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리’는 여럿이 다 뒤섞여 또렷하게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합니다. 동아리라는 울타리 아래 모인 각양각색 청춘이 이리저리 뒤섞인 모양을 두고 아리아리하다 할 수 있겠네요. ‘아리아리’ 흘러가는 동아리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그 속에 ‘동동’ 떠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포착했습니다. 이번 주는 유도 동아리 ‘중앙유도회’(서울캠 중앙동아리)를 만납니다. 상대와의 예의를 중시하며 부드러움 속 강함을 추구하는 유도.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중앙유도회의 훈련 속으로 가볼까요? 배효열 기자 hyo10@cauon.net  

부드럽게 상대를 제압하다 
빳빳했던 도복이 땀에 젖어가면 
 
흰 띠부터 검은 띠까지 
진심으로 유도에 빠진 부원들

4년마다 돌아오는 하계올림픽. 기자를 설레게 하는 스포츠가 있습니다. 바로 유도인데요. 열세에 몰린 것 같던 선수가 벼락같은 기술을 선보이며 경기를 끝내버리는 장면은 통쾌함을 자아내죠. 말 그대로 ‘한판’으로 승부를 가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점이 유도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서울캠에도 한판 승리를 따내기 위해 매일같이 모여서 서로의 기술을 갈고 닦고 겨루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대끼며 함께 강해지고 있는 ‘중앙유도회’를 만났습니다. 

  ‘예’로 시작한 유도회의 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5일, 기자는 오후 6시부터 시작하는 중앙유도회의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107관(학생회관) 302호로 향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부원들은 도복으로 갈아입고 있었죠. 기자는 고등학교에 재학할 당시 체육 시간에 유도를 배운 적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도복을 보니 겁이 나기 시작했죠. 맨몸으로 하는 운동은 소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하얀 도복을 입고 나니 유도를 할 준비가 된 것 같아 떨려왔습니다. 

  도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부원들 틈에 섞여 기자도 305관(교수연구동 및 체육관) 지하 1층에 있는 스포츠수련실로 향했습니다. 맨발로 매트를 밟는 것만으로도 무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스포츠수련실로 간 부원들은 가장 먼저 10바퀴를 달렸습니다. 한우일 훈련부장(간호학과 2)은 다치지 않기 위해 달리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죠.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몸에 열을 내야 해요. 그래서 달리기를 진행한 거죠.” 

  스포츠수련실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빳빳했던 도복은 한바탕 뛰고 나니 금세 땀에 젖어 축축해져 있었습니다. 도복이 마를 새도 없이 몸풀기에 들어갔죠. 본격적인 훈련 전에 진행된 몸풀기는 일반적인 준비 운동과 사뭇 달랐습니다. 목을 땅에 대고 배를 들어서 버티는 ‘브릿지’ 운동이 기자에게는 가장 힘들었는데요. 평소 복근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배가 당겨왔습니다. 한우일 훈련부장은 유도에서 브릿지 자세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몸을 푼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도할 때 등을 땅에 대고 목을 사용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그래서 다양한 브릿지 운동으로 몸을 풀어줘야 하죠.” 

