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지 인문학적 고민
새로운 가치 창출의 근원으로 각광

주체들마다 원하는 인문학 상 달라
합의된 청사진이 없다
 
▲ 지난 20일 신촌 거리에서 인문학 페스티벌 ‘예술을 꼴라쥬하다’가 열렸다. 사진제공 플라톤 아카데미
 
  인류의 발전에 세 가지 사과가 있다. 첫 번째는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두 번째는 뉴턴이 발견한 사과다. 두 사과 모두 인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마지막 사과는 다름 아닌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사과는 전 세계 사람들을 열광시켰고 인류는 혁신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스티브 잡스, 그리고 그가 만든 아이폰이 바로 장본인이다.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아이폰은 바로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다.” 결국엔 과학도 기술도 아닌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전달됐던 것이 그 즈음이다. 그리고 인문학은 다양한 기대를 받으며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위기의 인문학, 기회로 전환하다.
  “서점에 가보면 인문학 도서들이 많더라고요. 기업 공고에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걸 봐서 관심을 가지게 됐죠.” 현정희 학생(지식경영학부 1) 은 학술정보원의 ‘재학중 인문학도서 40선 읽기’ 프로그램에 처음 참여했다. 그가 느끼는 것처럼 인문학 뒤에는 ‘열풍’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사실 꽤 오랜 기간 인문학을 따라다녔던 것은 ‘위기’거나 ‘침체’였다. 심광현 교수(한국예술종합대학교 영상이론과)는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던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인문학의 위기 시대였다”며 “대학은 경쟁력이 높다고 판단되는 학문 위주로 투자를 하고 인문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0년 중반 이후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인 반응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경제적 발전에만 몰두하다 피폐해진 사회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문화사회연구소 권경우 소장은 “당시에 문제의 해답을 고전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삶의 문제들이 발생하자 이를 어떻게 해결할 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이 주목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중 인문학을 찾는 사람들은 특정 연령대가 아닌 일반 시민 모두였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의미를 찾고 싶어 했다. 때로는 인문학적인 사유가 위안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인문학 강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찾은 안준근씨(48)는 “나이를 먹어도 똑같은 것 같다”며 “바쁜 삶에 찌들어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삶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인문학을 통한 가치 창출의 가능성이 조명되면서 국가와 기업도 인문학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기술만으로는 더 이상 발전이 어려워졌다고 판단한 기업이 인문학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융합과 통섭으로의 방향은 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온 인문학의 청사진이다. 아이폰이 그랬고, 정부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사업이 그러하다.
 
  대한민국은 인문학 동상이몽 중
  하지만 열띤 인문학 열풍은 그 자체만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문학을 바라보는 다양한 주체들이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가 조명하는 인문학 열풍은 꽤나 불균등한 모양을 띠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대학의 안과 밖에서 인문학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점을 공통적인 문제로 삼았다. 오창은 교수(교양학부)는 “대학의 인문학은 침체하고 있는데 대외에서는 각광받고 있다”며 “취업률이라는 평가지표에 대학이 휘둘리면서 인문학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취업난을 겪고 있는 인문학과 학생들에게 인문학 열풍은 여전히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대학 안과 달리 바깥의 대중 인문학은 활기를 띄었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 했다. 사실 사람들은 한층 더 깊은 인문학을 원하고 있었다. 인문학 페스티벌에 만난 김지연 씨(26)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인문학 스터디에서 활동 중이었다. “인문학 열풍은 긍정적이지만 겉핥기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스러워요. 시간을 내서 좀 더 깊이 철학적 질문들을 함께 해보고 싶은데 말이죠.” 이효석 학생(경제학부 3) 역시 강연들이 일방적이라는 데 동의했다. “인문학은 서로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베스트셀러가 정답처럼 여겨지고 스타 강연자의 얘기만 옳은 것처럼 전달되는 게 문제가 있죠.” 
 
  기업과 국가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인문학 열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적 상상력을 겸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섣불리 인문학을 접했다간 이내 까막눈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윤주열 학생(기계공학부 4)은 역사를 좋아하지만 다른 인문학 서적들은 선뜻 손 내밀기 힘들다. “책을 많이 읽어보지 않는 비전공자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문학 서적을 읽다보면 잘 이해가 안 돼 어렵게만 느껴지거든요.”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해 본 사람들은 그 노고를 이해한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해봐야 하기 때문에 취업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최민규 학생(신문방송학부 3)은 인문학 열풍에 대한 회의감을 밝혔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문학적 소양은 실제로 직무를 수행하는 데 반영된다기 보다 단순히 인문학 서적을 읽으라는 식이에요. 마치 영어를 쓰지 않는데도 토익점수를 요구하는 모양이죠.” 그렇다고 실제로 인문학이 창의적인 기술혁신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계간 『문화/과학』 최철웅 편집위원은 “인문학을 통해 국가나 기업이 원하는 방향이 모호하고 막연하다”고 말했다. 
 
  대중들은 넓어진 인문학의 기회를 맞이했지만 대중 인문학의 바람은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도 없다. 삶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의의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만 어떻게 인문학에 다가가야 할지에 대한 그림은 제각각이다. 한마디로 ‘어떤’인문학이 존재하지 않는 동상이몽(同床異夢)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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