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붓을 들고, 글을 쓰고, 곡을 연주한다. 이젠 상상 속이 아닌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프로그램에 원하는 주제, 스타일 등을 입력하면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작품이 나온다. 그러나 신기함도 잠시 무작위로 찍어내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것은 예술가인가, 아니면 대량 생산 기계인가. 

사진출처 요한 세르프트 홈페이지
사진출처 요한 세르프트 홈페이지

   창작을 학습하는 기계 
  AI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특히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에 기반해 예술을 창작한다. 인간이 설정한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하고 기존 데이터에서 특정한 유사성과 패턴을 발견해 그를 토대로 작품을 만든다. 정해진 알고리즘 속에서 매일 다른 작품을 탄생시키는 AI는 새로운 창작을 하는 존재일까?

  이요훈 IT 칼럼니스트는 AI가 만든 예술 작품에서 독창성을 찾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예술은 모방과 응용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요. AI가 만드는 작품은 결국 제품에 해당하죠. 과거 미술이나 음악, 글 등의 패턴을 분석하고 그 패턴을 새로운 재료에 응용합니다. 색다르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독창성이 있다고 볼 수 없어요.”

  강우규 교수(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는 AI가 예술 작품을 창작한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AI는 인간의 창작 의도와 구상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따라서 AI의 행위는 창작이라기보다 집필에 가깝습니다. 창작은 특정한 의도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을 구상하고 생산하는 행위인데, AI의 행위는 특정한 의도나 구상이 배제된 생산 행위이기 때문이죠.”

  AI 예술가를 창작 주체로서 바라볼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김재인 교수(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는 AI를 창작 주체로 보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감상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합의와 평가에 따라 AI 작품도 창조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요. 반면 창작자의 관점에서 AI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불쑥 생겨난 것이라 볼 수 있죠. 따라서 AI가 창작 주체가 되기는 어려워요.”

  정의철 교수(서울대 디자인과)도 AI가 아직 인간의 작업을 위한 도구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언급했다. “AI가 인지적 판단 능력이 있는 독립된 자아에 도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딥러닝(사물이나 데이터를 군집화하거나 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을 통해 인간이 했던 창작 활동을 확률적으로 추론해서 적절한 결과를 추천해주는, 좀 더 진화된 형태의 도구인 거죠.”

  네가 그린 그림, 내 그림 
  인간이 입력한 데이터 속에서 AI는 시와 그림, 소설 등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AI는 작품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허성욱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현행법상 AI가 권리 주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바라봤다. “민법상 기본적으로 권리와 책임의 주체는 사람이에요. 현 법적 토대에서는 AI가 저작권자가 되는 게 불가합니다. 왓슨과 같이 AI 기술을 보유한 회사 법인이 권리를 가지는 형태가 되는 거죠.”

  2020년 12월 21일 주호영 의원 등 11인은 AI가 제작한 창작물 보호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안했다. 현행법상 AI 저작물의 명확한 규정이 없어 AI 관련 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의안원문에는 ‘“인공지능 저작물의 저작자”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하여 저작물을 창작한 자 또는 인공지능 저작물의 제작에 창작적 기여를 한 인공지능 제작자·서비스 제공자 등을 말한다’고 돼 있다.

  창작물 책임 여부에 관한 논의도 있다. 예술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AI 예술에서도 나타나진 않을까? 강우규 교수는 데이터에 따른 표절 문제에 관해 설명했다. “AI 예술의 표절이 있다면 학습 데이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합당한 사용료를 지불하고 구축한 데이터를 학습한 후, 그 데이터를 명확히 공개하는 행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표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거예요.”

  AI 저작물 문제 발생 시 허성욱 교수는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AI의 학습, 연산은 그 배후에 있는 사람을 통해 설계된 거예요. AI의 판단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인간의 일이죠. AI로 만든 저작물에 대해 법률적 위헌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 귀속 주체는 알고리즘을 설계한 사람일 수도, 데이터를 선별해서 피드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겁니다.”

  AI와 인간이 함께 걸어갈 길 
  인간 예술가가 할 일이 없어지진 않을지, 예술계로 진출한 AI를 보며 고민에 빠질 수 있다. 김재인 교수는 공동 작업의 인원이 줄어들 수 있다고 예측했다. “AI를 활용하면 생산성이 매우 증가하므로 기존만큼의 보조 작가가 필요할지는 의문이에요. 많은 수작업을 요구했던 분야는 조금의 보조 인력만 있어도 AI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죠.”

  그러나 AI 예술이 인간의 예술을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정의철 교수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디자인 분야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AI가 독창성, 창의성을 요구하지 않는 일부 예술이나 디자인 분야를 대체할 수 있을 거예요. 현재 존재하는 결과물을 조합하는 디자인은 AI가 훨씬 잘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기존에 없던 인식, 해석에 기반한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해야 한다면 그것은 인간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을 겁니다.”

  AI가 예술을 정복할 것인가, 인간이 예술을 지킬 것인가. 이 질문을 넘어 이제는 상생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볼 때다. 박평종 교수(중앙대 인문콘텐츠연구소)는 AI를 예술에 있어 한층 나아간 기술로 활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오래전부터 예술가는 기술을 창작에 활용해 왔어요. AI는 그런 기술 중 하나죠. 좀 더 진일보한 기술로 받아들여 예술가가 적극 활용한다면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예술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해요.”

  예술 속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AI는 아직 부족하고 불안정한 부분도 많다. 싹이 얼마나, 어떻게 자라날지는 인간의 손에 달렸다. AI 예술의 싹이 온전히 자라나도록 기술, 법 그리고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보자. AI 예술가와 인간 예술가가 함께 높이 뻗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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