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기준 8956명에 달하는 노숙인 중 여성 노숙인은 약 27.8%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성 노숙인이 집계에서 배제되는 장소에 노숙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통계보다 더 많은 여성 노숙인이 있음을 강조했다. 제도적 지원망 속에서도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 노숙인의 자립을 위해선 어떠한 변화가 필요할까. 여성 노숙인의 삶 속에 안전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지원책을 모색해 봤다. 

정의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노숙인복지법)은 거리와 노숙인 시설과 같이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하게 낮은 곳에서 상당 기간 생활하는 자를 가리켜 노숙인이라 지칭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해당 법률에 명시된 노숙인의 정의에 따라 고시원·여인숙·PC방 등 비정적 거처에서 머무는 거주자를 노숙인으로 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노숙인 개념이 노숙인들을 실질적으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노숙인의 주거 지역을 특정한 현행법상의 정의로 인해 거리나 시설을 벗어나 은둔해 있는 여성 노숙인에 대한 지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윤민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에서 규정하는 노숙인의 정의가 좁을수록 지원이 가능한 대상자의 범위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다”며 “제한된 노숙인의 정의는 여성 노숙인을 발굴해 내고 이들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책을 만들어내기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피상적인 노숙인 정의는 국내 노숙인 실태조사에 공백을 만들어냈다. 문정우 열린여성센터 사무국장은 “여성 노숙인은 법이 규정하는 노숙인의 거주구역(거리·노숙인 시설)이 아닌 찜질방이나 24시간 운영하는 가게 등 숨어 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행법에 따르면 이들의 존재는 당연히 무시될 수밖에 없다”며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여성 노숙인이 존재하지만 전혀 추산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최리선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사회복지사 역시 “생존에 의한 본능으로 여성 노숙인은 숨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재 정부에서 제공하는 통계보다 실제 수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원시설 이용도 쉽지 않은 현실 

노숙인복지법은 국가 및 지자체가 성별 특성을 고려해 노숙인을 위한 지원사업을 시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1월 기준 서울특별시 내에 존재하는 여성 노숙인 시설은 단 두 개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노숙인 지원시설이 성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여성 노숙인이 시설 이용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며 성별 분화 시설의 확충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정우 사무국장은 “여성 노숙인이 센터를 찾아와도 갈 데가 없다”며 ”시설을 이용하려면 남성 노숙인과 같은 공간을 써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다고 이들을 보호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현장에선 방 한 칸에 남녀 노숙인을 함께 수용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신원우 교수(협성대 사회복지학과)는 “노숙인 수용시설에는 개인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며 “여성 노숙인에게 어떻게 별도의 시설을 제공할 것인지에 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숙인 시설이 개인의 여건을 반영할 만큼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도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임덕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녀가 있는 여성 노숙인이 입소할 시설 자체가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자녀가 있는 여성 노숙인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해당 여성 노숙인에게 노숙인 시설 형태의 거처가 필요한지에 대한 실태 파악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해진 거처 없이 움직이는 노숙인의 생활 특성상 보호시설을 자유로운 공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시설 사용에 거부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문제시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보건복지부, 2021)에 따르면 거리 여성 노숙인의 약 33.9%가 시설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단체생활과 규칙’을 꼽았고 약 16.4%는 ‘시설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들은 다시 거리로 걸음을 옮긴다 

현행 노숙인복지법은 노숙인이 복지서비스를 받으려면 반드시 노숙인 시설을 경유하도록 설계돼 있다. 노숙인복지법의 복지서비스 제공에 관한 규정이 노숙인 시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숙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노숙인 진료시설을 이용하려는 노숙인 등은 노숙인일시보호시설 또는 노숙인 자활시설에 입소해야 한다. 실제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여성 노숙인의 약 42.1%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 중 약 91.6%가 시설을 통한 치료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노숙인 시설을 통한 의료지원은 여성 노숙인의 발걸음을 시설에서 다시 거리로 옮기게 만들고 있다. 최리선 사회복지사는 “시설에 입소한 여성 노숙인 중 대략 80~90%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치료를 권유받아도 10명 중 9명 가까이는 거부한다”며 “시설 입소 조건 중 하나가 정신과 약을 먹는 것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질병 인식을 거부하다가 거리로 돌아서곤 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실의 대안으로 보건복지부는 노숙인 보호 체계를 강화하고자 ‘제2차(21년~25년)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 종합계획(제2차 종합계획)’을 실시했다. 그러나 제2차 종합계획 시행 이후 노숙인 시설의 신축은 지역민의 기피 등으로 사실상 추진이 중단됐고, 기존의 노숙인 시설이 노숙인 종합지원센터나 노숙인일시보호시설의 역할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수정됐다.  

이와 관련해 홍수경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노숙인 생활시설과 노숙인 현장 지원체계 구축은 양립할 수 없다”며 “생활시설에 노숙인 지원을 위한 인력과 조직을 편성하겠다는 것은 시설 입소 중심으로 회귀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방침”이라고 전했다.  

노숙인에 대한 지원사업이 노숙인의 자립을 일구는 데 한계가 있을뿐더러 여성 노숙인의 보호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임덕영 연구위원은 “거점 역할을 하는 주체가 대부분 그 지역의 생활시설이기에 거리 노숙인을 생활시설로 안내하는 역할에 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노숙인과 관련된 사업이 단순 시설 확대가 아닌 서비스 확대로 이어질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의 끝이 향해야 하는 방향은 

여성 노숙인의 특수성을 고려해 유의미한 지원체계를 만들기 위해선 어떠한 목표 의식이 선행돼야 할까. 「2021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시설에 20년 이상 거주한 남성 노숙인 비율은 약 18.9%인데 반해 여성 노숙인은 약 43.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숙인의 주거 불안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시설 입소·설립에 치중된 지원을 넘어 노숙인의 자립을 목표로 지원체계가 정비돼야 한다고 전했다.  

홍수경 상임활동가는 “여성 노숙인이 시설에 갇히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모든 노숙인 복지 제도에 있어 젠더 특성을 반영한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설을 방문하는 것 외의 다른 방안도 선택지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수의 여성 노숙인이 지속적인 정신질환 치료가 필요하다는 특성을 고려해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섬세한 주거 모델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정신질환의 특성상 지속적인 치료와 사회복지사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택에서부터 이러한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지다.  

문정우 사무국장은 “미국은 ‘서포티브 하우징’이라는 이름의 형태로 취약층이 사는 지역 주택에 사회복지사가 함께 머물러 이들을 관리하는 주거 복지를 실현하고 있다”며 “한국 또한 여성 노숙인의 자립을 위해서 앞선 사례와 같은 자립 지원 형태의 복지를 도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쪽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핵심”이라며 “탈시설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간과해선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여성 노숙인을 위한 지원은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실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윤민석 연구위원은 “노숙의 경우 유형마다 원인과 마주한 현실적 어려움이 다르므로 최소한의 차이를 고려한 섬세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들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노숙인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임을 우리 사회가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성 홈리스 전시회 '여성 홈리스가 나눈 집 이야기'에서 전시된 여성 노숙 경험자의 심리 지도 그림이다. 당시 머물렀던 거주 환경을 곰팡이로 묘사했다. 사진출처 홈리스행동
지난해 여성 홈리스 전시회 '여성 홈리스가 나눈 집 이야기'에서 전시된 여성 노숙 경험자의 심리 지도 그림이다. 당시 머물렀던 거주 환경을 곰팡이로 묘사했다. 사진출처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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