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that is who I am’, ‘멋대로 정하네 나란 애에 대해’, ‘난 지금 내가 좋아 나는 나야’. 모두 K-pop 노래의 가사 중 일부입니다. 노래의 화자는 멋있는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고 있죠. 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사회상을 반영한 듯합니다. 나에 대한 고민이 많아질수록 그 고민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요. 이번 주 문화부는 어떻게 하면 ‘진정한’ 나를 찾으러 갈 수 있을지 고민해 봤습니다. 나를 찾으러 가는 요즘 우리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시죠. 진수민 기자 susky@cauon.net

일러스트 이든
일러스트 이든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모든 철학의 출발점이고 이 내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죠. 그러나 자신의 욕망과 자아를 실현하는 삶을 추구해야 하지, 남들이 이상화하는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소외를 심화할 수 있습니다.”  
-김석 교수(건국대 철학과)-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한 번쯤 던져봤을 법한 질문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 답을 얻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평생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데 갓 사회에 나온 청년들은 오죽할까. 그럼에도 청년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해답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자아 정체성은 개인 안에 지속적인 동일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류한조 교수(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는 자아 정체성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은 나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나에 대한 호기심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와 연관된다. 김석 교수(건국대 철학과)는 호기심의 근원을 ‘삶을 실현하려는 욕망’에서 찾았다. “사람은 어떻게 살 것인지, 나에게 맞는 일은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어요. 이는 자신의 삶을 실현하려는 욕망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근본적인 욕구가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탐구로 나타나는 거죠.”

  시대의 변화는 나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박선웅 교수(고려대 심리학부)는 개인주의의 영향을 언급했다. “과거에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변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람들은 신분이라는 것이 정해진 채로 태어났죠. 그러나 지금은 개인의 삶과 선택을 가로막는 것이 많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더불어 사회에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면서 개인을 가로막던 걸림돌은 더욱 줄어들었죠. 한국인, 중앙대생, 집안 식구 등 집단의 소속원으로서의 정체성보다 개인이 중요해졌으니까요. 이는 자연스럽게 나라는 존재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져요. 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겁니다.”

  윤홍균 윤홍균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른 권위주의의 붕괴로 나를 정의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권위자의 결정이 중요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러나 의식의 변환으로 자신의 생각이 중요하게 된 것이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등 자아에 관한 가치가 상당히 중요해졌어요.”

  나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에세이 도서가 연일 서점의 베스트셀러인 것을 보면 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상황을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얻었을까. 확실한 것은 청년들이 나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청년 사이에서 MBTI 검사, 퍼스널컬러 테스트, 메타인지 테스트 등 다양한 검사가 주목받고 있다. 대중가요계에선 사랑이 아닌 나를 이야기하는 걸그룹이 인기를 끈다. 모두 나를 이야기하는 사회문화적 현상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행처럼 퍼지는 청년들의 문화가 오히려 나를 찾는 데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MBTI 검사는 나를 알기 위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기적 유행을 넘어 오랜 기간 관심이 지속되면서 MBTI 검사를 하지 않는 사람을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생겨났다. 정동인 동문(AI학과 석사)은 최근 MBTI 검사를 했다고 말했다. “원래 MBTI 검사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MBTI 검사를 하지 않은 것이 친구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 될 정도였어요. 16개로 나눠진 성격 유형에 공감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예린 학생(영어영문학과 3)은 MBTI가 더 이상 유행이 아닌 하나의 장기적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보는 각종 테스트가 SNS에 공유되더라고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는 MBTI가 가장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유행하던 별자리나 혈액형보다 더 전문성이 있어 보이긴 해요.”

  별자리와 혈액형으로 개인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을 앎의 대상으로 둔다는 점에서 별자리, 혈액형과 MBTI는 비슷한 듯하지만 사회적으로 실감하는 효과에는 큰 차이가 있다. 별자리나 혈액형과 달리 MBTI는 단순히 흥미나 재미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기도 한다. 김수정 교수(충남대 언론정보학과)는 많은 사람이 MBTI를 권위적인 지식의 차원이라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예측 불가능한 삶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별자리나 혈액형, 사주 등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의탁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던 별자리나 혈액형의 경우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흥미와 재미 위주의 내용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MBTI는 달라요. MBTI가 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지식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따라서 MBTI의 유행은 단순히 별자리나 혈액형 등 이전의 유행에 비해 사회적 효과가 훨씬 큽니다.” 윤홍균 원장은 스스로 검사를 통해 결과를 확인하는 MBTI의 특성을 강조했다. “별자리나 혈액형, 사주 등은 고정 변수입니다. 선택이 가능한 영역이 아닌 것이죠. 그러나 MBTI는 달라요. 본인이 직접 자신의 MBTI 검사를 진행하거든요. 주체적으로 본인이 표현하는 본인의 모습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세대상이 반영됐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러나 MBTI는 학문적 기반을 잘 갖춘 성격검사 도구라 보기 어렵다. 박선웅 교수는 인간의 심리적 속성이 MBTI에서 전제하는 것처럼 명확히 구분될 수 없으며 인간의 성격적 특성을 양극단으로 나누는 일은 현실을 왜곡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석 교수도 MBTI가 지니는 한계에 공감했다. “MBTI가 나를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MBTI 자체에는 한계가 많다는 점을 기억해야 해요. 지나친 유형화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인간은 굉장히 복잡한 사고를 하는데 MBTI의 유형화가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어요.” 이어 MBTI 검사 방식에서 비롯되는 문제도 지적됐다. “MBTI 검사에 주관적인 소망이 반영될 수 있다는 점은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인식하는 나의 모습은 두 가지가 있어요. 내가 보는 나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남한테 비치는 나의 모습도 중요하거든요. 남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대한 생각이 늘 잠재의식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MBTI 검사에 주관적 소망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거죠.”

