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말처럼 시대적 가치와 연극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미래지향적 가치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요즘, 연극도 젠더·장애·환경·과학기술 등 다양한 테마에 관심을 지니게 됐죠.” -전인철 극단돌파구 공연연출가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은 커다란 발견과 새로운 변화를 불러온다. 2023 서울국제공연예술제 SPAF(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경계 없는 사고·질문과 함께했다. 19개의 공연을 통해 우리는 어떤 질문과 관점을 접할 수 있었을까. 다양성의 관점부터 관객과 무대 사이 경계에 관한 질문까지, 다채로운 질문을 통해 공연예술인들이 바라본 앞으로의 공연예술을 살펴봤다. 

연극 '지상의 여자들'은 폭력의 원인이라 여겨지던 남성이 도시에서 사라졌음에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한국 여성과 이주민 여성 등 여성 간의 폭력이 여전한 현실을 보여주며 폭력과 혐오에 찌든 세태를 꼬집는다. 사진출처 SPAF 홈페이지
연극 '지상의 여자들'은 폭력의 원인이라 여겨지던 남성이 도시에서 사라졌음에도 시어머니와 며느리, 한국 여성과 이주민 여성 등 여성 간의 폭력이 여전한 현실을 보여주며 폭력과 혐오에 찌든 세태를 꼬집는다. 사진출처 SPAF 홈페이지

  동시대 사회문화와 다양성의 관점에서 
  복잡한 사회 속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공연예술은 우리 사회 속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연극 <지상의 여자들>은 성별에 따라 갈등·혐오를 일삼는 우리 사회를 향해 앞으로 어떤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극 속 가상의 지방 도시 ‘구주’에서는 폭력적인 성향의 남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드디어 가부장으로부터 해방된 여자들은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남자가 없는 세상에서도 또 다른 갈등과 위계를 만들어 내고 만다. 
  
  연극 <지상의 여자들>의 연출을 맡은 전인철 극단돌파구 공연연출가는 불안정한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뉴스를 보면 사람들의 분노가 온 사방에서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폭발할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한국 사회는 항상 불안정하죠. <지상의 여자들>은 이러한 사회 모습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관객은 공연을 관람하며 ‘현재의 위태로움에 머무는 것’과 ‘도시 구주와 같이 특정 성별이 사라지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라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해 볼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연극 속 이야기에 머무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열린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연극 '연극연습3. 극작 연습-물고기로 죽기'는 퀴어를 ‘물고기’라 지칭한다. 물고기의 비유에는 사람은 모두 특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함의가 담겨있다. 사진출처 SPAF 홈페이지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연극 '연극연습3. 극작 연습-물고기로 죽기'는 퀴어를 ‘물고기’라 지칭한다. 물고기의 비유에는 사람은 모두 특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함의가 담겨있다. 사진출처 SPAF 홈페이지

  연극 <연극연습3. 극작 연습-물고기로 죽기>는 성소수자가 어떻게 세상과 불화하고 화해하며 살아남아 온전히 나이들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이야기한다. 공연은 유서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이 세상의 모든 퀴어들이 자연스럽게 나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너희들은 나이가 아니야. 너희들은 성별이 아니야. 너희들은, 물고기야. 헤엄쳐야 하는 물고기야.” 고주영 연극연습 프로젝트 공연기획자는 물고기라는 캐릭터가 지니는 은유적 의미를 설명했다. “김비 작가는 퀴어를 물고기라 지칭했어요. 사람은 모두 물에서 태어났기에 성별이나 나이, 가족 등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은유적 표현이죠.”

  SPAF는 성별 갈등과 성소수자 혐오 등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이야기했다. 전인철 공연연출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극과 동시대 사회문화 간의 연관성을 언급했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는 말처럼 시대적 가치와 연극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미래지향적 가치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요즘, 연극도 젠더·장애·환경·과학기술 등 다양한 테마에 관심을 지니게 됐죠. 미학적 성취보다 윤리적 실천을 우선하는 젊은 연극인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주영 공연기획자는 앞으로도 공연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극무대를 통해 전해야 할 목소리를 왜곡 없이 이야기하려 합니다. 관객들은 무대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와 만나고 연루되죠. 공연이 ’다른 것이 당연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연습의 장이 됐으면 합니다.”

  기후 위기 시대, 예술로 돌파하기
  기후 위기 시대에 환경에 대한 담론은 어느 분야에서나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우리의 삶을 잘 담아내는 공연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연극 <에너지_보이지 않는 언어>는 기후 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술의 형식을 빌려 질문을 던진다. 연극에서는 화석에너지 중심의 체제에서 탈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이야기한다. 특히 석유를 팔아 막대한 이윤을 얻었던 기업들이 이제는 돈이 된다는 이유로 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드는 현실을 꼬집었다.

