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배'(1822). 제5옥을 지나고 있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배를 타고 지옥의 성벽을 둘러싼 호수를 건너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저승의 신이자 뱃사공 카론이 노를 젓고 있다. 지옥을 건너는 그들의 배에는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이 구원을 갈망하며 매달린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배'(1822). 제5옥을 지나고 있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배를 타고 지옥의 성벽을 둘러싼 호수를 건너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저승의 신이자 뱃사공 카론이 노를 젓고 있다. 지옥을 건너는 그들의 배에는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이 구원을 갈망하며 매달린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은 인생의 방황으로 시작한다. 순례자로 등장하는 단테는 길잡이인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과 연옥, 천국을 지난다. 사후세계를 그린 단테의 『신곡』에 관해 독일의 철학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인간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이라 극찬하기도 했다. 단테가 그린 『신곡』 속 사후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 

  여기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신곡』에서 단테는 혼돈과 고통으로 가득 찬 9개의 지옥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이게 된다. 제1옥인 ‘림보’는 예수 탄생 이전 신앙을 가질 수 없었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헤르메스 등의 인물들이 모여있었다. 클레오파트라, 헬레나, 아킬레우스 등의 인물이 있던 제2옥은 쾌락에 빠진 자들이 오는 곳이었다. 탐욕의 죄를 벌하는 제3옥에서는 악취가 나는 빗물과 흙탕물에서 몸부림치는 이들이 있었다. 

  더 깊은 지옥으로 들어가자 인색과 낭비의 죄를 지은 자들이 커다란 금화 주머니를 끊임없이 굴리는 제4옥과 불만과 분노한 자들이 있는 제5옥이 존재했다. 그중 제5옥에는 단테의 추방에 앞장섰던 정치적 원수, ‘필리포 아르젠티’가 있었다. 

  박문정 연구교수(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는 『신곡』 속 제5옥에 등장한 필리포 아르젠티를 통해 드러나는 단테의 심리를 말했다. “지옥에는 필리포 아르젠티를 포함해 부절제, 폭력, 배신 등의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있는데요. 필리포 아르젠티에 대한 문학적 복수에서 나아가 인과응보가 죽음의 세계에서도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은 것이죠.”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의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1850). 제9옥의 모습. 생전 자신을 탑 속 감옥에 가둔 ‘루지에르’ 대주교를 ‘우골리노’ 백작이 물어뜯고 있다.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의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1850). 제9옥의 모습. 생전 자신을 탑 속 감옥에 가둔 ‘루지에르’ 대주교를 ‘우골리노’ 백작이 물어뜯고 있다.

 

  제5옥을 지나 제6옥에서는 이단자들이 뜨거운 관에서 벌을 받았고, 제7옥에서는 폭력죄를 지은 자들이 불비를 맞고 있었다. 그리고 사기와 위조의 죄를 지은 자들이 갈라지는 제8옥을 지난 후, 지옥의 가장 깊은 곳인 제9옥에 도착해 마왕 루시퍼를 마주한다.  

  루시퍼를 지나 지옥에서 나온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연옥’이라는 공간에 도달한다. 연옥은 지옥에 갈 만큼의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천국에 가지 못하는 이들이 죄를 씻고 반성하는 곳이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여정은 천국 앞에서 끝나게 된다. 

  박문정 연구교수는 당시 시대 상황을 들어 베르길리우스가 천국으로 가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다. “단테와 함께 천국과 연옥을 동반했던 베르길리우스는 고대 로마 시대의 시인이에요. 당시에는 가톨릭이 존재하지 않았고 예수가 탄생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베르길리우스는 세례를 받을 수 없었죠. 그래서 베르길리우스는 천국에 갈 수 없던 겁니다.” 

  이후 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은 단테만이 걸어가게 되고, 단테는 그의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안계환 인류문명연구소 대표는 천국의 인도자로 베아트리체와 오디세이아의 관련성을 이야기했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를 도운 여신, 아테나가 등장합니다. 단테는 이러한 조력자의 역할로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인 베아트리체를 천국의 인도자로 배치한 것이죠.”  

