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마녀가 훔쳐간 건 이들 세 사람의 진짜 진짜 얼굴이 아니라 바로 행복을 찾으려는 용기였답니다.’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조용 씀) 中-



 

드라마에 등장하는 동화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조용 씀)에는 얼굴을 잃어버린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리만 요란하고 속이 텅 빈 깡통 공주, 박스 속에 갇혀 사는 아저씨, 늘 입꼬리만 웃는 가면 소년. 이들은 각각 ‘감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 ‘자신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 ‘자신의 기분과 상관없이 늘 괜찮다며 웃는 사람’을 대변한다. 동화 속 그림자 마녀가 그들의 진짜 얼굴을 빼앗아 버리면서 그들은 얼굴을 감추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됐다. 그러나 온전한 나를 가리는 깡통·박스·가면은 나의 모습을 알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박스 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싸우지 않고 행복해지려면 빼앗긴 얼굴을 되찾아야 해.” 



  가면 속에 ‘나’를 가두는 이유 

  많은 현대인이 진짜 자신의 얼굴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동화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처럼 자신의 얼굴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대인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에는 그림자 마녀와 같이 정체성 찾기를 방해하는 압력이 존재한다. 여러 전문가는 현대인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려운 이유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들었다. 


  윤홍균 윤홍균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은 누구나 진정한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현대인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장단점, 호불호 등을 탐색하고자 하는 마음은 사회적인 본능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 시기에는 대학 입시를 치르느라 정신없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아정체성을 찾는 일을 20대로 미루게 돼요. 더욱이 과거에 비해 둔화된 경제성장률 때문에 사회 초년생들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기가 힘들어요. 항상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하며 늘 해야 할 것이 많고 시간에 쫓기죠.” 박선웅 교수(고려대 심리학부) 또한 자기 자신을 탐색할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를 꼬집었다. “대학생이 취업에 대한 강박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자신을 탐색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스펙을 쌓는 일에 급급한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죠.” 


  그림자 마녀는 생각보다 가까이, 내 안에 있을 수도 있다. 박선웅 교수는 정체성 개념 자체에 대한 무지함도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많지만 그 답을 찾았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어떤 형태로 나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 때문에 막연히 고민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죠. 그 답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대략적인 가이드라인 제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대인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SNS가 그림자 마녀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자신의 모습을 꾸며내기 쉬운 SNS가 자아정체성 확립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김대군 교수(경상국립대 윤리교육과)는 SNS 속 꾸밈 노동이 불완전한 자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 속에서,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만 보여줄 수 있고 숨기고 싶은 자아가 있다면 숨길 수 있습니다. SNS 속 자아는 통합적인 자아가 아닌 파편화된 자아일 뿐이죠. 만약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사람이 사이버 공간에서 특정 정체성만을 드러내려 한다면 이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SNS 속 파편화된 자아가 온전한 ‘나’라고 착각할 수 있어요.” 


  김석 교수(건국대 철학과)는 SNS가 자아정체성을 찾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퇴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SNS의 단점 중 하나는 토론 문화를 활성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적 수용 능력은 자아정체성 확립에 큰 도움이 돼요. 그런데 SNS는 일방적으로 자기주장을 퍼 나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글만 선택해서 보기가 쉽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 

  
‘박스 아저씨는 용기를 내어 쓰고 있던 박스를 벗어던지고 굴속으로 들어가 가면 소년와 깡통 공주를 구해냈답니다.’ 빼앗긴 얼굴을 되찾기 위해 함께 떠났던 가면 소년과 깡통 공주가 그림자 마녀에 붙잡혀 굴 속에 갇혀버렸다. 박스 아저씨는 그들을 구하고 싶었으나 박스를 쓴 채 굴속으로 들어가기엔 구멍의 크기가 턱없이 작아 역부족이었다. 결국 박스 아저씨는 용기를 내 얼굴을 꽁꽁 감싸던 박스를 버리고 자신의 얼굴을 세상에 드러냈다. 우리는 박스 아저씨처럼 나를 꽁꽁 감싸고 있던 박스를 벗어던질 수 있을까. 잃어버린 줄 알았던 얼굴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을까. 
 

