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Aside)은 연극 용어로 ‘인물이 관객에게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인물의 곁에서는 듣지 못하기 때문에 오직 관객에게만 들리는 말이죠. 사회를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어떨까요. 이번 학기 중대신문 사회부는 우리 사회라는 무대 위,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방백을 할 수밖에 없던 인물들을 조명하려 합니다.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극의 관객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응하셨다면 이번 주는 ‘여성 노숙인’으로 열어보려 합니다. 끝까지 꼭 자리를 지켜주세요. 이제 시작합니다. 김지우 기자 eraser@cauon.net

살아남기 위해 일상이 된 은둔 

정신질환자 대상 성착취도 잦아

지하철역이나 터미널 혹은 거리 곳곳을 거닐다가 노숙인을 마주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지나치는 노숙인 중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에서 그녀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깊어지는 어둠 속에서 여성 노숙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사진 김지우 기자
사진 김지우 기자

  선택 '당한' 노숙

  21일 저녁 8시경 서울역 6번 출구 지하도에는 무료 도시락을 받기 위한 노숙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모습을 드러낸 노숙인들 대부분은 남성으로, 여성 노숙인의 모습은 쉬이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의 서성거림 끝에 도시락 배식이 끝나갈 무렵 여성 노숙인 A씨와 우혜진씨(46)를 만날 수 있었다.  

21일 서울역 6번 출구 지하보도에서 여성 노숙인 A씨를 만났다. 그녀는 다른 노숙인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떨어진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 김지우 기자
21일 서울역 6번 출구 지하보도에서 여성 노숙인 A씨를 만났다. 그녀는 다른 노숙인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떨어진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 김지우 기자

   조심스레 노숙의 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A씨는 가족사를 회상했다. “집안 식구들은 다 죽거나 요양원에 가고 저만 남았어요. 혼자니까 그냥 돌아다니면서 살아야겠다 싶었죠. 이렇게 산 지 5년 됐어요. 사실 여동생이 한 명 있는데 그 애랑은 절연한 지 오래예요.” 

  실제 여성 노숙인의 노숙 원인은 남성에 비해 그 면면이 훨씬 복잡하다. 「2010 서울시 노숙인 지원정책 성별영향평가」(서울시 여성가족재단, 2010)에 의하면 남성 노숙인의 60% 이상은 실직 및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노숙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여성 노숙인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46.7%)과 함께 정신질환에 의한 가족 내 갈등·친족 성폭력·가정 폭력 등의 ‘가족 문제(43.3%)’가 노숙의 주요한 계기로 집계됐다. 

  신원우 교수(협성대 사회복지학과)는 남성 노숙인과 여성 노숙인의 노숙 원인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를 가정 내 성역할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했다. “여성 노숙인이 겪는 ‘가족관계의 어려움’은 가정 내 불화뿐만 아니라 정신적·심리적 질환이 방치된 결과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맡는 경우가 많다 보니 정신적 문제로 입·퇴원하는 여성 환자는 돌봄을 받지 못해 노숙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상당수죠.”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여성 노숙인 중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보건복지부, 2021)에 따르면 알코올·약물중독·우울증 등 여성 노숙인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약 42.1%로 남성(약 15.8%)보다 많았다. 

  최리선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사회복지사는 여성 노숙인의 정신질환은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있다고 전했다. “정신질환이 발생해서 노숙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조금 더 높긴 하지만 고된 노숙 생활로 인해 정신질환이 생겨난 사례도 존재합니다. 가정에서도 거리에서도 돌봄을 제공받지 못한 분들이다 보니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하죠. 여성 노숙인분들의 정신질환 문제는 본인의 동의가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도 절차상 어려움으로 작용해요.” 

  머리카락이라도 보일라 꼭꼭 숨는다 

  역사에 여성 노숙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기자의 말에 A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에 비해 여성 노숙인의 수는 많이 적어요. 노숙하는 여자들을 다 합쳐봐야 한 줌도 안 될 거예요. 근데 저처럼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더 소수죠. 환경이 위험하다 보니까 기도원 같은 곳에 왔다 갔다 하면서 배회하는 여자들도 많거든요.” 

  14일 열린여성센터에서 만난 B씨 역시 노숙 생활 동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한 곳을 찾아 매 순간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남은 건 내 몸 하난데 이거라도 지켜야죠. 홀로 거리에서 자다가 험한 일을 당할까 봐 항상 큰 건물 상가에 숨어 잠들었어요. 사무실이나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는 건물은 저녁 시간 이후면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거든요. 슬슬 동이 트기 시작하는 새벽부터는 조계사를 한참 거닐며 오전을 보냈어요. 대형 교회에 가서 신한테 기도도 많이 했죠. 매일 같이 떠돌다 보니 몸이 안 좋아져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쓰러진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렇게 돌아다니면 저한테 말 거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 부닥칠 일도 덜 생기더라고요.” 

