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독창적 낭만주의 

향수 일깨우는 그의 음악 

 

평생을 걸친 지브리와의 협업 

음악을 통해 떠나는 판타지 여행

어린 시절의 달큰한 향수를 동심 가득한 멜로디로 풀어낸 음악가가 있다.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유년 시절 우리에게 허락됐던 무지개를 다시 꺼내보게 한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 세계를 따라가 보며 그가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여운을 아로새겨봤다. 

  클래식의 반항아, 거리의 음악가 

  1950년 일본의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히사이시 조는 유년 시절부터 음악을 향한 사랑이 남달랐다. 악기에 대한 흥미를 키워간 그는 일본국립음악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그의 자서전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히사이시 조 씀)에 따르면 당시 그는 자신이 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앞으로는 예술가의 길을 버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폭넓은 음악을 하자! 거리의 음악가가 되자!’  

  그 이후로 히사이시 조는 자신만의 전위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김재원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는 히사이시 조가 동양풍의 5음계에 자신만의 감성을 결합한 독창적 음악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동양적 감성의 5음계는 많은 곡에서 다양하게 쓰이는데요. 대중화된 화성에 본인만의 색채를 영화의 감성에 잘 녹여냈다는 점이 히사이시 조의 재능이죠. 따라서 널리 쓰이는 음계를 활용하더라도 뻔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단순한 듯 단순하지 않고 마치 서양의 음악인 듯하지만 동양의 색채가 묻어난다. 당시 음악계에서 동양의 클래식은 서양의 클래식에 비해 상대적인 비주류에 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사이시 조는 동아시아를 주무대로 음악 활동을 펼쳤으며 ‘아시아’만의 독특한 감성을 음악에 녹여냈다. 그렇기에 동아시아 클래식에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갖는 의미 역시 남다르다. 송영민 피아니스트는 현재 히사이시 조의 행보가 클래식의 새로운 지평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얼마 전 세계 최고 권위의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히사이시 조의 음반이 발매됐습니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상징인 옐로우 라벨을 달고 음반을 낸다는 것은 현 클래식 시장에서 최고 권위의 인정을 받는 것인데요. 그런 음반사에게 인정받는 과정은 그가 올해에도 또 다른 클래식 음악 장르를 개척한 것임을 시사하죠.” 

영화음악계의 거장 ‘히사이시 조’는 다년간 스튜디오 지브리와의 협업을 통해 대표적인 영화 OST 작품들을 남겼다.사진 출처 히사이시 조 인스타그램
영화음악계의 거장 ‘히사이시 조’는 다년간 스튜디오 지브리와의 협업을 통해 대표적인 영화 OST 작품들을 남겼다.사진 출처 히사이시 조 인스타그램

 

  클래식에서 영화음악의 경계를 넘다 

  히사이시 조의 대표적인 음악 철학 중 하나는 미니멀리즘이다. ‘미니멀 음악’이란 패턴화된 음형을 조금씩 변형해 미묘한 차이를 즐기는 음악이다. 히사이시 조는 영화음악에 자신의 작품을 녹일 때 대체적으로 미니멀 음악을 추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OST에서도 화려한 악기나 음은 완전히 배제했다. 그의 음악을 주의 깊게 들어보면 영화의 장면을 고려해 담백한 선율을 제작한다는 점에서 기술적인 절묘함을 느낄 수 있다. 김재원 피아니스트는 영화음악에 녹아든 히사이시 조만의 미니멀리즘 연주 효과를 설명했다. “히사이시 조의 미니멀 음악에는 대표적으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의 <Summer>,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어느 여름날>과 같은 곡이 존재합니다. 이 음악들은 영화의 장면과 결합하기 때문에 감성적인 면이 부각된다고 할 수 있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수록된 곡들 역시 미니멀 음악을 대표합니다.” 

  영화와 음악을 생생하게 어우러지게끔 만든 그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송영민 피아니스트는 서정적인 멜로디와 영상의 조화가 그의 대표곡들을 이루고 있다고 평했다. “마치 200년 전의 쇼팽처럼 단순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선율을 그려내는 것이 히사이시 조의 특징입니다. 그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영상을 만나며 지금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만든 것이죠.” 

  그의 예술이 빚어낸 역작 중에서도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입혀진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독보적인 조화를 이뤘다. 히사이시 조는 지브리의 작품 세계에 부응하는 영화음악을 만들기 위해 음악과 시청각을 연결 짓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지브리로부터 공식 연주 자격을 인정받은 엘리자베스 브라이트 피아니스트는 히사이시 조의 영화음악은 영상과 음악의 만남을 넘어 하나의 예술로서 기능한다고 말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결합할 때 둘은 단순히 영상과 음악이 더해지는 차원을 넘어서 환상적인 시너지를 내며 융합합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고요함을 압도하지 않고 영화와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특색이 더욱 살아나죠.”  

  히사이시 조가 초대하는 판타지 속으로 

  작품이 추구하는 배경음악을 정확하게 꿰뚫듯 그의 담백하고 깊이 있는 멜로디는 영화에 온전히 녹아든다. 대표적으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에 삽입된 <Summer>의 경우 싱그러운 여름의 정취를 담고 있다. 김재원 피아니스트는 피아노의 왼손 8분음표 반주부를 통해 해당 곡이 여름의 계절감을 생생하게 구사한다고 설명했다. “이 곡의 생동감을 좌우하는 부분은 피아노의 왼손 8분음표입니다. 기존의 8분음표가 아닌 슬러와 스타카토를 이용해 각 음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연주하는 ‘아티큘레이션’을 만들었는데요. 이를 통해 곡에 청량함과 생명력을 불어넣죠.” 

  유년의 향수를 담은 영화 <이웃집 토토로> 속 <바람이 지나는 길>은 일본 농촌의 분위기와 숲의 신 토토로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절묘하게 이어준다. 엘리자베스 브라이트 피아니스트는 <바람이 지나는 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표현한다고 말했다. “조몬 시대 무렵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지브리 작품에는 항상 ‘비가시적 세계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어요. 영화뿐 아니라 히사이시 조의 음악에도 이러한 몽환성을 표현하는 요소가 흐르고 있습니다.” 

등의 작품을 제작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 출처 지브리 아카이브 인스타그램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작품을 제작한 스튜디오 지브리는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사진 출처 지브리 아카이브 인스타그램

 

  여름의 노스탤지어는 오래 그곳에 남아 

  그의 영화음악은 여러 나라의 민요를 사용해 풍부한 감성을 자아내며 관객과 호흡한다. 그가 차용한 음악들은 세련된 멜로디로 재창조된다. 하지만 동화적인 감성을 강조하는 그의 음악은 때로 진부하거나 감수성이 과도하게 천착돼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영민 피아니스트는 히사이시 조만이 갖는 독창성이 음악계에 분명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과거의 베토벤, 쇼팽, 리스트 모두가 세간의 악평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200년이 지난 지금 동양의 소도시에서까지 그들의 음악은 사랑받고 있죠. 자신만의 정체성은 작곡가에게 필수적입니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 역시 현시대의 감성을 독창적으로 담아내고 있기에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죠.”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을 추억에 젖게 한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과거의 향수가 미래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그의 선율은 누군가의 입가에 미소를 짓도록 하는 아름다운 가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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