  김수정 교수도 MBTI의 활용이 나와 타인 그리고 그 관계를 관리의 대상으로 사물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보다 나를 빨리 파악하는 데에 집중하게 될 수 있어요. 단순화된 유형으로 개인을 파악하다 보니 개인의 사회적 맥락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를 진정한 이해의 대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죠.” 

  SNS는 또 다른 자아?
  MBTI 검사가 앎의 대상으로 나를 생각해 보게 했다면 SNS는 나를 표현하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SNS의 분위기와 사진의 느낌으로 피드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상상하곤 한다. 그 분위기와 느낌이 정체성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매일 약 다섯 시간씩 SNS를 이용하는 조은수 학생(공공인재학부 1)은 친구들과의 소통을 위해 SNS를 이용한다고 전했다. “주변 사람에게 자랑할 일이 생겼을 때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단순히 기록의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죠. SNS 피드를 꾸며 본인의 정체성과 취향을 만들어 가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 친구들을 보면 SNS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예린 학생은 청년 세대의 SNS 이용에 관해 SNS를 하지 않는 친구를 찾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저도 SNS를 자주 이용하는데요. SNS를 이용하는 이유는 자기표현의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아를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으니까요.”

  류성열 교수(대진대 경영학과)는 SNS 사용의 이유를 인정투쟁 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봤다. “인정투쟁 이론은 독일의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가 제시한 이론이에요. 인간은 다른 사람과 인정 관계를 맺을 때 성공적으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기반으로 삼아요. 사회에서 개인의 고유한 자아 정체성을 인정받는 것이 개인이 성공적인 인생을 설계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의미입니다. SNS 콘텐츠 생산 행위는 개인의 인정투쟁 과정에서 아주 효과적인 도구일 수 있어요. SNS를 통해 다양하고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청년들의 감정과 욕구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당성을 얻고 상호인정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타인이 독자라는 점은 SNS의 중요한 특징이다. 김석 교수는 SNS의 이러한 특징이 단순 기록보다 표현의 기능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심리학자 쿨리는 인간의 자아에는 늘 타인의 평가가 반영돼 있다고 말했어요. 자신의 주관적 소망뿐만 아니라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가 자아 정체성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를 어려운 말로 거울자아라고 하는데요. 타인이라는 거울에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 지를 보는 거예요. SNS는 타인에게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는 것이죠.”

  많은 이들이 SNS로 자아를 표출하면서 SNS를 통한 ‘셀프 브랜딩’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류한조 교수는 SNS가 셀프 브랜딩의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자기 역사는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사건을 해석하여 엮은 결과물입니다. 동일한 사건을 겪어도 이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방식이 다를 수 있는 것이죠. 현재의 SNS는 자기 노출의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신을 독자로 설정하고 만들어 낸 기록이 아니라, 타인을 독자로 설정하고 만들어 낸 기록입니다. SNS는 자기 역사를 기억하고 증명하기 위한 기록이기보다 자기 역사를 토대로 자신을 노출하기 위한 셀프 마케팅 매체에 가깝습니다. SNS를 셀프 브랜딩의 용도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좋은 사용법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사람보다는 긍정적인 정보가 누적된 사람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죠. SNS는 의도된 셀프 브랜딩 도구로서의 요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셀프 브랜딩은 진정한 자아 정체성을 발견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류한조 교수는 SNS를 자아의 본질을 발견하는 데 활용하는 것은 좋지 않은 사용법이라고 전했다. “SNS를 자아 정체성의 확립에 활용하는 것은 자아의 형성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동일한 재력, 외모, 학력을 원하는 SNS 세상 속에선 정체성을 알아내기보다 계급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SNS 속의 자아가 솔직한 나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타인의 관심을 욕망하는 인간의 본능은 수천 년간 증명됐습니다.”

  김석 교수는 SNS가 자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의견을 보탰다. “거울 자아가 우리를 비춰주는 자아이긴 하지만 진짜 자아는 아닙니다. 그런데 SNS는 거울자아가 진짜 내 모습인 것처럼 믿게 만들어요. 이때 자신의 본질을 잃는 ‘자기소외’가 나타날 수 있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모든 철학의 출발점이고 이 내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죠. 그러나 자신의 욕망과 자아를 실현하는 삶을 추구해야 하지, 남들이 이상화하는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소외를 심화할 수 있습니다.”

  자아에 대한 호기심에 기반해 ‘나’를 앎과 표현의 대상으로 두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일이다. 다만 나를 찾고자 노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는 자아의 앎과 표현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혹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답이 진정 좋은 답안일지는 다시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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