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브로는 ‘시네마’와 ‘시나브로’를 합친 단어입니다. 시나브로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극장·예술계는 조금씩 변화의 흐름이 생겨나고 있죠. 이번 주 문화부는 이머시브 연극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봤습니다. 초기 이머시브 연극인 <슬립 노 모어>를 지나 <이머시브씨어터 카지노>와 <고스트 인 더 씨어터>까지. 이머시브 연극은 어떤 발전의 역사를 거쳐왔을까요. 관객과 배우 모두가 주인공인 이머시브 연극의 매력에 함께 빠져보시죠. 진수민 기자 susky@cauon.net
 

대학로 스타시티 카지노 전용관에서 공연하는 '이머시브씨어터 카지노'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폐해를 꼬집는 극으로 이머시브 연극의 형태를 띤다. 김태균 배우는 폭력적으로 카지노를 장악하는 ‘파라다이스 카지노’의 주인 존을 연기한다. 사진제공 극단 푸른하늘
대학로 스타시티 카지노 전용관에서 공연하는 '이머시브씨어터 카지노'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폐해를 꼬집는 극으로 이머시브 연극의 형태를 띤다. 김태균 배우는 폭력적으로 카지노를 장악하는 ‘파라다이스 카지노’의 주인 존을 연기한다. 사진제공 극단 푸른하늘

“관객은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며 더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같은 연극을 여러 번 관람하면서도 배우와 관객이 형성하는 사회 속에서 새로운 신선함을 느끼죠. 이는 많은 관객들이 <이머시브씨어터 카지노>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해요.”-양문수 연출가

“연극은 인간의 본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여기, 어떤 공연보다 인간의 본성을 잘 담아내고 있는 연극이 있다. 연극 <이머시브씨어터 카지노>(<카지노>)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어 관객의 참여와 몰입을 극대화한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이다. 연극의 상황 속에 몰입한 관객은 어렵지 않게 인간의 본성을 마주하게 된다. 관객들이 카지노에서 마주한 우리네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매일 새로운 <카지노>를 완성해 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Any more bets? 
  3일 저녁 대학로 스타시티 카지노 전용관은 <카지노>를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극장 입구에 위치한 커튼을 열고 들어가자 붉은 조명 아래 다섯 개의 카지노 테이블과 작은 무대가 보였다. ‘파라다이스 카지노’에 입장한 관객들은 카지노의 고객이 됐고 다양한 베팅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극장 어디에서도 좌석은 찾을 수 없었다. 해당 공연장은 <카지노>의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전용공간이다. <카지노>의 제작·연출을 맡은 양문수 연출가는 공연이 인기를 끌며 전용 공연장까지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관객분들의 사랑 덕분에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오픈런 공연을 기획하게 됐어요. 이머시브 연극의 특성상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는 효율적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기존 극장을 개조해 전용 공연장을 만들게 된 것이죠.” 존 역의 김태균 배우는 전용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가 극 몰입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레드벨벳 커튼과 카지노의 테이블, 반짝이는 미러볼 등 다양한 장치는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해 관객의 몰입을 도와주고 있어요.”

“Any more bets?” 딜러 현 역의 안지현 배우가 베팅을 권한다. 사진제공 극단 푸른하늘
“Any more bets?” 딜러 현 역의 안지현 배우가 베팅을 권한다. 사진제공 극단 푸른하늘

 

  각 테이블에 자리한 딜러 역의 배우들이 외친다. “Any more bets? No more bet!” 더 이상 베팅할 사람이 없을 경우 게임이 진행된다. 어떤 관객은 모든 코인을 잃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코인을 두 배로 늘리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베팅 게임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게임의 규칙을 몰라 머뭇거리던 기자도 베팅 성공의 짜릿함을 맛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카지노 안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딜러 민 역의 문수민 배우가 하이앤로우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극단 푸른하늘
딜러 민 역의 문수민 배우가 블랙잭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극단 푸른하늘

  양문수 연출가는 계속되는 게임이 극 몰입을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이머시브의 immerse는 ‘담그다’ 또는 ‘몰두하게 만들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게임은 관객을 극의 상황에 몰입시키기 위한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베팅 게임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극의 상황에 빠르게 몰입하게 되고, 이는 관객이 한 명의 배우로서 극에 참여하도록 도와줍니다.” 
 
