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또는 들어서 알고는 있는데 자세히 알지 못했던 예술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그럴 땐 키워드로 보는 예술 사전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요. 이번 주 예술 사전을 넘기는 손은 키워드 ‘희극’ 앞에 멈췄습니다. 웃음으로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희극, 일상적인 내용부터 정치·사회에 만연한 부조리함을 풍자하는 코미디, 그리고 마냥 웃기에는 씁쓸함이 묻어나는 블랙코미디까지. 희극과 블랙코미디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럼 우리 함께 희극을 한번 파헤쳐 봅시다!
권지현 기자 rnjswlgus1103@cauon.net


“웃을 일이 없는 세상이잖아요, 더 많이, 더 많은 곳에서 웃을 수 있게 코미디가 다양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임혁필 코미디언


무료하고 바쁜 일상에 치이는 우리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듯 웃음을 좇는다. 박장대소는 아니더라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해주는 것, 저녁 시간 가족과 도란도란 웃음을 나누게 해주는 것, 출퇴근 시간 동안 친구가 돼주는 것. 이처럼 메마른 일상 속 가뭄의 단비와 같은 그것은 바로 코미디다.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이다. 위장 수사를 위해 개업한 치킨집 장사가 잘되면서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의 모습은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보는 내내 웃게 만든다.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이다. 위장 수사를 위해 개업한 치킨집 장사가 잘되면서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의 모습은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이 보는 내내 웃게 만든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코미디, 어느 별에서 왔니? 
  모든 존재에 시작이 있듯 코미디에도 시작이 있다. 코미디는 잔치라는 뜻의 ‘komos’와 노래라는 뜻의 ‘oide’가 합쳐진 그리스어 ‘komodia’를 어원으로 한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 풍자를 담았던 코미디는 아테네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장지원 교수(충남대 교육학과)는 희극이 당대 시민들에게 미친 영향에 관해 설명했다. “희극은 사회적 강자의 위선을 거침없이 묘사해요. 이를 통해 시민들은 감정의 응어리를 해소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됐죠.” 
 
  16~17세기 사이 이탈리아에서는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라는 가벼운 희극이 발달했다. 희극 배우들은 준비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즉흥적인 기지를 발휘해 노래를 부르고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한국에도 최소 고려시대부터 대중에게 유희를 주는 광대가 존재했다. 『고려사』에서는 가면을 쓰고 놀이를 하는 사람을 가리켜 광대라고 언급했으며 18세기 후반에 나온 <관우희>에는 광대들의 놀이가 구체적으로 묘사돼있다. 광대에는 소리를 하는 소릿광대, 기악을 하는 재비 그리고 줄타기를 하는 줄쟁이 등이 있었다. 이들은 궁중음악부터 민간의 풍류·풍물까지 관아와 민간에 걸쳐 중요한 음악을 담당하고 주도했다. 

숏박스 유튜브 채널의 '장기연애' 시리즈다. 오래 만난 연인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익숙함이 시청자에게 공감의 재미를 준다. 사진출처 숏박스 유튜브
숏박스 유튜브 채널의 '장기연애' 시리즈다. 오래 만난 연인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익숙함이 시청자에게 공감의 재미를 준다. 사진출처 숏박스 유튜브

 


  전해 듣던 코미디, 직접 보는 코미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만담집, 오프라인 공개 코미디쇼까지. 코미디는 다양한 분야로 퍼져갔다. 미디어 매체가 등장한 후 코미디는 예능, 영화, 드라마 그리고 유튜브까지 각양각색의 플랫폼을 통해 웃음을 전파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코미디 드라마로는 미국의 <프렌즈>와 한국의 <거침없이 하이킥>이 있다. <프렌즈>는 독특한 여섯 친구의 일상 속 재미를 그렸고, <거침없이 하이킥>은 3대가 모여 사는 가족의 일상을 코믹하게 표현했다. 두 작품 모두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일상 속 재미를 그려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민영 교수(한국외대 독일어과)는 일상을 그린 코미디 작품이 더 큰 웃음을 주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본래 희극은 인간이 가진 결핍, 불합리 등을 비판하고 재인식하도록 해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예술이에요. 풍자나 패러디 같은 방식으로 우리 삶에서 개선할 부분을 이야기하며 공감을 형성하죠. 그 공감을 바탕으로 관객은 일상을 돌아보게 되고 웃음 지을 수 있는 겁니다. 또 일상 속 정상이라 간주한 기준에서 벗어나면 웃음이 유발되는데요. 코미디는 이러한 비정상적 일탈로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합니다.” 

