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모순적 이야기로 
위로와 용기를 전하다

웃긴데 슬프고, 슬픈데 웃긴 이야기를 들어봤는가. 위기 상황을 타파하려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 그 안에 담긴 엉뚱함과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자연스레 그려질 것이다. 주인공의 수난 시대라 불러도 될 장면을 보며 우리는 피식 웃음을 짓는다. 그러다 잠시 그 속에 담긴 슬픔, 우울함으로 마음 한구석이 저려오기도 한다.

  블랙이 코미디를 만났을 때 
  블랙코미디란 역설적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의 하위 장르다. 우울하거나 무서운 내용을 익살스러운 요소와 결합하는 이야기 구조를 통해 사회의 잔혹함과 통렬함을 풍자한다.

  김기홍 교수(한성대 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는 대중문화 장르로서 블랙코미디의 탄생이 산업화와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일정 시간 노동이 강제되는 산업화 이후 노동과 여가가 선명히 구분되기 시작했어요. 웃음거리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찾고 공유하던 과거 공동체 문화와 달리, 대중을 위해 침묵 속 집중 노동 체제에서 ‘빠른 웃음거리’를 만들기 시작했죠. 이러한 재미 추구 행위는 판에 박힌 일상과 규격화에 저항하는 방식이 됐습니다.”

  이태훈 교수(경희대 디지털콘텐츠학과)는 블랙코미디의 발전 배경에 관해 이야기했다. “20세기 초 대도시로 발전한 뉴욕은 도시인이 지켜야 할 매너, 규율 등과 함께 냉소적 표현이 발달했어요. 당시 대도시의 사회적 역할은 타인의 잘못과 모순을 예의 바르게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봤는데요. 이러한 냉소적 태도에 기반해 인간성 상실의 표현 방법으로는 연극과 뮤지컬 등이 있었고 블랙코미디가 비약적인 발전을 거뒀죠.”

  아이러니한 시대 속 코미디란 
  블랙코미디는 코미디와는 다르게 유독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는 경우가 많다. 『블랙코미디 장르 영화에 있어 아이러니 표현기법에 대한 연구』(이태훈, 2014)에 따르면 블랙코미디는 현대인의 비참함·부조리함을 통해 인간사회의 불신과 절망을 드러낸다. 또한 윤리나 규범, 두려움과 신성의 대상마저 희화화하기도 한다.

  유지나 교수(동국대 영화영상학과)는 금기시된 것을 웃음으로 희화시키는 것이 블랙코미디의 본질이라는 입장이다. “블랙코미디는 코미디 중에서도 주로 금기시된 주제를 다루는데요. 금기된 요소를 그대로 고발하지 않고 코믹하게 비유하죠. 종교, 정치 등 절대 권력을 풍자할 때 심각한 비판을 하기보다는 희화하는 방식인 겁니다.”

  블랙코미디 장르가 가지는 서사적 특징 중 하나는 역설이다. 모순적이고 불합리하지만 그 속에 진실과 타당성을 담고 있는 역설은 블랙코미디라는 용어 자체에서 드러나는 표현이다. 또한 블랙코미디 속 사건은 결론 나는 일이 거의 없고 사회에서 나타나는 양면적인 가치를 모두 강조하는 특성이 있다. 현대사회 속 인간과 사회, 기성세대와 젊은이 등 다의적인 사회 가치관 및 현상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역설이 필수적이다.

  이태훈 교수는 블랙코미디를 가장 잘 드러내는 양식으로 아이러니를 꼽았다. “우연을 가장한 아이러니가 블랙코미디에서 가장 큰 효과를 띤다고 생각해요. 아이러니는 뚜렷한 대비나 반전, 혹은 역설적인 의미를 강조해 희극적인 효과를 성취하는 기법을 말하는데요. 같은 이야기라도 아이러니한 설정을 통해 관객에게 훨씬 더 극적으로 정서를 전달할 수 있죠.”

  아이러니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상황의 아이러니는 갑작스런 상황의 반전으로 극중 인물의 행위 결과가 의도와 정반대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인물의 아이러니는 극중 인물이 심리적으로 강한 양면성을 띠거나 예상치 못한 능력을 소유함으로써 초반부의 캐릭터 이미지와 대비되도록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도구의 아이러니는 일정한 목적을 가진 소도구가 예상과 완전히 대립되는 역할에 사용돼 생기는 아이러니를 가리킨다.

  비판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도 블랙코미디의 특징이다. 이태훈 교수는 블랙코미디의 간접적인 메시지 전달이 가지는 힘을 강조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상징적인 서브 텍스트로 표현한다면 관객은 오락성 스토리와 비주얼을 즐기는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남은 메시지가 더 강한 여운으로 남을 거예요. 냉소적인 유머와 아이러니의 희극으로 묘사해도 문제의 심각성을 가볍게 볼 관객은 없기에 블랙코미디의 힘은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찰리 채플린이 그린 세계 
  ‘블랙코미디’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 대표적인 블랙코미디 작품으로 영화 <모던 타임즈>가 있다. 송낙원 교수(건국대 영상영화학과)는 <모던 타임즈>가 블랙코미디의 기원이라는 입장이다. “보통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블랙코미디의 기원으로 꼽는데요. 미국의 대공황 시절 컨베이어 벨트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모습을 자조적인 코미디로 묘사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와 산업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봤죠.”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찰리 채플린은 공장에서 나사 조이는 일을 반복하는 공장 노동자로 등장한다. 몰려드는 양 떼의 모습이 출근하는 노동자로 전환되는 장면, 공장 노동자의 건강보다 빠른 식사를 우선시하며 출시한 기계, 나사같이 동그란 것만 보면 조이려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 등은 당시 기계시대의 인간소외를 드러낸다. 찰리 채플린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지금까지도 <모던 타임즈>가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기훈 교수는 <모던 타임즈>가 가지는 차별화된 매체와 연기에 관해 말했다. “과거 산업자본주의의 폭력과 모순, 비인간적 속성은 마르크스주의로 상징되는 정치경제와 사회철학의 비판 대상이었어요. 이를 부조리 연극 등 다양한 방식의 예술로 승화하려 했죠. 이때 <모던 타임즈>처럼 영화 매체와 슬랩스틱 수법의 연기를 통해 처절하게 웃기는 방식으로 시대를 읽는 시각을 제시한 작품은 드물었습니다.”

