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면 좋은 점이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연애가 삶의 전부일 수 있다. … 연애지상주의는 바로 이 성공적인 사랑 이야기를 누구나 욕망하고 쟁취하도록 몰아간다. … 그러나 우리는 모두 홀로였다. 비연애 상태는 모두가 경험하는 삶의 일부다. 그런데 왜 홀로는 언제나 기를 쓰고 탈출해야 하는 것, 무능함의 상징으로 여겨질까? … 연애는 그저 그 사람이 그 순간에 누군가와 맺고 있는 관계이자, 선택할 수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삶의 형식 중 하나다. … 지금 연애하지 않는 자, 모두 무죄!
『연애하지 않을 자유』 이진송

  ‘안 생겨요’ 첫소리를 영문화해 ‘ASKY’라고 부르는 이 신조어는 애인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대학에 와도 자신을 아무리 가꿔도 연애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한탄할 때 주로 쓰곤 한다. 이 신조어의 이면에는 연애하고 싶지만 할 능력이 되지 없음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다. 이토록 하기 어려운 연애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 연인이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단지 그 사람이 잘났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긴 어렵다. 오히려 때때로 ‘쟤도 연애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연애는 서로 마음이 맞았을 때 맺는 관계 방식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가 지나치게 신화화, 능력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 능력
  오늘날의 연애가 능력화된 원인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인간관계에 있다. <즐거운 연애 행복한 결혼> 강의를 맡고 있는 장재숙 교수(경희대)는 사랑의 형태가 변화된 점을 지적했다. “요즘 연애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지 않아요. 그저 연애를 통해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사람을 찾을 뿐이죠.” 이은주 교수(동국대 가정학과)는 삭막해진 인간관계 속에 두드러진 연인 관계의 특수성이 연애를 능력화하는데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연애 자체를 부러워하고 능력으로 바라보는 것은 관계에 대한 목마름을 표현하는 방식이죠.” 

  과거와 달리 자본이 결합한 연애 방식도 연애가 능력으로 치부되는 원인이다. “사랑만으로 연애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죠. 최소한의 경제력은 필수잖아요. 자신의 연애와 타인의 연애를 비교하며 궁핍한 연애는 연애가 아니라고 여기죠.” 『요즘 남자 요즘 연애』 의 저자 김정훈 연애 칼럼니스트는 현실 속에서 연애를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경제력이 연애를 능력화한다고 말했다.

  김정구 교수(성균관대 경영학과)는 물질주의로 인해 연애감정이 자본적으로 미화된다고 말했다. “수익 위주의 마케팅이 인간이 가진 연애에 대한 욕망과 투자를 더욱 자극하고 있어요.” 이것이 크리스마스, 화이트데이, 밸런타인데이 등 기념일만 되면 ‘솔로 생존법’과 같은 솔로들의 자조적인 외침이 들리는 이유다.『연애하지 않을 자유』의 저자 이진송 작가 또한 태생부터 자본주의 속성을 지니고 발명된 연애라는 관계가 신자본주의 최고의 활동이라고 말했다. “적절한 연애 대상이 되고 데이트를 하기 위해선 모두 열심히 돈을 써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화려한 솔로라도 돼서 2인분에 버금가는 돈을 써야만 하죠.”

  권유와 강요의 한 끗 차이
  연애가 어려워질수록 능력처럼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러나 연애하지 않는 이들에게 연애를 요구하고 무능력자로 몰아붙이는 논리를 뒷받침해주지는 못 한다. 이러한 태도는 매우 차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결혼했니? 애인 있어?”  TV 드라마 속 로맨틱한 명대사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말이 될 수 있다.

  이진송 작가는 연애지상주의로 인해 연애를 선택이 아닌 의무와 능력으로 간주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연애지상주의 사회에선 연애가 삶의 트로피가 됐죠. 연애하는 자들은 으스댈 권리가 생겼고 연애하지 않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요. 연애하지 않을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연애를 권유하는 것은 결국 강요에 불과하죠.” 

  장재숙 교수는 연애지상주의의 일부로 20대의 연애를 당연시하는 고정관념을 지적했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이행하지 않으니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또한 김예리 강사(교양학부)는 사람들이 연애에 대한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가령 자신의 연애에 대해서는 안 하는 것이라 여기면서도 타인의 연애에 대해서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럴 수도 있지
  마음속 사랑의 대상을 떠올린다면 연인, 자기 자신, 애완동물 등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대상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사랑의 대상은 모두 개인의 선택이므로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연애의 여부에 따라 능력이 없다는 비난을 받아선 안 되는 이유다.

  이진송 작가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개개인에게 연애가 서로 다른 의미라는 것이 인정돼야 연애하지 않을 자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자신과는 다른 삶, 태도, 연애에 대해서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 되죠.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주입된 가치관으로 말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야 해요.”

  연애지상주의가 굳어진 사회에서 남상덕 교수(경제학과)는 ‘연애의 여부는 나의 선택이다’라는 흔들리지 않을 주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연애가 트렌드가 된 사회를 되돌릴 수는 없죠. 그러나 수용자는 개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주관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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