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86돌을 맞은 3·1절날 종로 거리 한복판에서는 느닷없이 독립만세를 외치는 민중들의 물결로 북새통을 이뤘다. 흰 저고리와 바지를 걸치고 태극기를 흔드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86년 전 그날 그대로였다.

  ‘3·1절 만세 거리축제’로 2005년에 와서 재현된 1919년 3월 1일. 독립을 기리는 비장함이야 마찬가지겠지만 당시와 오늘날의 시간 사이 간극은 같은 모습이 재현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재현 대상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해석들은 여러 가지 관점으로 오늘날의 텍스트 안에 구현되어 왜곡시비 등 많은 논쟁거리들을 낳고 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실제했던 개인을 재현하는 문제에 있어 대상의 반응은 더욱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다.

 25년 전 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보다 더 활발하게 오르내리는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 묘사된 실존 인물의 유가족들은 영화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등 좀더 적극적인 대응방식을 펼치고 있다. 재현 대상의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정치 권력 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재현 인물로써 박정희는 오랫동안 단골 소재로 쓰였다. 그가 본격적으로 부활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대중은 경제부흥의 후장이었던 옛 지도자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강력한 정치적 카리스마를 갖고 있던 박정희의 존재가치가 높이 평가되기 시작했다.

 진중권은 『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를 통해 ‘원래 대중은 경제가 어려울 때 문제에 대한 전문적 논의보다는 황금가지식의 해결, 즉 모든 문제를 왕의 문제로 투사하여 간편하게 설명해주는 정치적 도식을 선호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시대상황과 맞물려 나타난 정치적 향수는 박정희관 건립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공방 안에서 그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좌익 세력에서는 ‘되살아난 파시즘의 망령’이란 칭호로, 우일단체에서는 ‘우익의 아버지’로 새롭게 재기한 그였다.

 이후 그는 곳곳의 텍스트에서 매번 새롭게 재현된다. 작가 이인화가 집필한 『소설의 길』에서,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또 이를 비판하면 나왔던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그도 모자라 그는 딸 박근혜 의원이 머무는 정치판 어디서든 모습을 드러낸다. 역사의 뒤안길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를 띠고 말이다.


 특히 올해는 연초에 있었던 한일협정문서 공개를 시초로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의 의문, 그리고 박정희 친필 현판 논란까지 오히려 존재 형식이 다양화되어 수많은 논란을 낳고 이있다.

 특히 박정희 재현과 관련해 지난 달 <그때 그 사람들>을 둘러싸고 각개 인사들은 지난한 입씨름을 통해 입장차이를 고수했다. 한창 영화 개봉을 앞두고 논란이 되던 당시 ‘주간조선’에서는 방대한 분량의 지면을 할애해 영화와 실제 사건을 치밀하게 비교하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건물 위치에서부터 방의 구조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번호를 매겨 영화의 허구성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재현’이라는 개념 자체가 가진 본질을 상기할 때 아무리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지만 철저히 픽션일 수 밖에 없는 영화 장르를 사료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성 언론은 비슷한 시기 개봉되었던 <말아톤>의 흥행성공을 두고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는다. <말아톤>이 사실 그대로를 재현한 데 반해 <그때 그 사람들>은 거짓을 다루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게 요지다.

 과연 ‘잘 다룬 재현’이란 게 존재하는 것인가. 같은 대통령을 다룬 영화인데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담론을 생산해낸 영화도 있다. <화씨911>에서 부시 대통령은 아예 희롱거리로 전락한다.

 창작자 마이클 무어의 뒤틀린 심사가 영화 안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어 제일의 패권을 자랑하는 현직 국가 원수가 일개 웃음거리로 희화된 것이다. 재밌는 건 이 영화의 재현 방식이다.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법원 판결문에서처럼 ‘사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되는’ 다큐멘ㅌ리 형시을 123분 상영시간 내내 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실제적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JFK>등 상기되는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하나의 현상을 둘러싼 사회적 반응의 차이는 국가 간 거리 격차 만큼이나 큰 셈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박정희. 공교롭게도 10.26 사건 당시 자리에 있었던 심수봉의 노래 ‘그때 그 사람’ 가사에서처럼 박정희는 확실히 ‘이제 잊어야 할 그 때 그 사람’인 동시에 ‘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으로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를 통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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