만 고민을 한 적은 없어요. 육하원칙에 따라 현재형으로 사실만 담거든요.”

사진 고운호 동문(現 조선일보 기자)
김경훈 동문이 퓰리처상을 받은 해당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 고운호 동문(現 조선일보 기자)

 

  김경훈 기자는 졸업 후 외국계 필름 회사 기획실에서 일하게 됐다. 4개월 정도 근무를 하고 나서 그는 알아차렸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처리하는 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카메라를 들었고 그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됐다.

  -사진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중학생 때만 해도 집에 있는 자동카메라는 형만 만질 수 있었죠. 막내였던 저는 셔터 한번 눌러보지 못했거든요.(웃음)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대한 동경이 생겼고 고등학생 때 사진반에 들어가게 됐죠. 사진반 선배로부터 ‘로버트 카파’의 전쟁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후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했어요. 대학 입학 후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을 시작했고요.”

  -대학 때 배운 점이 현장에서도 유용하게 쓰였는지.

  “많은 도움이 됐어요. 만약 수업에서 기본적인 개념을 배우지 않았다면 일을 배우는 속도가 늦어졌을 거라 생각해요. 덕분에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좋은 취재할 기회도 많았죠. 요즘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하지만 그때만 해도 학교가 전부였거든요.”

  -로이터 통신에 입사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지난 1999년에 일간스포츠에 사진기자로 입사했어요. 스포츠를 좋아해서 들어간 건 아니었고요.(웃음) IMF 직후라 대부분 신문사가 신입 기자를 뽑지 않을 때였죠. 또 스마트폰도 없던 때라 지하철에선 누구나 스포츠 신문을 보고 있었어요. 스포츠 신문만큼은 인기가 좋았던 거죠. 한창 선배들에게 많은 걸 배울 때쯤 2002년에 로이터 통신에서 같이 일할 생각이 있는지 연락이 왔어요.”

  -스카우트 되다니 당시에도 실력이 출중했나 보다.

  “사진 기자들이 많이 없을 때였거든요. 지난 2007년부터 도쿄지국에 있다 2013년부터 3년 반 동안은 베이징지국에서 근무했어요. 그 후 도쿄지국으로 돌아왔죠. 한, 중, 일 역사에 관심이 많고 언어도 구사할 수 있는 점을 좋게 봐준 것 같아요.”

  -언어는 현지에서 자연스럽게 익혔나.

  “어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없어요. 공부 많이 해야 해요.(웃음) 직업 특성상 길거리에서 갑자기 사람을 붙잡고 취재를 해야 하는 일이 많잖아요. 말을 못 하면 일을 못 하니까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그렇지만 한, 중, 일이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다른 기자들보다 쉽게 배울 수 있었어요. 영어 발음은 ‘콩글리시’지만요.(웃음)”

사진 고운호 동문(現 조선일보 기자)
김경훈 동문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고운호 동문(現 조선일보 기자)

 

  로이터 통신 홈페이지에는 ‘THE WIDER IMAGE’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다. 단순한 보도 사진이 아닌 전 세계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사진이 가득하다. “Photojournalism still has a power in our society as long as our photos tell the story of what’s happening now.(사진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하는 한 포토 저널리즘은 여전히 힘을 가진다.)” 홈페이지에서 김경훈 동문의 강렬한 한 문장을 찾아볼 수 있었다.

  -취재 시 수첩과 볼펜도 들고 다닌다고.

  “사진을 촬영하고 나면 팩트체크 과정이 필요해요.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팩트가 일치하는지 꼭 확인하죠. 또 현장에 나갔을 때 작은 사건이 큰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어요. 뷰파인더로만 사람을 취재하는 것과 그 사람과 이야기해 보는 건 전혀 다르거든요. 사진기자의 일 중 하나는 이야기 소재를 찾는 것이기도 하고요. 인터뷰할 때는 수첩에 펜으로 적는 게 좋지만 최근엔 스마트폰에도 메모를 자주 저장하는 편이에요.”

  -이야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회사에서 유명한 사진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요즘 어떤 스토리를 취재하니?’라는 질문을 들었어요. 신선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스토리’란 취재 기자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단순 이벤트를 취재하는 게 제 일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 후로 스토리텔링에 눈을 뜨게 됐어요.

  물론 최근에는 한국 사진기자들도 스토리텔링을 시도하고 있지만 약 20년 전 일간스포츠에서 일할 때는 사진기자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스토리텔링에 익숙해졌는지.

  “긴 호흡의 기획을 취재하며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소재를 찾는 게 중요하더군요. 호기심이 많은 게 우선이에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주위를 둘러보는 게 좋아요.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하고요.

