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죄목들이 있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것이 ‘국민정서법’이라는 불문법이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던 힘이자, ‘멸공의 횃불’을 실시간 검색어에서 붙잡아 줄 수 있던 동력은 바로 그 죄목 중 하나에서 뿜어져 나왔다. ‘신성한’이라는 병역의 의무 앞에 붙는 형용이 가끔은 조롱이자 비아냥으로 쓰이는 요즘, 이 ‘신성한’ 병역의 의무보다 더 ‘고결한’ 것은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이 품고 있는 화약의 뇌관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은 언제든 방아쇠의 격발을 기다리고 있다. 현역복무자들에게 상근예비역, 공익근무요원, 면제자들은 “제대로 병역의 의무를 이수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때로는 “용서할 수 없다”는 준엄한 집행도 기다리고 있다.

폭력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폭력은 지인에서 유래한다는 말은 진실일까. 국가와 국가 간의 포성이 오가는 전쟁터보다, 안방에서 벌어지는 부부간의 치열한 부부싸움이 때로는 훨씬 더 잔인하고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정태환 학생(가명·사과대)이 “면제는 닥쳐”라는 말을 세 번이나 연속으로 들어야 했던 것은 휴가 나온 친구와의 술자리에서였다. 김수환 학생(가명·세종대 영어영문학과)에게 총기수입 솔을 보여주며 “이게 군용 칫솔이다”고 하거나, 양쪽 어깨에 노란색 종이를 붙여주며 “이게 군대에선 분대장 표시”라고 조롱한 것 역시 그의 오래된 친구들이었다. 물론 미소를 띤 얼굴이었고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화를 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다”는 그들의 격발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했다.

 가장 괴로운 것은 술자리에서였다. 남자들끼리의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항상 빠지지 않은 것이 군대 이야기다. 얼큰하게 취해 스스로의 군 생활을 곱씹는 패턴이다. 갑질하는 선임과 어리바리 후임의 이야기로 시작해, 언론에 보도될만한 큰 사건들을 마치 자신이 지휘했던 것처럼 모르는 것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군 면제 판정을 받은 서민기 학생(가명, 중앙대)은 술에 취하면 친구들의 방어기제가 풀린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제가 군 면제라는 사실을 알고 조심하려고 하지만 술에 취하면 본심이 나와요. 병신으로 난 게 벼슬이냐? 왜 쩔뚝거리면서 돌아다니면서 고생한 사람들을 배알 꼴리게 하느냐?” 서민기 학생은 “그 사람들을 화나게 하기위해 제가 면제를 받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는 선천적인 장애로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네가 왜 현역이냐?”라는 말은 상근예비역에게도 흔하게 내려지는 ‘준엄한’ 호통이다.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를 수행한 이들은 소집해제 후 현역으로 인정된다. 그럼에도 아직도 박찬규 학생(가명·경희대 토목공학과)은 소집해제 후에도 전역증을 들고 다닌다. 박찬규 학생은 “상근예비역도 현역이고 큰 훈련은 어김없이 다 참가시키기 때문에 군 이야기에서 소외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비아냥에 크게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전역증을 챙기고 있는 내 모습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내려지는 호통 뒤에 내려지는 호칭은 ‘민군인(민간인+군인)’이다. 민간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라는 것이다. 용서받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상근예비역도 예외는 아니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벌어지는
용서 받지 못할 말들
 
어떤 이유도 변명이 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정당했던 사유

 
 
 
 
 
 
 
 
 
 
 
 
 
군대 못간 혹은 안간 이유, 말 못할 이유
 그들의 ‘군대 못간 이유’는 줄곧 ‘군대 안간 이유’로 치환되고 만다. 김수환 학생은 가수 타이거JK가 앓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희귀병의 일종인 ‘강직성 척수염’으로 공익 복무 판정을 받았다. 김수환 학생은 척수염으로 병무청 중앙검사에서 최초 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현역 복무를 원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공익근무요원으로라도 복무하고 싶어 병무청에 요청해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현역복무자들 앞에서 그는 그저 ‘공익’일 뿐이었다. 심지어는 그의 아픈 질병을 두고 “너 아픈 거 거짓말이지? 너 집안 좋다”라는 말을 건넸다. 물론 마지막에는 항상 ‘훈훈’하게 마무리 됐다. “그래. 뭐 네가  공익 가고 싶어서 갔겠느냐”는 식이다.

 말못할 이유도 있다. 현재 공익 근무 중인 김희형 학생(가명)은 신검 이전에 틱 장애, 우울증, 스트레스성 장염, 수전증 등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질병을 이유로 공익 판정을 받았다. 그에게는 숨기고 싶은 이유였다. 그는 술자리에서 군대 얘기가 나오면 위축되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오기 일쑤였다. “공익 근무 전에도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공익 판정을 받기까지 연이은 재검으로 인한 복무 연기로 대인기피증도 심해지고 더 우울해졌다는 것”이 그의 주변 친구들의 증언이다. 김희형 학생은 “몸이 괜찮다면 현역복무를 하고 싶다”며 “공익근무가 편하지만 나중에 나와서 사회에서 받을 대접의 차이 때문이다”고 말했다. 주변 지인들은 하나같이 그가 현역으로 근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는 앞으로의 사회생활에서 대체복무를 한 이유를 말할 수조차 없다. 군대 이야기만 시작되면 그에게도 국방부의 시계는 느리게만 간다.

 그들에게 더 큰 걱정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다. 서민기 학생은 “대학 사회보다도 당연히 군필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고용주에 선택을 받아야하는 사회는 더욱 더 차별이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물어보는 와중에 군 복무 여부를 묻는 질문에 “면제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아 그래요?”라는 냉랭한 대답이 돌아왔다고 말한다. 백승호 학생(가명·사과대)은 “채용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신체에 이상이 있는지 복무는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궁금할 테니 표기여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차별의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지만 대놓고 밝히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취재에 응한 학생들의 다수의 답변이었다. 군복무 여부를 기재하는 채용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이도 있었다. 정태환 학생은 “국방의 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납세의 의무도 있다. 책임감을 보려고 한다면 왜 국방의 의무만 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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