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판도를 뒤흔든 사진
  • 장은지 기자
  • 승인 2017.09.25 0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찰칵,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카메라가 시인의 머리와 시인의 눈이 되지 않는 한 좋은 사진은 나오지 않는다.” 미국의 영화감독 오스 웰즈의 말이다. 사진이 담고 있는 예술적 가치는 이 한마디로 설명된다. 카메라가 세상에 처음 탄생했을 때, 카메라는 사람들의 모습과 역사를 담는 기록의 도구일 뿐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제 미술 전시회인 베니스비엔날레에 걸리는 작품의 절반 이상이 사진과 뉴미디어작품일 정도로 사진과 현대 미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사진이 예술로 자리 잡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전자기기로 손쉽게 찍는 많은 사진도 예술사진이 될 수 있을까.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격동의 역사와 함께
  사진은 세계사에 획을 그은 세 가지 사건의 접점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먼저 1776년 미국 독립혁명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자리 잡은 민주, 자유, 평등의 개념은 대중으로 하여금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근대정신을 부추겼다. 사회의 성숙과 더불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경제적 여유까지 뒷받침되자 사람들은 과거의 상류층이 초상화로 자신의 모습을 남겼듯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초상화는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한동안 대중의 욕구는 충족되지 못했다.

  1839년 등장한 사진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다. 인화된 사진을 처음 본 사람들은 사진에 영혼이 갇혀있다거나 사진이 마녀의 장난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현대사진연구소 진동선 소장은 사진을 ‘인류의 소망에 의한 산물’이라고 칭했다. “사진은 인류가 간절하게 바랐던 발명품이에요. 시간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순간에 영원히 머물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켰죠.”

  1850년대는 많은 사람이 본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소장하고 싶어 하면서 스튜디오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일부 스튜디오는 타 스튜디오와의 차별화를 위해 화가들이 쓰는 자세, 구도 등을 사진에 도입했다. 이렇게 찍힌 사진들은 점점 당시 예술작품을 닮아갔다. 그로 인해 ‘기계로 찍어내는 물리적인 이미지가 예술이 될 수 있는가’하는 논쟁이 발발했고 프랑스에서는 사진을 예술로 인정해야 하는가를 두고 재판이 열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바탕으로 했던 프랑스 법정은 ‘사진이 예술이 아닌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며 사진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당시 예술가들이 내린 예술의 정의에 부합하는 일부 사진들은 작품으로서 살롱에 걸릴 수 있게 됐다. 진동선 소장은 이 사건으로 당시 예술이 다뤘던 주제 의식을 담은 사진은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사진은 기존의 회화주의 예술을 많이 모방했어요. 예술성을 인정받기 위해 예술의 구성법, 화법 등을 차용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죠.”

예술계의 이단아에서 주류로
  사진이 예술의 범주에 포함되면서 예술작품의 기능과 의미가 바뀌었다. 과거의 예술작품은 왕족이나 귀족들의 신성함을 드높여주는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기존 예술작품들은 세상에 단 한 점밖에 없기에 존재 그 자체에 의의가 있어 그 작품이 놓여있는 장소를 신성하게 만드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능은 사진이 예술이 되면서 무의미해졌다. 사진은 복제가 가능하기에 기존 예술작품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평종 교수(다빈치교양대학)는 어디에서나 똑같은 사진을 만날 수 있게 되면서 예술작품의 존재 자체가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작품에 담긴 특정 메시지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제 그 작품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거예요. 특히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확산될 수 있었던 사진의 경우 대중을 계몽하고 설득할 힘을 갖게 됐죠.”

  1888년 카메라 회사 코닥이 출현하면서 사진 예술의 문턱도 낮아졌다. 코닥은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우리가 나머지를 맡을 테니 당신은 버튼만 누르라)’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이른바 ‘기성품 카메라’를 출시했다. 코닥의 등장으로 복잡한 기술을 요했던 카메라 조작이 간편해지면서 누구나 쉽게 카메라를 접할 수 있었다. 이로써 예술가의 범위가 넓어졌다.

  이제 사진은 현대 미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60, 7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갤러리 등에서 사진작품을 하나의 예술품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이 1990년대 후반부터 사진을 중요한 예술 매체로 인정하고 사진전을 개최하며 매년 주목할 만한 작가를 선정한다.

  진동선 소장은 사진이 시대와 함께 해왔다고 말했다. “인류가 다양한 사건을 겪으면서 시대의 모습이 많이 변했어요. 예술의 정의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죠. 그리고 사진은 그런 변화를 담아왔어요.” 과거에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존 예술이 가지고 있던 정의를 답습하고 모방해야 했다. 예술의 고정된 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예술은 이 틀에서 탈피해 독자적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시대가 흘러 예술의 범주를 뚜렷하게 규정할 수 없게 되면서 ‘사진을 예술로 인정해야 하는가’라는 논쟁은 무의미해졌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오늘날 사진은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인터넷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미지가 범람하고 우리는 하루에도 몇 개씩 일상을 담은 사진을 SNS에 공유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사진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박지은 강사(사진전공)는 일상에서 사진을 찍고 게시하는 과정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 이미지가 자신에게 다가왔기 때문이에요. 필터를 씌우는 등의 행위에도 대상에 대한 재해석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죠.” 일상사진을 예술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박지은 강사는 모든 일상사진을 예술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사진으로써의 예술은 지금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보여주려는 목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술이 되려면 이미지 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담론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하죠. 지금의 시대를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토론할 여지, 생각할 거리 등을 제공하는 사진이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카메라의 기술이 아니라, 사진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