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가치를 소비하는 청년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요. ‘다회용 컵 사용하기’는 환경 보호에 동참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죠. 그러나 다회용 컵도 일정 횟수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경우 친환경적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환경 보호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환경 보호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례를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번 주 문화부는 친환경의 이름 아래 가려진 환경 가치소비의 이면을 살펴봤습니다. 환경 가치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요즘 우리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시죠. 진수민 기자 susky@cauon.net

 

사진 김주연 기자
사진 김주연 기자

 

“소비자의 질문 하나가 기업의 마케팅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린워싱에 대한 소비자의 비판과 제안이 기업의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김기현 교수(고려대 경영대학)

 

백화점과 마트 매대에 올라오는 추석 선물 세트에 가치소비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례로 이마트는 추석을 맞아 저탄소 과일 세트, 식물성 통조림 세트 등 가치소비 선물 세트를 선보였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더 이상 브랜드나 광고만 보고서 제품을 선택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존재한다. 제품이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지를 고려하는 가치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요즘, 기업도 소비자가 원하는 ‘가치’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물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단순히 상품성뿐만 아니라 환경을 고려해 만들었다는 제품들. 기업은 진심으로 환경을 위하고 있을까.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란 과연 무엇일까. 



  소비자들이 깨어났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현대인이 늘어났다. 기후변화와 생물종 다양성 감소 등 환경적 위기가 연일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 가운데서는 환경을 생각하겠다는 자신의 가치관을 친환경 제품 소비로 드러내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환경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배경으로 소비자의 성격 변화를 꼽았다.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장은 소비자의 역할에 관한 인식 변화를 이유로 들었다. “과거의 소비자는 제품을 수동적으로 구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제품 구매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기업과 사회에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환경 윤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죠.” 김기현 교수(고려대 경영대학)는 이러한 관심이 윤리적 소비자의 출현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이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풍요의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정 수준 이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즐길 수 있게 됐죠. 이후 사람들은 욕구를 채우는 데 집중하기보다 ‘이 물건이 과연 나에게 필요할까?’와 같은 비판적인 생각을 시작했어요. 성숙한 태도로 제품과 서비스를 바라보는 소비자가 늘어나게 된 겁니다.” 


  주체적인 소비자의 등장으로 상품을 내놓는 기업의 고민은 한층 깊어졌다. 박정음 팀장은 다수의 기업이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담론을 고려해 환경 가치에 관한 관심을 키워가고 있다고 전했다. “소비자가 자신의 의견을 중심으로 소비하면서 기업도 ‘어떤 가치를 담아야 소비자들이 구매할까’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됐어요. 사회적으로는 기업의 체계에 변화가 있어야만 지구도 변할 수 있다는 담론이 생겨났죠.” 



  그래서 지구는 달라졌나요 

  소비자의 변화와 사회적 시류 속에서 일부 기업은 기만을 해결책으로 선택했다. 그린워싱. 언뜻 환경을 보호하는 듯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환경 보호와 관련이 없는 행동을 하는 위장 환경주의를 뜻한다. 환경을 위한 실천적 노력 없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고자 기만을 시도하는 것이다. 8월 29일 그린피스 서울사무소가 발표한 ‘그린워싱 실태 시민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SNS 계정을 운영하는 399개 국내 기업 중 165개의 기업이 자사 SNS 계정에 그린워싱 게시물을 올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린워싱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21년 있었던 스타벅스의 ‘리유저블 컵 데이’를 들 수 있다. 스타벅스는 이 행사에서 일회용 컵이 아닌 다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고객에게 전달했다. 친환경 가치를 전하자는 취지에서 준비된 행사였으나 소비자 사이에선 오히려 플라스틱 쓰레기 양산에 기여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스타벅스가 나눠준 컵은 일회용 포장재에 사용되는 일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영구적 사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예숙 교수(경영학부)는 ‘리유저블 컵 데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스타벅스의 다회용 컵은 플라스틱으로 제작됐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회용 컵을 소비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이 컵은 하나의 브랜드 홍보 수단으로 전락했죠.” 박정음 팀장은 다회용 컵이 일회용에 가깝게 쓰인 점이 문제라고 전했다. “친환경을 빌미로 기존에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자원을 낭비했습니다. 다회용 컵은 일정 횟수 이상 사용해야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지만 스타벅스가 나눠준 다회용 컵은 일정 횟수 이상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었죠.” 박정음 팀장의 말대로 다회용 컵이 그 자체로 친환경적인 것은 아니다. 2019년 KBS와 기후변화행동연구소의 공동 실험에 따르면 300mL 용량 텀블러 1개를 제작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일회용 플라스틱 컵보다 약 13배 높았다. 


