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재구성

문장의 끝에 ‘?’를 붙이면 인문학이 시작됩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철학이며 윤리며 신경 쓸 새가 없죠. 굳이 관심을 가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적 사고는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왜?’라고 질문하는 것이죠. 너무나도 확고해 보이는 현상일수록 꽤 잘 먹힙니다. 사회가 인문학에 주목하게 되면서 인문학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는데요. 중대신문 심층기획부는 인문학 현상에 대해 ‘?’를 붙여봤습니다. 왜? 누가? 어째서? 어떻게? 진짜? 쏟아지는 물음표들을 다양한 이야기들과 함께 3주간 담아 볼 계획입니다. 우리 시대 인문학, 지금 시작합니다. 
 
 
인문학을 보고, 듣고, 읽는다
전국 방방곡곡 인문학 열풍

인문학은 권장 아닌 필수
나라에서도 발 벗고 나섰다
 
바야흐로 인문학 전성시대다. TV에는 인문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한 철학박사의 고민상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유명한 인문학자의 저서는 발간과 동시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이에 질세라 기업에서도 창의력과 상상력을 운운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원하고 있다. 이제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인문학 진흥에 힘을 쏟겠다는 상황에 이르렀다. 도서, 기업, 국가 너나 할 것 없이 세상 전체가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잘 나가는 인문학, 잘 팔리는 인문학 도서
  요즘 20대 치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나 강신주 박사의 『다상담』 (동녘) 시리즈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인문학 도서는 사회 전반의 인문학 열풍과 발맞춰 강세를 보이고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인문학 도서 판매량은 2013년보다 2014년 상반기에 2.2% 상승했으며 이 인문학 도서의 독자층은 20대가 29%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교보문고 측은 “인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아졌다”며 “이에 인문학을 쉽게 전달하는 개론서들의 출간이 줄을 잇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더좋은책),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스마트북스)와 같은 인문학 개론서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처음 인문학을 접하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들이다. 교보문고 측은 “베스트셀러의 상위권에 오르는 도서들은 주로 대중적인 것들이다”며 “그러다 보니 인문학을 쉽게 풀어주는 인문학 개론서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도 인문학 열풍은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앙대 학술정보원의 인기 대출도서 순위에서 인문학 도서가 차지하는 비율만 봐도 그렇다. 작년에는 인기 대출도서 50선 중 5개만이 인문학 도서였던 반면 올해 4월의 인기 대출도서 50선에서는 16개의 인문학 도서가 포함됐다. 몇 달 사이에 3배 넘게 늘어난 수치다. 서울캠 학술정보원 김진경 주임은 “학생들의 인문학 도서에 대한 관심도와 필요성 인식 정도는 높은 것 같다”며 “이에 대학에서도 인문학 독서를 권장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단과 거리에서 펼쳐지는 인문학 강연
  “평소 좋아하던 고은 시인을 뵐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독서모임을 하면서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양대범 씨(삼육대 경영학과 2)는 고은 시인의 강연을 듣기 위해 고려대학교와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하는 인문학 대중강연 프로그램을 찾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진행된 두 시간 동안의 강연은 양대범씨에게 특별한 시간이 됐다.
 
  삶에 대한 고민의 기회를 찾는 강연의 현장에서 키워드는 인문학이었다. 양대범 씨를 포함한 1,000여 명의 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리를 메웠다. 좌석 예약은 조기 마감이 됐으며 자리가 부족해 계단에서 듣는 사람도 곳곳에 있었다. 여기에 대형 언론사 카메라까지 오니 흡사 방송국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대중을 위한 인문학 확산을 위해 플라톤 아카데미는 2013년까지 총 55회의 인문학 세미나와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2011년 초기에는 9회로 시작했지만 2012년에는 17회, 2013년에는 29회로 인문학 세미나와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있다. 양대범 씨는 “인문학 강연을 들으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연대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인문학 대중 강연의 참가 소감을 밝혔다.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인문학은 친근하고, 또 가볍게 다가오고 있다. 광장에서, 구립도서관에서 인문학 프로그램들이 줄을 잇는다. 딴지일보에서 운영하는 카페 ‘벙커1’에서는 다양한 강연들이 한 달 일정을 꽉 채우고 있다. ‘연희동 한선생의 수줍은 수비학’의 강연자 한민경씨는 매주 몇백 명의 사람들을 관객으로 맞는다. 한민경씨는 “사람들은 보통 힘들 때 외부 탓을 많이 하는데 강연을 통해 문제 해결의 힘을 내부에서 찾을 수 있도록 얘기를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길거리까지 인문학의 바람이 불기도 한다. 지난 9월 20일,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최한 인문학 페스티벌 ‘예술을 꼴라쥬하다’는 콘서트 형식으로 신촌의 차 없는 거리에 나와 대중들을 찾았다.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참여하게 된 고주성 학생(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과 4)은 “인문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연 식으로 진행되니 다가가기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인문학은 시대의 인재가 갖춰야할 덕목이 됐다
‘당신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얼핏 보면 철학 수업에나 어울릴 것 같은 물음이다. 이는 세종대왕이 과거시험에 출제했던 문제로 현대자동차 인·적성검사에 출제된 바 있다. 현대자동차뿐만이 아니다. 삼성그룹, SK그룹 등 여러 대기업에서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적 지식을 지원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입사 지원자에게 자기소개서에 감명 깊게 읽은 인문학 서적 3권의 제목을 기술하고 느낀 점을 쓰도록 한다.
 
  “친구들이 취업을 위해 인문학 특강을 들으러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듣는다고 하니 나도 들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인문학 강연에 참석한 이수현 학생(사회복지학부 2)의 말이다.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20대는 인문학적 소양을 지니기 위해 인문학 프로그램을 찾아 나선다.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에 들어가 ‘역사’란 키워드를 검색하면 ‘단기간에 역사 준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역사 공부 쉽게 하려면?’ 같은 글들이 즐비하다. 댓글에는 단기간에 빡세게(?) 인터넷 강의로 공부해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하라는 조언이 뒤따른다. 인터넷 강의 업체에선 발 빠르게 ‘한방에 끝내는 인·적성 역사’ 같은 강좌들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국가까지 나선 문화융성  
  국가 차원에서도 인문학은 심심찮게 주요 화두로 오르내린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문화융성을 4대 국정기조 중 하나로 천명했던 바 있다. 문화융성을 위해서 인문학 진흥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해 7월에는 대통령 소속 자문 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가 발족했고 이후 그 산하에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또한 올해 2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 산하에 인문정신문화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이후 문광부는 지역 기반을 통한 생활 속 인문정신문화 실현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인문정신문화 진흥을 위한 7대 중점과제’를 발표했다. 문광부는 공공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의 공공도서관을 지역 인문학의 거점으로 삼아 지역 주민들이 인문학 강연과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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