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학업·아르바이트 병행 어려워
기간 단축은 가능해도 캥거루 신세 면할 순 없어
부모들은 자금 지원을 당연히 여기는 추세


캥거루 사회 들여다보니

  ‘새끼는 미숙한 채로 태어나 어미의 새끼주머니에서 자란다. 주머니에서 6개월에서 1년 간 자란 후에야 비로소 독립하고, 독립 후에도 어미 주변을 맴돌며 위험 시 도움을 청하는 습성을 지녔다.’

  이 동물은 캥거루다. 하지만 주어만 바꿔주면 취업준비생에 대한 가장 간결한 설명이 된다. 새끼 캥거루는 어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신체를 가지고 태어나고 취업준비생은 부모에게 금전적 비용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캥거루 사회’에서 태어난다. 어학 성적, 학점, 봉사활동, 각종 자격증 등은 모두가 갖춘 스펙이기에 ‘기본’스펙으로 불리고 없으면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한다. 여기에 남들은 없는 이른바 ‘자기만의 스토리’를 갖추려면 취준생에게 취업자금을 스스로 충당할 시간은 없다.

  이승준 학생(광고홍보학과 3)은 공인재무분석사(CFA)를 준비하고 있다. CFA는 미국 증권업계에서 최고 권위를 가지는 자격증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금융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금융업계 진출을 원하는 학생들 사이에선 블루오션으로 통한다.

  하지만 자격증 취득까지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CFA는 총 3단계까지 있는데 등록비 60만 원에 단계마다 응시비가 60만 원씩 추가로 든다. 여기에 CFA 교육은 소수 학원과 인터넷 강의 업체가 독점하다시피 해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이승준 학생은 인터넷 강의 수강비와 교재비로 130만 원을 썼다. 그는 현재 1단계까지 합격했는데 지금까지 들인 돈만 총 250만 원이다.

  이승준 학생은 생활비와 자격증 취득에 드는 비용을 전액 부모님에 의존하고 있다. 그는 월 70~80만 원을 받고 있지만, 자취를 하는 탓에 그마저도 부족하다. 8월까지만 해도 과외로 월 30만 원을 벌었지만, 당시에도 부모님에게 50~60만 원을 받으며 공부했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고는 싶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 공부시간이 줄어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에요. 부모님께 죄송하죠.”

  그래도 그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부모님 회사에서 대학 등록금이 지원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지원이 없다면 CFA는 꿈도 못 꿀 자격증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CFA를 많이 권하는데 자격증 취득에 드는 비용을 말하면 열에 아홉도 아니고 열이면 열 모두 포기해요. 그럴 때면 이건 사회를 원망해야 하는지 부모를 원망해야 하는지, 누굴 탓해야 하는 문제인가 싶어요.”

  임지선 학생(경영학부 4)은 홍보·마케팅 관련 직종에 취업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 역시 기본스펙인 토익과 토익스피킹, 마케팅 관련 대외활동 등의 스펙을 쌓았다. 스펙을 쌓는 데 든 비용은 대략 200만 원.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아르바이트나 인턴십을 통해 번 돈으로 취업자금과 생활비를 충당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부모님에게 월 30~40만 원씩 용돈을 받기 시작했다. 면접이나 인·적성 시험이 언제 시행될지 알 수 없어 아르바이트 병행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토익 시험 한 번만 봐도 응시료가 5~6만 원씩 들다 보니 용돈을 받기 시작했어요. 취업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까 부모님께 죄송하죠.”

  다양한 경험을 쌓아 취업준비 비용을 부모님에 의존하는 기간을 단축한 학생도 있다. 성정진 학생(경영학부 4)은 중구난방으로 스펙을 쌓기보단 맞춤형 경험을 통해 취업에 다가갔다. 그는 유명 패션 회사의 최종 면접만을 남겨놓은 상태다. 그는 2011년엔 파티기획업체를, 2012년엔 모자 브랜드를 만드는 시도를 했다. 이 밖에도 마케팅 관련 각종 동아리 활동과 기업 산학프로젝트 등에 참가하며 자신의 진로를 굳혔다.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도 사업 자금이나 기본스펙 중 하나인 어학 점수를 얻기 위한 비용을 부모님의 용돈으로 충당했다. 하지만 그는 목표가 명확했기 때문에 일찍 캥거루족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에도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스펙이나 시험으로 걸러낼 수밖에 없어요. 아쉬운 사람이 비용을 떠맡는 시대인 거죠.”

  성정진 학생처럼 목표가 명확해도 기본스펙은 있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임지선 학생은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조차 취준생에게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스펙 인플레이션’이 개인 탓은 아니라는 것이다. “목표가 명확하다고 취직이 보장되는 건 아니잖아요. 실패할 경우도 생각해야 하고 취업 공고가 났을 때 원하는 직무가 없더라도 취업하려면 미리 대비해야 하니까요.”

  취업자금을 부모에 의지하는 데 대한 임지선 학생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요즘 부모님들은 취업준비 비용을 떠맡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적성 검사 준비하다 보면 시사상식 문제로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자), 캥거루족이란 용어가 나와요. 이걸 외우고 있자니 씁쓸해지죠.” 그의 말처럼 캥거루족은 과도한 취업준비 비용을 부모님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태어났을 뿐,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취준생은 부모님의 지원이 없다면 영원히 새끼 캥거루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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