  ‘예시예종’. 유도는 예의로 시작해서 예의로 끝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부원들끼리 대련을 시작할 때도 ‘예의 하시고’라는 구령에 맞춰 서로 인사를 합니다. 하지만 기자에게 유도의 시작은 ‘예?’에 가까웠는데요. 브릿지 운동을 할 때나, 생전 처음 해보는 뒤구르기를 할 때나 기자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었죠. 하지만 스스로 던졌던 물음표는 점점 유도를 배워나가며 느낌표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정해균 기자가 '곁누르기'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더 단단한 기술을 위해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정해균 기자가 '곁누르기' 기술을 연습하고 있다. 더 단단한 기술을 위해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
메쳐지는 것도 기술이다. 크고 시원한 동작으로 메쳐져야 다치지 않을 수 있다.
메쳐지는 것도 기술이다. 크고 시원한 동작으로 메쳐져야 다치지 않을 수 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유능제강’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유능제강은 예시예종, ‘자타공영’과 더불어 유도계에서 중요시하는 정신 중 하나라고도 불리는데요. 사실 기자는 말만 듣고서는 부드러운 것이 어떻게 강한 것을 제압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몸풀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기술을 배웠습니다. 가장 먼저 ‘낙법’을 배웠죠. 한우일 훈련부장은 낙법 훈련에 앞서 낙법을 배우는 이유와 종류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유도는 입식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상대를 메치고 나면 그라운드에서 ‘굳히기’에까지 들어갈 수 있죠. 만약 ‘메치기’를 당했을 때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낙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자는 땅에 몸이 부딪히는 게 아프진 않을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전방, 후방, 측방 낙법을 몇 번 해보니 겁이 점점 사라졌죠. 큰 소리가 나는 것 치고는 몸에 충격이 잘 느껴지지 않는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충격을 더 잘 분산시키기 위해 겁 없이 몸 전체로 바닥에 떨어지려고 애썼죠. 직접 부딪히며 낙법을 익혀보니 어려워만 보였던 유도가 점점 재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는데요. 그러던 찰나 한우일 훈련부장은 낙법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낙법을 배우지 않으면 다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단계로 나아갈 수 없어요. 본인을 위해서라도 이 재미없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하죠. 낙법을 익히고 기술까지 하나 배우면 ‘익히기’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초보자들이 낙법을 배우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유단자들이 ‘익히기’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익히기는 자신이 연마하고 싶은 기술을 상대방에게 사용하며 더 정교하게 가다듬는 훈련처럼 보였죠. 익히기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남요성 회장(전자전기공학부 2)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주 기술, 내가 원하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에요. 유도 특성상 혼자서는 기술을 연마할 수는 없으니까 다른 사람과 함께 기술을 연습하는 거죠.” 기자도 빨리 기술을 연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법 훈련이 끝나고 ‘곁누르기’와 ‘밭다리후리기’라는 기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곁누르기와 밭다리후리기를 배우며 기자는 왜 부드러움의 미덕을 유도에서 강조하는지 알 것 같았죠. 곁누르기를 배울 때는 곁누르기 자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아래에 깔린 사람은 유능제강을 머리에 새겨야 합니다.  

  상대가 나를 누르는 방향, 그 힘을 잘 파악하고 그 힘의 방향 그대로 상대를 넘겨버린다면 곁누르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상대의 힘을 부드럽게 역이용하는 것이죠. 그래서 곁누르기를 하는 사람은 무턱대고 힘을 세게 주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상대가 나를 어느 방향으로 넘기려고 하는지를 느끼고 그 반대 방향으로 상대를 눌러줘야 합니다. 

  밭다리후리기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정확하게 기술을 구사한다면 상대를 넘어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상대의 무게 중심을 부드럽게 뒤로 이동시킨 다음 허벅지로 그 무게 중심을 살짝만 건드려주면 아주 쉽게 메칠 수 있었습니다. 함께 땀 흘리는 부원들도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결정적인 순간 유도의 매력에 흠뻑 빠졌겠거니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첫째 날 훈련을 진행해준 한우일 훈련부장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유도를 시작했던 중학생 때는 체급이 경량급이었어요. 다른 고등학생들이나 성인들과 비교하면 힘이 약했던 게 사실이죠. 하지만 유도를 열심히 연습하면서 상대의 힘을 이용해 상대를 넘길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유단자들은 대련을 통해 각자가 연습한 기술을 선보였다.
유단자들은 대련을 통해 각자가 연습한 기술을 선보였다.
한우일 훈련부장이 기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완벽한 기술 습득을 위해 부원들은 자세하게 보고 익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우일 훈련부장이 기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완벽한 기술 습득을 위해 부원들은 자세하게 보고 익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익히기는 자타공영이 아닐까 
  다음 날인 6일에도 기자는 중앙유도회의 훈련에 함께했습니다. 아침부터 기자는 온몸에 근육통이 느껴졌습니다. 막상 도복을 입고 몸을 푸니 고작 하루 유도를 배웠음에도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죠. 몸풀기와 구르기를 할 때 여전히 어려운 구석이 있었지만 자신감 있게 잘 해냈던 것 같습니다. 