  박정음 팀장은 이러한 캠페인이 단순한 마케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친환경을 주창하는 기업들을 보면 대개 브랜딩 차원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 지구를 위한 변화를 꾀했다면 기업 내 구조적 변화를 논의했겠죠. 기업이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많은 역할이 있음에도 소비를 독려했다는 점에서 마케팅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그린워싱은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보인다. 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서의 기업성과지표인 ESG에 대한 공시 의무화로 기업이 더욱 친환경적일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25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들의 ESG 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다. ESG의 ‘E’는 환경(Environment)으로 기업이 친환경 분야에서 기업성과를 내야 함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환경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과에 대한 압박을 받을 경우 기업이 그린워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규제 준수에 급급한 기업에게는 ESG 공시 의무화가 그린워싱으로 향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ESG 투자 열풍의 확산은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한 위장 ESG로 이어질 수 있다. 정예숙 교수는 ESG 경영과 그린워싱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기업들은 투자금 유치를 위해 ESG 경영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ESG 경영이 기업 문화로 자리잡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 게 당연해요. 그러나 기업은 투자금 유치를 위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ESG 실천 기업처럼 보이도록 그린워싱을 하기도 해요.” 박정음 팀장은 위장 ESG와 그린워싱 사이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린워싱은 겉은 지구를 위한 것 같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것을 뜻합니다. 위장 ESG 또한 기업이 실제로 지구에 도움이 되도록 여러 구조적 변화는 꾀하지 않으면서 친환경 기업으로 브랜딩을 한다는 점에서 비슷해요.” 



  능동적인 변화 꾀해야 

  진정한 환경 가치소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업·정부·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기현 교수는 기업이 순환 경제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이 환경의 어느 지점까지 고민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기업은 자사 제품에 그저 친환경 포장지를 씌운 상태로 판매하고 환경을 고려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기업은 생산부터 폐기 이후 과정까지 전반에 걸쳐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지 따져보죠. 이렇듯 우리는 기업이 어디까지 고민했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김기현 교수는 기업이 환경을 위해 손해도 감수하고자 하는지를 따져야 한다며 그 예로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를 소개했다. “기업이 환경적 목표를 경제적 목표만큼 중요하게 생각했을 때 고민의 지점들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환경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중 한 가지 이상의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했는지가 중요해요. 파타고니아는 환경피해를 줄이기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 문구를 뉴욕 타임스에 내건 적이 있습니다. 기업이 환경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려고 한 순간 오히려 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더욱 올라갔어요.” 박정음 팀장도 파타고니아의 행보에 관해 환경에 대한 기업 내부의 진지한 고민을 담아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파타고니아는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대신 의류 소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솔직하게 전달했습니다. 의류 수선 사업을 통해 의류 재사용을 활성화하기도 하는 등 소비자가 환경 가치를 생각하도록 유도했죠.” 

블랙 프라이데이 당일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게재한 광고 문구다. 새로운 옷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환경을 위하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진출처 파타고니아 코리아 홈페이지
블랙 프라이데이 당일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게재한 광고 문구다. 새로운 옷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환경을 위하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진출처 파타고니아 코리아 홈페이지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박정음 팀장은 소비자가 진짜 친환경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분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는 검증된 기업의 환경정보를 금융기관에 제공함으로써 금융기관이 친환경 기업에 대한 투자 활동을 확대하도록 환경정보공개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정보공개시스템의 경우 내용과 신뢰도 측면에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죠. 기업이 실제로 환경 가치를 고려하는지 평가하는 항목이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그린워싱은 소비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기 때문에 기업과 정부의 규제만으로는 완전한 해결이 어렵다. 그린워싱을 피해 제대로 된 환경 가치소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은희 교수(인하대 소비자학과)는 기업의 그린워싱 행태를 막기 위해서 소비자가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소비자는 어떤 기업 사례가 그린워싱이라고 판단되면 그 사실을 기업에 알려 그들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안이 이슈화되면 기업을 넘어 정부도 여러 환경 정책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시행하겠죠.” 김기현 교수도 소비자가 구매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 주체로서 민주적인 힘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소비자는 기업의 마케팅에 관해 호불호를 판단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린워싱이 의심되면 기업에 ‘그린워싱 아닌가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됩니다. 기업이 진정성 있는 경영을 하는지 소비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죠. 이때 기업은 기업의 생산 과정 전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기회를 얻게 돼요. 소비자의 비판적인 태도는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던 기업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 그리고 소비자 모두 진정 환경을 위하는 길은 무엇일지 숙고해야 한다. 특히 소비자로서 우리는 자신의 소비 습관이 곧 자신의 목소리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며 내실 있는 환경 가치소비를 실천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소비자를 기만하는 기업과 제도에 계속해서 반문을 던진다면, 우리 지구는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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