  여성 노숙인은 찜질방·종교시설·화장실·PC방 등 공개된 장소가 아닌 곳을 찾아 머문다. 여성 노숙인에게 거리란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신원우 교수는 여성 노숙인은 성적 및 신체적 위협을 피하고자 자기 방어용으로 은둔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노숙인들이 겪는 폭력은 주로 방범대나 순찰대가 미치지 못하는 장소나 시간대에 발생합니다. 그렇기에 특히나 폭력에 대응하기 어려운 여성의 경우 공공시설에 숨어 지내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죠. 외에도 일부 여성 노숙인은 남장을 하거나 잘 씻지 않고 일부러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기도 하는데요. 이 또한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지극히 ‘적응적인’ 행동으로 해석되죠.” 

서울역 역사의 노숙인들이 숙면을 취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 머무는 여성 노숙인은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사진 김지우 기자
서울역 역사의 노숙인들이 숙면을 취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 머무는 여성 노숙인은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사진 김지우 기자

  위험뿐인 환경에서 살아남길 바란다면 숨거나 혹은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A씨와의 인터뷰 도중 다가온 동료 여성 노숙인 우혜진씨(46)는 무료 급식을 받을 때와같이 노숙인들과 한데 어우러지는 상황에서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남성과 동행한다고 말했다. “매주 일요일에 교회 사람들이 서울역에 와서 무료로 음식을 나눠줘요. 그런데 이런 곳은 친구인 남자라도 만들어서 데리고 오지 않으면 위험해서 안 돼요. 그래야 다른 노숙인들이 우릴 안 건들거든요. 한번은 아는 언니하고 갔다가 제 휴대전화랑 다른 물건들을 전부 뺏긴 적도 있어요.” 

  몸과 마음 모두에 남은 상흔 

  울타리 없는 거리에 방치된 여성 노숙인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2020년도 서울시 재난 상황에서 노숙인 등 인권상황 실태조사」(한국도시연구소, 2020)를 보면 조사대상자인 여성 노숙인 중 약 10.1%가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과 현장의 여성 노숙인은 여성 노숙인이 성범죄에 극도로 취약한 환경에 놓여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나 이러한 성범죄 위험은 지적장애나 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 노숙인에게 더욱 편중된다.  

  문정우 열린여성센터 사무국장은 거리에서 노숙하는 여성의 경우 성폭행을 당한 후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가 잦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얼마 전 센터를 방문한 여성 노숙인 한 분은 동료 노숙인에게 성폭행을 두 번이나 당하고 아이를 낳은 후 입양 보내셨는데요. 이런 사례들은 꽤 많습니다. 거리의 여성 노숙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처지가 비슷한 동료 노숙인들이 밥 한 끼 사주는 식으로 조금이라도 온정적으로 대해주면 금방 마음이 열려 따라가시는 여성 노숙인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특히나 지적장애를 겪는 여성 노숙인의 경우 타인을 잘 의심하지 않고 따라서 더 위험하죠.” 

  A씨 또한 동의했다. “일방적인 성추행이나 성폭행도 잦은데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여자들은 특히 남성을 거부하지 못하다 보니 일을 많이 당하죠. 5000원이나 1만 원만 받고 신체 부위를 보여주거나 성관계를 맺는 일이 이 바닥에서는 너무 자주 일어나요.” 

  거리뿐만 아니라 노숙인들이 거주하는 주거시설에서도 성범죄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일부 노숙인 지원시설에서는 노숙인으로 하여금 고시원이나 쪽방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월마다 일정 금액을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A씨는 해당 주거 시설에 입소했다고 해서 결코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여성 노숙인들이 있는 쪽방이나 고시원도 절대 안전하지 않아요. 정신질환이 있는 여성 노숙인을 노리는 고시원 총무들도 있거든요.” 

일부 여성 노숙인들은 노숙인 지원시설에서 월마다 지원하는 보조금을 통해 고시원이나 쪽방에서 머무르고 있다.  사진 김지우 기자
일부 여성 노숙인들은 노숙인 지원시설에서 월마다 지원하는 보조금을 통해 고시원이나 쪽방에서 머무르고 있다.  사진 김지우 기자

  발걸음을 내딛는 차디찬 바닥에 누군가는 머리칼을 누인다. 시린 겨울의 공기보다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는 그녀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오로지 혼자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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