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hammer_good_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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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과 무관한 피해를 낳기도 
이젠 합리적이고 건강한 응원을 할 때


팬심, 가장 순수한 마음이자 헌신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팬’이라 부르며, 일반적으로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빠진 사람을 가리킨다. 팬의 규모는 점점 커져 팬덤을 형성했고 그들만의 고유문화를 만들어갔다. 언제나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할 것 같았던 팬 문화. 그러나 그 속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팬은 그저 소비자? 
  지난 5월 식품 제조업 기업 ‘팔도’는 남자 아이돌 그룹 ‘2PM’ 멤버 준호의 팬 사인회 이벤트를 진행했다. ‘팔도’와 ‘비빔면’이 적힌 두 가지 포토 카드를 조합해야 응모할 수 있었던 팬 사인회를 위해 다량의 라면 번들을 구매해야 했다. 일부 팬들의 SNS에는 기업의 과한 상술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팬덤 마케팅은 과도한 소비를 유발하기 쉽다. 일부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는 다양한 버전의 앨범과 랜덤 포토 카드 등을 출시하곤 한다. 한 애니메이션 굿즈샵에서는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랜덤으로 특전을 배포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고, 스타벅스는 시즌마다 ‘한정 판매’ 굿즈로 해당 브랜드를 애용하는 소비자를 유혹한다.  

  이은희 교수(인하대 소비자학과)는 과한 팬덤 마케팅이 불러올 수 있는 역효과를 비판했다. “팬덤 마케팅은 사행성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과한 경우 오히려 큰 반발을 초래할 겁니다. 저급한 돈벌이 문화만을 좇는 기업을 향한 강력한 항의는 당연한 거죠.” 

  나의 사랑이 지구를 아프게 한다니 
  팬들은 종종 가수의 음반 성적을 올리거나 팬 사인회 응모를 위해 앨범을 대량 구매한다. 음악차트인 써클차트에 따르면 지난 7월, 한 달 치 실물 음반 판매량(1~400위 합산)이 1천만 장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는 2010년 써클차트가 음반 판매량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초다.  

  그러나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실물 음반은 재활용이 어려운 재질로 만들어진다. 앨범 제작 시 컨셉에 따라 염색 용지를 사용하는데 재활용을 위해서는 잉크를 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포토 카드는 구겨짐 방지 및 방수를 위해 양면 비닐 코팅된 종이로 만들어져 재활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윤지수씨(20)는 앨범을 처리할 때마다 겪는 고충을 토로했다. “음반 버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무리 친환경이라고 해도 수백만 장씩 사면 환경이 오염될 수밖에 없죠. 앨범 구매 시 팬 사인회 응모와 음반 성적에만 반영되고 실물 앨범은 수령하지 않는 선택지를 소속사가 마련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가수의 음원 차트 순위를 올리기 위한 팬들의 단체 스트리밍도 사실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스트리밍할 때 전자기기와 데이터 유통에 사용되는 전송망에서 탄소가 발생해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화, 두 가지 모습 
  팬과 스타가 소통하며 즐기는 문화는 건강한 팬심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그 문화는 양면성을 지닌다. ‘버블’, ‘프라이빗 메시지’ 등의 서비스는 달마다 돈을 지불하고 자신이 구독한 연예인과 소통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서비스가 소통의 강요 혹은 상품화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일부 팬들은 소통의 빈도를 애정의 척도로 삼아 한 달간 온 메시지의 빈도수로 ‘아티스트 줄 세우기’를 한 사례도 있었다.  

  윤지수씨는 사적인 소통 창구가 오히려 스타를 쉽게 비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SNS나 공식 카페처럼 공개적인 공간에서 소통이 이뤄질 때는 팬들이 쉽게 나쁜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일대일 소통 공간이 생기면서 아무래도 비방하는 말을 하기가 비교적 쉬워졌죠.” 

  애정과 위법의 갈림길에 선 
  소비자를 넘어 생산자가 된 팬들은 직접 굿즈를 제작해 홍보에 기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법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성현 변호사는 비공식 굿즈 제작이 법적 처벌 대상에 속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타인의 저작물을 동의 없이 굿즈 제작에 이용하는 행위는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겁니다. 로고 등이 상표로 등록돼 있다면 상표권 침해에도 해당하죠. 이는 징역이나 벌금 등 형사처벌 대상으로 권리자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할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와 팬이 즐거움을 나누는 콘서트에도 문제점은 존재한다. 바로 리셀러(reseller)다. 티켓 원가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재판매하는 이들은 팬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 안성현 변호사는 올바른 공연 관람 문화를 위해 팬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매 행위는 아주 예외적으로 「업무방해죄」나 「경범죄 처벌법」 위반이 적용되기에 대부분 형사처벌이 어려워요. 티켓을 대량으로 확보해 판매하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예매처 또는 한국콘텐츠진흥원 대중문화예술 종합정보시스템으로 신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올바른 공연 관람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난 8월 이담 엔터테인먼트 측은 아이유 콘서트 <The Golden Hour : 오렌지 태양 아래> 티켓 예매에 있어 리셀러에 대한 강경 대책을 밝힌 바 있다. 티켓을 재판매하는 자는 팬클럽 회원에서 제외하고 가수의 유료 공연에도 블랙리스트로 올린다. 또한 유료 팬클럽 운영 시 영구히 제명 처리할 것이라 공지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사랑에는 늘 어느 정도 광기가 있다. 그러나 광기에도 늘 어느 정도 이성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죄가 아니다. 다만 과도하면 의도치 않은 피해를 낳을 수 있다. 기업은 팬을 존중하는 마케팅을, 팬은 합리적 소비를 통해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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