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 시도편:2020~2050년」에 따르면 비친족 가구의 수는 2020년 약 41만 1000가구에서 2050년에는 약 70만 3000가구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통계가 보여주는 현실과 달리 「건강가정기본법」은 아직 전통적인 가족의 정의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이는 곧 법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소외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변화하는 사회상에 맞춰 법과 제도가 개선돼야 할 방향을 알아봤다. 


가정의 다양성을 담지 못한 「건강가정기본법」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가족의 조건을 못 박은 해당 법안이 마땅히 보호돼야 할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조은희 교수(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헌법에서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을 기초로 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며 “국가가 전통적 가족이라는 공동체만을 강조할수록 개인의 존엄이 희생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가족에 대한 정의는 제도권 밖의 가족들을 차별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김인숙 교수(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는 “자녀를 셋 이상 두고 있는 가정이나 신혼부부에게 주거를 제공해 주는 것과 같이 정부는 특정한 가족 형태만을 지원한다”며 “정부는 사회통합을 위해 구성원들이 특정 형태의 가족을 형성하게끔 유도하지만 이는 제도 바깥의 가족들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가족 단위를 정의한 조항을 삭제하라는 비판은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된 시점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성미애 교수(한국방송통신대 생활과학부)는 “「민법」에서도 가족에 대한 정의가 삭제됐다”며 “사회상을 고려해 「건강가정기본법」에서 정의하는 가족 조항도 삭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실제 여성가족부는 2021년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 가족에 대한 정의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자 여성가족부는 법적 가족 규정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하며 지난 18년간 이어진 논의를 무력화했다. 김인숙 교수는 “근 20년째 「건강가정기본법」이 개정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가족을 사회통합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국가주의적 정치관 때문”이라며 “해당 법안의 개정 과정에서 정치적인 이유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류 반영한 가족 제도로 모두를 포용해야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가족은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지만 한국인들이 누군가와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고자 하는 마음조차 잃은 것은 아니다. 2020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약 69.7%는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주거를 공유하는 관계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새로운 가족 개념을 포괄할 수 있는 법안도 논의되고 있다. 지난 4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혈연 및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활을 공유하면 가족으로 인정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생활동반자법」을 최초 발의했다. 『외롭지 않을 권리』를 저술한 황두영 작가는 “방대한 임무에 매이는 결혼이라는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현대사회의 새로운 변화”라며 “서로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 계약 관계이면서도 같이 살면서 필요한 가족의 권리와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생활동반자법」이 통과될 경우 동반자는 의료 검사에서 진행되는 보호자 동의에 참여하거나 동반자의 장례를 치르는 등 가족의 의무와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이렇듯 가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반영된 시민연대 형식의 제도는 이미 동서양을 막론해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조은희 교수는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이나 일본의 파트너십 제도가 현재 국내에서 발의된 「생활동반자법」과 유사한 형태”라며 “이미 세계 각국은 다양한 가족을 제도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 국가의 평균 혼외자 출생률은 약 40%에 달한다”며 “이는 국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생활동반자법」 도입은 장기적으로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황두영 작가는 “사람들이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포기하는 이유는 결혼 외의 방식으로는 자신과 살고 싶어 하는 사람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며 “함께 사는 즐거움을 회복해야 오히려 출생과 혼인도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이상 국가는 변화하는 가족의 형태를 외면해선 안 된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들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