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시상식장, 저마다 어떻게 입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까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여배우들 틈바구니에 그녀가 있었다.

얼핏 보면 남자로 착각할 정도의 짧은 머리와 수수한 옷차림의 노희경 작가. 차림새 뿐만이 아니다. 그날 식장에서 최고 각본상을 받은 뒤 밝힌 수상 소감에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가 전부. 훌쩍이던 여느 그녀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리고 지난 18일 국어국문학과 초청 강연회에서 만나본 그녀는 의외로 달변에 가까운 말솜씨로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 연신 웃음을 자아냈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마음이 아프다며 가슴팍에 빨간 약을 바르던 고두심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 뒤에는 배우와 제작진의 노고가 있었을테고, 한번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몸무게가 32kg으로 내려가는 노희경 작가의 노고도 있었다.

“매일 쓰는 수밖에 도리가 없어요. 정말 원하는 건 매일같이, 밥먹듯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 세줄이라도 매일 5분씩 써 나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누적되는거죠”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꾸준함만이 정말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기본적인 작가로서의 자세를 말하는 그녀.  

그날 노희경 작가가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계속 강조한 것은 ‘계산을 하려면 제대로, 쫀쫀하게 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트렌드 드라마의 경우, 당장은 어떻게 잘 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주제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요즘 드라마의 경우 성공하는 건 열 개 중 하나 정도죠. 드라마 작가는 마라톤을 하는 것이에요. 그런 드라마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여러 개 중 하나여야 한다는 겁니다.”

작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으려면 장기적인 안목에서 꼼꼼히 계산해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토대가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그녀가 처음 드라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시는 잘 못쓰는 것 같고 소설은 어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너무 힘들고. 하지만 글은 쓰고 싶고 먹고 살기도 해야겠고. 결국 택한 것이 드라마.

“드라마를 쓰면서는 머리가 시원했고 너무 행복했다”는 그녀. 드라마는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다 똑같이 보게 된다. 아는 척 할 필요도 없고 개도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없어도 되고 자연스레 겸손해진다고 한다.

배종옥이나 윤여정 같은 배우들을 아끼는 것도 “그 배우들은 연기를 하면 할수록 모르겠다고 하고 늘 배우려는 자세로 겸손하기 때문”이란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노희경 작가의 글이 있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 죽도록 사랑한다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치열하고 솔직한 삶을 강조한 그 글에서처럼  그녀의 작은 체구는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담배 피우며 강연하는 작가, 스스로 가끔 ‘배가 불렀지’하고 자각하는 작가, 모르는 것을 글 속에서도 모른다 말하는 작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작가. 그녀의 드라마 속 등장인물을 닮아있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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