사진출처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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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동화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조용 씀) 속 박스 아저씨는 자신을 가두고 있던 박스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의 모습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간다.사진출처 tvn
현대인이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동화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조용 씀) 속 박스 아저씨는 자신을 가두고 있던 박스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의 모습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간다.사진출처 tvn

 

   『자존감 수업』(윤홍균 씀)은 자존감 회복 훈련을 통해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턱대고 나를 사랑하자 되뇐다해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향한 시선과 행동이 자존감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내 안의 나를 이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윤홍균 원장은 ‘나에 대해 기록하기’라고 답한다. “내 안의 감정을 머릿속으로만 정리하면 그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깨닫기 수월해요. 나에 대해 기록하는 습관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이어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현대인은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과 엮이다 보니 내 마음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SNS 속 사람들에게 내 게시물을 평가받기 바쁘죠. 실제로 “본인 생각은 어떠세요?”라고 물었을 때 내 생각 대신 타인의 생각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뒤섞여 버린 경우죠. 자신과 타인의 생각에 경계선을 쌓는 연습을 통해 나를 존중하고, 또 타인을 존중할 수 있어요. 이 또한 기록하는 습관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합니다. ‘내 생각은 무엇이다.’,‘A의 생각은 무엇이다.’라고 기록하다 보면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법을 깨닫게 되죠.” 


  진정한 자아를 이야기한 또 다른 도서 『정체성의 심리학』(박선웅 씀)은 나를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돌이켜 보라고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사형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명사형으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인생의 여러 경험을 하나의 단어가 아닌 이야기로 구성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박선웅 교수는 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직접 경험과 자기 평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생분들에게 ‘대학 시절에는 직접 경험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감각을 키울 수 있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내가 힘들지만 그래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인지, 내가 소질이 있는 일인지 등에 대해 서서히 알아갈 필요가 있어요. 또한 어떤 경험을 마친 후 그 경험에 대해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며 나에 대한 지식을 점차 늘려가야 합니다.” 


  김대군 교수 또한 삶은 곧 이야기임을 강조하며 우리의 매 순간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삶은 곧 이야기입니다. 삶을 얼마나 풍부하게 살았는가는 삶의 길이가 아니고 얼마나 이야기를 남기느냐에 따라 결정되죠. 여러분 인생에서만큼은 여러분이 캠퍼스를 지나가는 단역 1·2·3이 아니라 주인공입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자신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도 모른 채 모든 순간을 잊어버리기 마련이에요. 미래의 내가 되돌아봤을 때 이 순간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바라는 미래 나의 모습을 향해 이야기를 만들어 가십시오.” 


  김석 교수는 무조건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스스로 강요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무조건 열심히 살고자 하는 것은 자존감을 허황되게 부풀리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나를 찾는 일은 어려운 길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내 안에 어떤 면이 있는지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벗어던질 용기가 필요해 

  이야기의 결말에서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 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 속 오롯한 주인공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 박스 아저씨는 결국 가면 소년과 깡통 소녀를 구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굴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서로를 보며 ‘깔깔깔깔’ 웃기 시작한다. 너무 웃은 나머지 깡통 소녀의 몸에 두른 깡통과 가면 소년의 가면은 벗겨지고 만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본 박스 아저씨는 말한다. “아 행복하다.” 


  ‘결국 그림자 마녀가 훔쳐 간 건 이들 세 사람의 진짜 진짜 얼굴이 아니라 바로 행복을 찾으려는 용기였답니다.’ 동화의 마지막 문장이다. 윤홍균 원장은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신의 온전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법을 아는 것은 안전망이 된다고 전했다. “사람이 모이게 되면 마음이 다치는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내 안에 어떠한 상처가 생겼을 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안의 어느 부분이 약해졌는지 깨닫고, 스스로 회복할 줄 아는 것은 엄청난 힘이 돼요. 자신을 자책하고 비난하다가 점차 마음의 병이 들지 않도록 도와주죠.” 


  어느 누구도 진짜 나의 얼굴을 훔쳐 갈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나에게 더 높은 곳을 향하라고 재촉하더라도, SNS 속 사람들이 너무나도 빛나 배가 아프더라도 이들이 진짜 나의 얼굴까지 가져갈 방도는 없다. 진정한 ‘나’는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우리는 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자 매일 노력하면 된다. 거추장스러운 베일을 벗어던질 용기를 갖는다면, 그래서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로 용기 낸다면 우리는 행복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동화의 저자는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깊고 어두운 두더지 굴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는 일상 속 어딘가에서 그저 ‘발견하는 것’임을. 경직과 거짓의 가면을 벗어던져 버리고 당신의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 부디 행복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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