  브라운관의 드라마에서 나아가 영화관의 스크린에서도 코미디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 <극한직업>은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집 장사로 위장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코믹한 상황을 그린다. 영화 <화이트 칙스>는 FBI 요원인 마커스와 케빈 콤비가 여장을 하고 수사를 진행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된다. <극한직업>에서는 위장 수사로 개업한 가게의 장사가 이상하리만큼 잘되는 상황이, <화이트 칙스>에서는 FBI 요원들이 여장을 한 채로 고위층 사교 활동을 하는 와중 통쾌하면서도 재치 있게 사건을 풀어가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내 손안에 움직이는 코미디 
  최근에는 TV뿐만 아니라 유튜브, OTT 등의 플랫폼에서도 웃음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무한도전>, <런닝맨>, <신서유기> 등 내로라하는 코미디 프로그램도 여러 플랫폼에서 시청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로 짜깁기한 영상이나 알고리즘을 통해 여러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시청자에게 연속적인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 오늘날 재방송으로도 볼 수 없는 오래된 옛날 예능은 OTT를 통해 시청자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임혁필 코미디언은 코미디가 온라인 플랫폼에서 성행하는 이유를 밝혔다. “미디어 매체 발달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유튜브 등에서의 콘텐츠 공급도 빨라졌어요. 또한 TV 프로그램은 심의나 규정이 있지만 온라인 플랫폼은 비교적 덜하죠. 공중파에서 할 수 없는 자극적인 개그를 온라인에서는 펼칠 수 있는 겁니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코미디언들은 자신만의 유머를 선보이고 있다. 피식대학의 <한사랑 산악회>, 숏박스의 <장기연애> 등 주로 일상의 공감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 낸다. <한사랑 산악회>는 등산을 하는 아버지 세대의 우정을 보여주고, <장기연애>는 서로를 잘 아는 오래된 커플의 일상을 보여주며 공감을 만들어 낸다. 대중은 익숙한 상황을 접하며 크게 공감하고 힐링과 위안을 얻기도 한다.  

  장애물을 지나 목적지를 향해 
  현재 미디어 매체에서는 관찰형 예능이 예능계를 점유하고 있다. 관찰형 예능에서는 연예인들이 밥 먹는 모습 등 단순하고 당연한 생활을 보여주지만, 패널들은 해당 장면을 보며 웃는다. 코미디는 사회적 논란을 피하고자 대중의 눈치를 보고 심의 규정에 걸리지 않고자 방송국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화면 속 슬랩스틱과 재치 있는 말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던 예전의 코미디는 어디로 간 것일까. 

  정민영 교수는 코미디라는 장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일반 대중이 생각하기에 한국의 코미디는 단순한 오락 기능에 많이 치우쳐 있어서 저평가되거나 하위문화로 무시되곤 합니다. 희극은 비판적 웃음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했고 잘못을 인지 및 개선하게 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거울’에 해당하죠. 코미디가 오락의 기능과 함께 생산적인 사회적 기능을 이루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코미디는 웃음을 주기도 하고, 풍자로 사회를 시사하기도 한다. 또한 어느 장르에도 속박되지 않고 마치 조미료처럼 더욱 풍부한 감동과 웃음을 전달하게 해준다. 코미디를 더욱 쉽게 즐길 수 있게 된 오늘날. 힘들고 지치는 날에 코미디라는 이름의 친구와 담소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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