  해당 연극에 작가로 참여한 김지연 연세대 기후적응 리빙랩 연구사업단 연구원은 기후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개인에게서 찾는 관행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 전체를 돌아보고자 했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는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개인에게 죄책감을 씌우거나 공포를 조성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합니다. 개인의 태도 변화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강조하죠. 그러나 기후 위기의 중심에는 온실가스가 있으며 온실가스 감축의 본질은 에너지에요. 연극에서도 이 지점을 정확히 짚고자 했습니다.”

  SPAF는 기후 문제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던지기도 했다. <지상의 여자들>은 인간 안에 내재된 폭력성이 기후 위기를 야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인철 공연연출가는 기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 안에 있는 폭력성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원작 소설 『지상의 여자들』(박문영 씀) 속 짧게 등장하는 독수리 떼 폐사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잠시 머물던 독수리들이 잔류농약을 먹고 죽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죠. 기후 위기를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폭력 문제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 안에 있는 폭력성을 줄이는 것입니다.”

AR스마트글라스를 활용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극 '인.투'는 약 100년 전 민중들의 독립운동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독립이란 무엇일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출처 SPAF 홈페이지
AR스마트글라스를 활용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극 '인.투'는 약 100년 전 민중들의 독립운동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독립이란 무엇일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출처 SPAF 홈페이지

  예술에 기술을 더해
  
예술과 기술의 만남은 변화하는 시대 속 예술계의 주요한 고민이 되었다. SPAF는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연극 <인.투>는 ‘AR스마트글라스’를 활용해 관객이 극에 참여하도록 했다. 김준영 거인아트랩 대표는 AR스마트글라스라는 기술을 활용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연극 <인.투>는 삼일대로와 인사동 일대를 이동하며 관람하는 장소 이동형 공연이었습니다. 특정한 지점에 도착하면 AR스마트글라스를 통해 과거로부터의 신호를 감지해 낼 수 있다는 가상의 설정으로부터 출발하죠. 이를 통해 과거 인물의 사연 등을 텍스트와 미디어아트 등으로 볼 수 있게 했어요.”

  예술과 기술의 만남에 따른 우려점은 우리가 예술과 기술의 협업에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김준영 대표는 공연에서 기술이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연극 <인.투>가 첨단 기술의 전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늘 경계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예술작품의 필요에 의해 기술을 찾는 것이 아닌 기술의 전시를 위해 작품이 보조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를 종종 봤기 때문이죠. 첨단 기술을 작품 안으로 끌어오는 것보다, 기술이 우리 인간의 어떠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과 무대 사이 경계를 넘어
  연극 <인.투>는 관객과 무대 사이의 경계에 관한 물음도 던졌다. 김준영 대표는 <인.투>에서 관객이 극에 참여하도록 한 목적을 설명했다. “<인.투>는 과거의 독립운동을 통해 관객이 오늘날 자신의 ‘독립’을 생각할 수 있도록 했어요. ‘오늘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으로부터 독립을 원하는가?’ 등의 질문을 함께 나누고자 했죠. 관객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피동적으로 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상황에 비춰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작품의 목적에 따라 공연은 적극적인 양방향 소통의 형태로 활용될 수 있어요.”

  연극 <에너지_보이지 않는 언어>도 기후 위기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관객 참여 방식을 시도했다. 관객 스스로 무대 위 기후와 관련된 단어를 재배열하는 과정에서 무대와 그리고 또 다른 관객과 소통하도록 한 것이다. 전윤환 공연연출가는 관객 스스로가 기후 위기를 자신의 문장으로 만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어의 부재와 왜곡이 기후 위기 시대 상상력의 부재를 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연극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한 언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은 어렵기에 관객들이 서로 소통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했어요.”

  전윤환 공연연출가는 예술의 역할이란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먼저 질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시대마다 예술계가 집중하는 화두가 있습니다. 예술계는 동시대에 가장 첨예한 주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담론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죠. 저희는 그 주제로 관객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늘 고민해요. 예술계는 소통을 위해 질문을 던지는 등 관객을 직접 연극에 참여시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계 없는 사고와 질문은 예술 창작의 가장 중요한 출발 지점이다. 모두 함께 SPAF의 다채로운 질문의 장에 동참해보자. 공연예술의 미래를 엿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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