  또 이야기 수집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어떤 매체를 통해 스토리텔링을 할지도 결정해야 하죠. 사진으로 사건을 보여줬을 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비디오로 취재 내용을 전달할 때 의미 있는 게 있거든요. 저널리즘에서 매체 융합이 중요해지는 지점에 있어요.”

  -뉴스 통신사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보도사진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훨씬 좋은 사진이 있지만 기사 문맥에 맞는 사진만 선택되는 것 같아요. 사진은 기사를 보조하는 정도로만 이용되는 경우가 많죠. 세계 유수 언론은 사진이 강렬한 임팩트를 주면서 기사의 큰 맥락과 맞으면 사용하거든요.”

사진 고운호 동문(現 조선일보 기자)
사진 고운호 동문(現 조선일보 기자)

 

  ‘당분간은 도쿄지국에서 일할 것 같아요. 로이터 사진기자로서 ‘bread&butter picture(신문에 매번 들어가는 사진)’를 찍기도 하고 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있고요. 취재 분야는 경제, 정치, 스포츠 등 다양하겠지만 제 스토리텔링은 계속될 겁니다.’ 김경훈 동문이 누르는 셔터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탄생할까. 우리가 보지 못하는, 듣지 못하는 이야기를 그는 오늘도 담는다.

  -사진기자로 산다는 건.

  “사진기자라는 이유로 쉽게 접할 수 없는 곳을 취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동시에 진실을 공정히 보도해서 알려야 하는 책임감이 따르죠. 취재가 재밌을 때도 있지만 자연재해와 같은 사고를 다룰 때는 감정적으로 힘들 때도 있어요.”

  -기억에 선명한 장면이 있다면.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벌어졌을 때요. 당시 도쿄에 있던 저는 지진이 난 후 취재지시를 받고 차로 이동하려고 했어요. 4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밤새 운전해 5km밖에 움직이지 못했어요. 모든 게 마비됐던 상황이었죠.

  결국 헬리콥터를 타고 인근 지역 난민 수용소에 도착했어요. 어느 날 주민이 살던 곳에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검사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 <E.T>의 한 장면 같았죠.”

  -꼭 하고 싶은 취재는.

  “북한 사람이 사는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요. 약 13년 전 북한 능라도 경기장에서 열린 ‘아리랑 축전’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어요.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죠. 우리나라와 다른 모습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당시 묵었던 호텔에 안내원이 감시하고 있었는데 몰래 빠져나가 봤어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북한 군복을 입은 아저씨, 한복을 입은 아줌마 무리가 공원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죠. 얼굴이 불그스레한 채로 가락에 맞춰 춤추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다가간 순간 그들이 얼어버렸죠. 그들과 전 행색이 전혀 다르니까요. 그 순간 사진을 정말 찍고 싶었지만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어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같은 말을 사용해 취재가 용이할 텐데.

  “그렇죠. 다른 기자도 저와 팀을 꾸려 북한에 가길 원했어요. 그렇지만 제 이름을 명단에 넣었다가 팀 전부 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남북관계가 나빠진 시기부터 전 항상 빠져있었죠.

  또 북한의 현실을 자유롭게 볼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예를 들어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서울역이나 일본 도쿄역에서 시민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문을 읽는 모습만 취재할 수 있죠. 북한에 가서 제대로 취재해 보고 싶어요.”

   -사진기자가 목표인 후배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우선 사진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요. 사진기자가 ‘비주얼 저널리스트’로 대체되고 있잖아요. 비디오와 사진 두개 모두를 해야 하는 시대가 왔죠. 다른 매체에서 활동하는 후배 사진기자들이 저처럼 기획취재를 하고 싶다고 해요. 데스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취재를 요구한다고 말하죠. 그렇지만 본인의 역량을 보여줘야 해요. 스스로가 기획을 찾기에 달렸어요. 만약 저도 기획취재를 하지 않았으면 주식시장 등 지루한 현장을 취재하겠죠.”

  -역량을 키우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열정이요. 저 또한 기자 초년병 때 쉬는 날이면 회사 장비를 몰래 들고 나가서 촬영을 연습하곤 했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집에서 쉬다가도 기획 준비를 할 때도 있어요. 또 아쉬운 부분이지만 기자는 ‘9to5’도 아닌 ‘주5일근무제’도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열정이 필수적이죠!”

사진 고운호 동문(現 조선일보 기자)
김경훈 동문은 딱딱한 답변 대신,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사진 고운호 동문(現 조선일보 기자)

 

  -당신에게 중앙대란?

  “자부심의 공간이에요.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도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이라고 꼭 자랑하고 싶었어요. ‘중앙대’라는 명성은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알아주잖아요. 특히 중앙대 사진학과는 전국에서 가장 알아주기도 하고요. 여러 중앙대 선배가 쌓아온 명성 덕분에 저도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훌륭한 후배들이 중앙대만의 색깔을 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