  또한 박문정 연구교수는 당시 시대 상황을 들어 베아트리체의 등장에 관해 언급했다. “당시에는 가톨릭의 영향으로 신에 대한 사랑만이 가장 숭고한 것으로 인식됐습니다. 최초의 근대인이기도 한 단테는 이러한 인식에서부터 확장해 천국에 베아트리체를 배치함으로써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도 숭고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했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19세기경).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은 단테의 모습을 묘사했다. 후회와 그리움, 해방감 등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는 듯 보인다.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19세기경).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은 단테의 모습을 묘사했다. 후회와 그리움, 해방감 등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는 듯 보인다.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어지는 신곡의 정신 
  단테의 『신곡』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신곡』의 영향을 받은 작품 중 하나다. 그림 속에는 천상계와 천사, 부활, 지옥 등이 묘사돼 있으며 아케론강을 건너 저승의 신 미노스에게 심판받는 영혼들을 볼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신곡』을 주제로 한 조각상이 만들어졌는데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지옥의 문>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의 문> 바로 위의 가로대에 걸터앉은 인물로 인간의 처절한 최후를 내려다보는 단테를 묘사했다. 또한 <지옥의 문>에는 ‘나 이전에 창조된 건 영원한 것뿐이니, 나 또한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경고문으로 희망도 없고 영원히 저주받아야만 하는 지옥을 표현했다. 

  로댕의 <키스> 또한 『신곡』 속 등장인물을 묘사한 것이다. 변형택 교수(동아대 기초교양대학)는 『신곡』이 역대 예술가에 미친 영향력에 관해 논했다. “로댕의 동상 <키스>는 『신곡』 중 “너무나 애처로워 나는 죽은 듯 넋을 잃고 말았다”고 고백한 비련의 남녀 주인공(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습니다. 그 내력을 알면 이 동상의 의미는 차원이 달라지겠죠. 이처럼 단테가 지은 각 에피소드는 당대부터 현대까지 예술가들에게 있어 영감의 원천은 물론 오마주가 되고 있어요. 중세라는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 오늘날까지 인간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 인문학의 귀감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신곡』을 바탕으로 작곡한 예술가도 있었다. 19세기 <죽음의 무도>, <헝가리 환상곡> 등의 역작을 남긴 헝가리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는 『신곡』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단테 교향곡’이라 불리는 <단테 신곡에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제1악장은 지옥을 제2악장에서는 연옥을 기록했다. 제3악장에는 천국을 둘 예정이었으나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반대로 중지됐다.  

  이가영 교수(성신여대 작곡과)는 리스트가 <단테의 신곡에의 교향곡>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언급했다. “리스트는 당대의 가장 화려한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뇌한 예술가입니다. 이때 『신곡』은 종교와 무관하게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죠. 리스트는 <단테의 신곡에의 교향곡>을 통해 당대 청중에게도 진지한 작곡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단테의 『신곡』을 악보에 구현하고자 했던 ‘프란츠 리스트’. 그는 지옥과 연옥을 표현한 '단테의 신곡에의 교향곡', 일명 ‘단테 교향곡’을 완성했다. 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단테의 『신곡』을 악보에 구현하고자 했던 ‘프란츠 리스트’. 그는 지옥과 연옥을 표현한 '단테의 신곡에의 교향곡', 일명 ‘단테 교향곡’을 완성했다. 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당신의 나의 우리의 신곡 
  현재에 이르러서도 단테의 『신곡』은 이어지고 있다. 스릴러 영화 <세븐>은 『신곡』을 모티브로 한다. 일곱 구역으로 나뉜 『신곡』의 연옥과 동일하게 <세븐>에서는 식탐, 탐욕, 나태, 교만, 욕정, 그리고 시기와 질투라는 인간의 일곱 가지 죄악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됐다.  

  <차이나는 클라스>, <예썰의 전당>,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도 『신곡』을 다뤘다. 더불어 지난 7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리스트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 모든 출판사의 『신곡』 번역본을 읽었다고 밝히면서 6월 18일 이후 한 달간 판매량이 약 2배 증가하기도 했다. 

  『신곡』이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소애 문학평론가는 대중이 『신곡』을 통해 정신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단테처럼 망명 생활을 하도록 버림받거나 억울하게 배신, 사기, 왕따 등을 당하는 일도 많은데요. 『신곡』을 통한 지옥 여행은 이러한 세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정신적 치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신곡』으로부터 성찰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박문정 연구교수는 우리의 삶과 『신곡』이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이야기했다. “단테는 마지막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대인입니다. 당시 단테가 했던 자유의지, 사후세계 등에 관한 고민을 우리도 하고 있죠. 민주주의 사회 속 근대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와 단테는 정신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신곡』을 볼 수밖에 없는 거죠.” 

  단테는 『신곡』을 통해 인과응보라는 뜻의 콘트라파소(contrapaso)를 내비치고 있다. 지옥과 연옥, 천국을 그리며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것이며 착하게 살았다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선의 인생을 추구하자고 말하고 싶었던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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