  둘째 날은 기자도 익히기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익히기는 서서 메치기 기술을 수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히기에서 사용하는 곁누르기는 연습해볼 수 없었는데요. 대신 전날 배웠던 밭다리후리기를 연습했습니다. 익히기는 2열로 쭉 서서 마주 보는 사람과 함께 진행됩니다. 기자가 기술을 10번 사용해보고, 그다음에는 마주 본 사람이 기자에게 기술을 10번 사용했죠. 기술 연습을 마치면 오른쪽으로 한 번씩 이동하면서 또 다른 사람과 다시 10번씩 기술을 연습하면 됩니다. 이 과정을 15번 반복하면 익히기가 끝나니 총 150번의 기술을 연습한 거죠. 다른 메치기 기술을 모르는 기자는 밭다리후리기만을 150번 진행한 셈인데요. 횟수를 거듭하며 기자의 밭다리후리기는 점점 더 정교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타공영은 유도를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단련된 자신을 통해 타인과 더불어 잘살아 보자는 말입니다. 기자는 익히기를 하면서 어쩌면 이 훈련 과정이 서로 돕는다는 것을 작게나마 실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기자는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10번 동안 기술을 연마할 수 있었고, 상대도 기자의 도움을 통해 기술을 연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발전을 위해 서로가 도와주는 연습 형태입니다. 자타공영이 뜻하는 바와 얼추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았죠. 

정해균 기자가 '밭다리후리기'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다.
정해균 기자가 '밭다리후리기'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다.
훈련이 마무리될 무렵, 모든 부원은 어깨동무를 하고 결의를 다졌다. 중앙유도회는 매일 밤 서로와 더욱더 가까워진다.
훈련이 마무리될 무렵, 모든 부원은 어깨동무를 하고 결의를 다졌다. 중앙유도회는 매일 밤 서로와 더욱더 가까워진다.

 

  우리는 이렇게 유도에 미친다 
  훈련 도중 한쪽에서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고 있는 부원이 기자 눈에 들어왔습니다. 혹시 다친 건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다가가 왜 테이프를 감고 있는지 물었는데요. 백승빈 학생(사진전공 4)은 다친 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손톱이 들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손가락에 테이프를 감는 거예요. 유도 자체가 큰 부상은 없는데 이런 잔 부상이 조금 있죠.” 

  기자와 백승빈 학생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다른 부원들은 서로 대련을 하고 있었는데요. 백승빈 학생은 대련하는 부원들을 가리키며 기자에게 기술들을 소개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 여자분이 지금 하신 게 ‘업어치기’에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기술이죠. 그리고 밭다리후리기라는 기술도 있어요. 단순하지만 상대가 당했을 때 굉장히 아픈 기술입니다.”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기자에게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이어 백승빈 학생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기술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백승빈 학생은 유도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나는 답변을 전했죠. “제가 요즘 연구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빗당겨치기’죠. 어려운 기술이라 이 기술만 연습하다 보니 다른 기술은 잘 못 해요.(웃음) 저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기술에 꽂혀 연구하며 유도를 즐기는 사람도 있어요. 실전에서 그 기술을 성공했을 때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자도 기술 하나에 몰두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연구한 기술을 성공시켰을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중앙유도회의 모든 부원이 그런 마음일 테죠. 이튿날 훈련을 진행했던 류재욱 전 훈련부장(기계공학부 박사 2차)은 중앙유도회의 매력을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중앙유도회의 매력은 모든 부원이 진심으로 유도에 미쳐 있다는 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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