  No more bet 

  “살려주세요!” 상황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계속되는 베팅에 시끄럽던 극장은 한순간 고요해진다. 관객 사이에 스며들어 게임을 즐기던 배우들은 어느새 각자의 자리에서 심각한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누군가는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파라다이스 카지노 안의 누구도 남을 돕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극의 말미에는 가장 많은 코인을 획득한 이를 ‘카지노 킹’으로 선발한다. 계속되는 카지노 주인의 폭력적이고 험악한 행동에 딜러들은 온몸을 떨며 게임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관객은 카지노 킹이 되고자 베팅을 멈추지 않는다. 

  이날 공연에서 카지노 킹에 선발된 관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방관자이자 공범입니다.” 양문수 연출가는 <카지노>를 통해 무언가에 몰입해 사회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연극은 관객과 사회가 각자의 본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게 합니다. 하지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우리는 ‘카지노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죠. 그래서 역설적으로 연중무휴 24시간 영업하는  카지노를 배경으로 관객들이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었어요. 사회의 다양한 일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하고 반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죠.” 딜러 현 역을 맡은 안지현 배우도 카지노가 전달하는 의미를 사회 전반의 모습과 연결지어 설명했다.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는 현을 연기하며 지금 내 삶과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곤 합니다. 관객분들도 이를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이 연극의 진짜 주인공은 나였어 
  <카지노>에서 관객은 극의 주체로서 배우와 함께 연극을 이끌어가는 존재다. 매일 다른 관객이 <카지노>를 찾기 때문에 극의 구체적인 내용도 매일 달라진다. 김태균 배우는 예상치 못한 흐름을 마주했을 때의 어려움을 말했다. “관객이 의외의 반응을 보일 때 가장 짜릿함을 느끼지만 동시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있지 않으면 관객과의 호흡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죠. 상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극을 이끌기 위해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리허설을 진행하곤 합니다.”

  딜러 민 역의 문수민 배우는 공연 중 관객의 몰입이 깨지는 순간을 목격할 때의 대처가 가장 힘겹다고 전했다. “게임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아 게임 안 하고 연기 봐야 해?’라며 말을 건네는 분들이 계세요. ‘현실이 아닌 공연’이라는 인식이 두터워지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 이를 연기로 풀어내는 과정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공연 중 다양한 질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기하는 캐릭터에 몰입해 답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나 배우의 입장에서 ‘살아있는 캐릭터’는 굉장한 원동력이 된다. 문수민 배우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머시브 연극이 배우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배우가 무대 안에서 살아있을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힘이 됩니다. 저는 관객분들이 전해주신 감정, 눈빛, 말 등에 따라 캐릭터의 엔딩을 다르게 마무리하기도 해요. 그래서 관객분들에게 항상 ‘함께 무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전하곤 합니다.” 

  관객과 배우의 관계 형성은 <카지노>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양문수 연출가는 관객들이 배우와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관객은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며 더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같은 연극을 여러 번 관람하면서도 배우와 관객이 형성하는 사회 속에서 새로운 신선함을 느끼죠. 이는 많은 관객들이 <카지노>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최소 50번 이상 <카지노>를 관람했다고 전한 최은수씨(25)는 이머시브의 형식 덕분에 극의 이야기가 더 잘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위험에 처한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습니다. ‘왜 다들 보고만 있어요.’라는 대사가 있는데요. 마치 저에게 말하는 듯한 이 대사는 이머시브 연극이기 때문에 관객에게 더 와닿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함께 관람한 김민정씨(20)도 <카지노>를 계속 관람하게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배우와의 교감을 통해 오히려 저 자신을 더 많이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보러 와도 매일 새로운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카지노>의 매력 아닐까요.”  

  경험해 보아야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카지노>가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그렇다. 극장에 방문해 낯선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느새 극의 메시지를 얻는 것을 넘어 극을 이끌어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