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동전은 사실 앞면, 뒷면이라는 양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양면성을 띠는 것이 많습니다. 동과 서, 흑과 백, 위와 아래. 문화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문화예술을 보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죠. 이번 주 문화부는 ‘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특정 대상을 열렬히 응원하는 그들의 규모는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더욱 적극적인 주체로 나아가고 있죠. 행복과 웃음만 가득할 것 같은 팬 문화, 그러나 우리는 그 안의 불편함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나와 같은, 또는 나와 다른 생각이 담긴 ‘팬’ 이야기. 한 번 읽어보실까요. 권지현 기자 rnjswlgus1103@cauon.net

 

일러스트 @hammer_good_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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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동경에서 능동적 주체로 
팬덤의 선한 영향력은 무한히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을까. 관심 있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 영화를 꼬박꼬박 챙겨보며, 아끼는 캐릭터가 그려진 굿즈를 수집하면서 둘도 없는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그렇게 우리는 늘 무언가의 팬(fan)이었다.

  사랑밖에 몰랐던 바보에서 
  팬은 파나틱(fanatic)의 준말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했으나 점차 어떤 대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저급문화라 여겨지기도 했지만 점점 대중문화를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주체적 존재로 비춰졌다.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은 사회적 인식이 바뀜에 따라 팬의 존재도 긍정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 무렵부터 일부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을 연구했고 이를 한국 팬덤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팬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에 관심을 가지며 인식과 담론도 변화하게 된 거죠.”

  고정민 교수(홍익대 문화예술경영전공)는 팬이 적극적인 생산자로 거듭나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온라인이 발달하면서 쌍방향 교류가 가능해졌어요. 팬들끼리 덕질, 기부 문화 등에 관해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 거죠. 또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온라인상에 잘 조성돼 있어서 이젠 생산자의 역할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개인으로 활동하던 팬들은 집단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는데 ‘세력 범위’를 뜻하는 접미어 덤(-dom)과 팬이 합쳐진 ‘팬덤’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팬덤은 특정 대상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그들만의 팬 의식을 만들어내 특유의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고정민 교수는 팬덤을 통해 소속감과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성장 중인 청소년은 굉장히 불안해요. 이때 어딘가에 소속됨으로써 위안을 얻고 자신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또한 스타와 동일시함으로써 노래 등 자신이 못하는 영역에서 대리만족도 느끼게 되죠.”

  좋아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일부 팬은 좋아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더 재밌는 방식으로 매력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남자 아이돌 그룹 ‘세븐틴’을 좋아하는 권유나씨(21)는 팬이 만든 2차 창작물을 보고 더욱 빠져들었다고 이야기했다. “<GOING SEVENTEEN>이라는 자체 콘텐츠가 있어요. 이를 팬들이 짧은 영상, 캡쳐 사진 등으로 꾸준히 홍보하면서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 보게 됐죠. 저처럼 노래와 무대만 즐기던 사람들도 세븐틴이라는 그룹을 좋아하는 계기가 된 거예요.”

  강신규 연구위원도 팬의 2차 창작물이 하나의 홍보 수단으로서 영향력을 지닌다고 언급했다. “이제는 팬이 만든 2차 창작물도 독창성을 인정받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또한 댓글 등 사람들의 반응도 또다른 콘텐츠가 되죠. 이러한 콘텐츠로 광고나 마케팅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홍보 마케팅의 역할을 넘어 산업의 발달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고정민 교수는 팬이 산업 속 초기 수요자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팬들은 가수가 새 음반을 출시하자마자 구매하죠. 홍보가 덜 된 상황에서도 초기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겁니다. 또한 팬은 테스트 마켓으로서 피드백 역할도 합니다. 이후 다음 제품을 만들 때 팬들의 의견을 고려한 수정 사항을 반영하면 긍정적 여론이 조성되기에 일종의 선순환 과정을 거치는 거예요.”

  팬덤으로 세상에 뻗어나가다 
  팬이 특정 대상만을 위해 활동한다는 건 이제 옛말이다. 현재 다양한 팬이 사회 곳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 예시로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의 이름으로 기부금을 전달한다. 지난 4월 홀트아동복지회에 애니메이션 <아이돌리쉬 세븐>의 팬이 작품 속 캐릭터 ‘요츠바 타마키’의 생일에 맞춰 기부금을 후원하기도 했다.

  권유나씨는 ‘레떼아모르’라는 가수 그룹의 팬으로 활동할 당시 수재민 피해를 돕기 위해 기부에 참여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2020년에 장마, 폭우로 피해입은 사람들을 위해 팬들이 마음을 모아 ‘수재민 돕기 모금’을 직접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팬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여자 아이돌 그룹 ‘여자친구’를 응원한다는 김도겸씨(20)는 스타가 참여한 공익 캠페인을 통해 팬도 선한 영향력을 주기 시작했다는 입장이다. “당시 여자친구 멤버 중 한 명이 유기 동물 기부 캠페인에 참여하자 팬들도 유기 동물에 대해 관심갖게 됐어요. 또한 수돗물홍보협의회의 ‘착한물 캠페인’에서 수돗물 송도 불렀었죠. 이를 통해 팬들도 환경 보호에 더 참여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팬덤. 강신규 연구위원은 팬덤 양상의 다양화에 관해 말했다. “팬덤의 양상이 매우 입체적으로 변화할 거예요. 특정 연령대나 성별의 전유물을 벗어나 다양한 영역에서 팬이 등장하게 될 겁니다.”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인식도 있다. 고정민 교수는 팬덤이 만들어갈 고유의 문화를 이야기했다. “미래에는 글로벌 규모의 팬덤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할 거예요. 하나의 하위문화가 주요 문화 트렌드로 거듭날 가능성이 펼쳐지는 겁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바라보기만 했던 팬은 이젠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이들은 더 뜨겁고 활발히 활동할 것이다. 팍팍한 삶 속에서 무언가에 열광하는 그들이 세상을 한층 더 밝게 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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