  <모던 타임즈> 속 주인공인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연기도 주목할 부분이다. 김기훈 교수는 찰리 채플린이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매력에 관해 언급했다. “<모던 타임즈> 속 찰리 채플린은 넘어지고, 실수하고, 맞고, 또 자빠집니다. 관객은 이런 바보 캐릭터에 안타까움과 측은지심을 느끼며 강력한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데요. 주인공을 부지불식간 이런 지경에 빠뜨린 산업사회 환경을 모순으로 느끼고, 바보 연기가 가져온 역설적 카타르시스의 불편함은 분노로 승화되는 거죠.”

  여전히 눈물 흘리며 웃는 이들 
  <모던 타임즈>를 시작으로 현재 다양한 시사점을 지닌 블랙코미디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 <돈 룩 업>은 거대한 크기의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발견한 주인공들이 사람들에게 알리려 고군분투하지만 아무도 해당 뉴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돈 룩 업>은 작품을 통해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업과 중요한 사실에 눈을 감고 자극적인 보도 및 밈에 중독된 대중을 서슴없이 비판한다.

영화 '돈 룩 업'은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극적 보도와 밈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작 중요한 뉴스에는 눈을 감는 미디어와 대중의 태도를 꼬집는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돈 룩 업'은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자극적 보도와 밈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작 중요한 뉴스에는 눈을 감는 미디어와 대중의 태도를 꼬집는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한국에도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는 블랙코미디 작품이 존재한다. 송낙원 교수는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꼽았다. “가장 최근의 블랙코미디는 넷플릿스 시리즈였던 <오징어 게임>입니다. 주인공이나 그 캐릭터가 안고 있는 딜레마에 사회 구조적 페이소스가 가득했기 때문이죠.” <오징어 게임> 속 인물들은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생존 게임을 겪으며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그린다. 게임을 통해 자본주의, 극한의 경쟁 사회에 대한 은유와 풍자를 담고 있다.

한국에서도 블랙코미디 작품이 등장하고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생존 게임이라는 내용을 통해 한국의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 대한 풍자를 그려냈다. 사진출처 Netflix Korea 네이버TV
한국에서도 블랙코미디 작품이 등장하고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생존 게임이라는 내용을 통해 한국의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 대한 풍자를 그려냈다. 사진출처 Netflix Korea 네이버TV

  서사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도 블랙코미디를 접할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는 정치·사회·문화적 사건이나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SNL 코리아 시즌2> 콜드 오프닝에서는 배우들이 특정 인물을 연기하고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을 통해 정치 풍자 요소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를 접한 시청자 대부분은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재미를 느끼면서도 프로그램 특유의 풍자에 공감했다.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는 다양한 코너를 통해 단순한 개그를 넘어 정치·사회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희화한다. 그들만의 풍자 방식과 배우들의 연기가 시청자의 재미와 공감을 더욱 끌어낸다.사진출처 쿠팡플레이 Coupang Play 네이버TV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는 다양한 코너를 통해 단순한 개그를 넘어 정치·사회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희화한다. 그들만의 풍자 방식과 배우들의 연기가 시청자의 재미와 공감을 더욱 끌어낸다.사진출처 쿠팡플레이 Coupang Play 네이버TV

  웃음과 슬픔이 혼재된 이 콘텐츠가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무엇일까. 송낙원 교수는 블랙코미디가 힘든 현실을 바라보게 해주는 수단이 돼준다고 이야기했다. “현실이 어렵고 불안하면 분위기를 밝게 띄우는 코미디나 뮤지컬 장르가 유행했어요. 살기 괜찮은 사회라면 삶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는 느와르나 갱스터 장르가 유행했죠. 블랙코미디의 유행은 현실 도피 경향 속 관객이 현실을 뒤틀어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닐까요?”

  이태훈 교수는 블랙코미디가 대중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전달한다고 말했다. “블랙코미디는 유한한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을 통해 위로, 각성 그리고 관점의 전환 등을 보여주죠. 물질 만능주의 등 외향적인 성공 목적은 실패할 수 있지만 삶의 형이상학적 가치를 더 부각시킵니다. 이는 진정한 삶의 가치, 인간성 회복을 피력해 더 나은 가치를 알게 해주는 거예요.”

  코미디는 웃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때론 웃음으로 전할 수밖에 없기에 코미디가 존재하기도 한다. 눈물도 꾹 눌러 참아야 하는 현실 속, 오늘도 그들은 웃음으로 슬픔을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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