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보고, 세상을 봐라” 잡지 <LIFE>를 기획하며 헨리 루스가 내건 슬로건이다. 잡지 <LIFE>는 아름다운 보도 사진에 사람들의 삶을 담아냈다. 그리고 그 삶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세상을 전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된 <라이프 사진전>에는 잡지 <LIFE>에 담긴 1000만 개의 사진 중 132점이 전시됐다. 세계 각국에서 담은 132개의 순간은 당시 시대상을 보여준다. <라이프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을 통해 인생과 세상을 들여다봤다.
 
  한 명의 인간으로 마주하는 시대정신
 무하마드 알리, 1963, 조지 실크. ⓒ The Picture Collection Inc. All Rights Reserved.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흑인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표정과 대조되는 다부진 몸은 그가 운동선수임을 암시한다. 그의 이름은 무하마드 알리. 영원한 챔피언이라고도 불리는 전설적인 복서다. 하지만 그는 전설에 걸맞은 영예를 누리지 못하고 극심한 인종차별을 당했다.
 
  무하마드 알리는 인종차별과 끝없이 싸웠다. 그는 흑인으로서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운동에 앞장서던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민권운동에 활발히 참여한다. 그에게 베트남 전쟁 징집 영장이 왔을 때도 영장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미국 정부를 비꼰다. “베트남은 나를 깜둥이라고 하지 않는데 내가 왜 그들을 죽여야 하나. 그들을 죽일 이유가 없다.”
 
  잘못된 사회를 상대로 무하마드 알리는 링 위에 올라갔다. 무지막지한 상대임에도 그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익살스러운 표정은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던 그의 신념을 보여주는 듯하다. 언제나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표출했던 그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표정이다. 무하마드 알리의 사진은 힘든 시대 속에서 눈부신 삶을 살았던 20세기의 빛나는 ‘얼굴’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얼굴엔 당시의 시대정신이 스며 있다.
 
  기억해야 할 시대
 

  ‘악의 평범성’이라는 제목의 사진 속에는 평범해 보이는 남성이 고개를 떨구고 편안하게 앉아있다. 그의 이름은 게슈타포 아돌프 아이히만. 500만 명의 유대인을 폴란드 수용소로 이동시킨 장본인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여유가 느껴지는 사진 속 순간은 이스라엘 수용소에서 전범 재판을 기다리고 있을 때다. 이 여유와 당당함은 실제 전범 재판에서 진술할 때도 계속된다. 재판을 지켜본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의 정신상태가 너무나 정상적이라 판단돼 자신들이 이상한 줄 알았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당당하게 진술한다. “내가 돈을 받고 일하는 공무원인데 내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면 그것이야말로 양심의 가책을 느낄 일이다.”
 
  그의 재판을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도출하며 악행은 미치광이가 아닌 체제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평범한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나치의 독재는 비판의식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 완성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진엔 체제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선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하다.
 
 
  나치의 독재처럼 또다시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시대가 있는가 하면, 영광의 순간을 본받기 위해 기억해야만 하는 시대 역시 존재한다. 프랑스 국기와 수많은 사람이 담겨있는 사진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영광의 시대를 담고 있다. 바로 억압된 자유를 되찾기 위해 일어났던 ‘68혁명’의 순간이다.
 
  1968년, 전세계 각국은 냉전을 핑계 삼아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그들의 자유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에서 8명의 학생이 베트남 전쟁에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정부군에게 체포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정부의 행동은 분노의 기폭제가 돼 불안을 참을 만큼 참아왔던 국민들을 일어나게 했다. 억압받았던 자유를 되찾기 위해 프랑스 국민은 정부와 대치했다.
 
  하지만 68혁명은 프랑스만의 혁명이 아니었다. 68혁명 덕분에 미국, 일본 등의 여러 나라도 함께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학생 8명의 움직임이, 또 사진에 담긴 68혁명의 순간이 있었기에 전세계적으로 자유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었다. 세계는 그들의 발걸음과 함께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한없이 펄럭이는 깃발과 자유를 외치는 국민의 행렬은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 움직인 이들의 위대한 발걸음을 보여준다. 사진은 잘못된 체제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기 위해 움직였던 영광스러운 시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임지윤씨(23)는 사진들에 여러 시대상이 생동감 있게 담겨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 당시엔 사진이 현장을 전해줄 거의 유일한 매개체였잖아요. 사진을 보고 있자니 유명한 사건들이 눈앞에서 일어난 것 같았어요.” 두 사진 속에 담긴 순간들은 역사에 각인돼 기억해야 할 ‘순간’들이다.
 
  아름다운 시절이 전하는 희망
 
이 사진의 제목은 <The walk to para-dise garden>, ‘낙원의 정원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두 아이의 모습은 제목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사진작가인 유진 스미스는 전쟁사진을 촬영하다 크게 다쳐 활동을 접고 요양하고 있었다. 그러나 빛을 향해 걸어가는 두 자녀를 보는 순간 아픔을 무릅쓰고서라도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두 아이의 모습이 깊은 절망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말해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전쟁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희망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사진이 주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기나긴 전쟁에 지친 많은 이에게 위안을 줬다.
 
  양수현씨(22)는 사진을 동화 속 한 장면에 비유했다.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이 생각났어요. 어쩌면 밝은 미래는 아이들이 꿈꾸는 동화가 실현되는 세상이 아닐까 싶었죠.” 유진 스미스는 전쟁이 끝나고 황폐해진 이 세상에 한 폭의 동화를 보여줬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일상 그대로의 삶이 세상에 희망을 전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에필로그
  <라이프 사진전>의 사진들은 마치 사진 속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당시의 시대를 실감 나게 보여줬다. 손경희씨(37)는 역사적 사건들을 사진으로 접했을 때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과 예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사진 속 인물의 옷, 배경 등을 통해 시대상과 사회상을 유추할 수 있어서인지 책으로 볼 때와 큰 차이가 있었죠.”
 
  <라이프 사진전>에서는 사진이라는 창을 통해 국가와 시간을 넘나들 수 있었다. 덕분에 사진 속 인물들을 만나거나 당시 사건을 직접 목격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진들은 각자가 담고 있는 ‘LIFE’를 들려줬다. 세상이라는 제목의 감명 깊은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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