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문화예술 향유를 미뤄두곤 합니다. 감상의 순간이 찾아와도 무심하게 등을 돌리기도 하죠. 이번 학기 문화부는 문화예술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감성’을 전해 가슴 속에 큰 울림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이번 주 문화부는 예술의 여러 가치 중 ‘치유’ 앞에 멈춰섰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와 헤르만 헤세, 두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만나고 왔는데요. 예술이 그들에게, 또 우리에게 건네는 치유적인 힘을 떠올리며 다 같이 마지막 감성 스위치를 딸깍- 올려볼까요? 이토록 위로가 되는 진한 감성의 세계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서정 기자 sinceresseoj@cauon.net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서 전에는 갖지 못했던 색채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주 거대하고 강력한 어떤 것이었다.” -1882년 8월, 빈센트 반 고흐

많은 이들은 빈센트 반 고흐를 비운의 화가로 기억한다. 그의 그림을 보다 보면 그 속에 드리운 짙은 고독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고흐의 작품이 지닌 의미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의 손끝에서 태어난 태양과 별, 나무와 자신의 모습까지. 강렬한 색채와 특유의 붓 터치는 그림을 향한 그의 치열했던 고민과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캔버스에 깃든 반 고흐의 흔적을 따라 그가 전하는 예술의 힘을 탐색해본다.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기에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1884년 10월, 반 고흐

  반 고흐는 스스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둡고 추운 불모의 시기였다고 말했다. 1853년 네덜란드 준데르트에서 성직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예술과 맞닿아있는 삶을 살았다. 한때 목사를 꿈꾸기도 했지만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프랑스에서 화상으로 일하던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지원을 받아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러나 화가로서 그다지 큰 명성을 떨치지 못했고 살아생전 팔린 작품은 단 한 점에 불과했다.

  짙어져 가는 어둠 속에서도 그림에만 몰두한 반 고흐. 그가 끝까지 손에서 그림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김선희 교수(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 표현예술치료학과)는 반 고흐에게 그림은 자연스러운 존재였을 거라고 설명했다. “반 고흐는 테오에게 그림이 다른 무엇보다 훌륭한 기분전환이 된다는 내용의 편지를 쓰죠. 우울하고 힘들지만 그림을 사랑하고 생에 대한 의지가 있던 반 고흐에게 그림은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을 거예요.”

  이성복 교수(부산대 미술학과)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지닌 효과에 관해 논했다. “예술 창작 과정에서 집중은 다른 생각을 모두 잊게 만들어요. 다만 반 고흐가 치유를 위해서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그에게 선택할 길이 예술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온 힘을 다해 그림에 스스로를 내던질 수만 있다면 최선의 치료책이 될 것이다.”라는 반 고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불안을 잊기 위해, 때론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자신의 심정을 붓끝에 담았다.

  반 고흐가 당신에게 건네는 말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1882년 7월, 반 고흐

귀를 자른 후 파이프를 문 자화상, 1889. 반 고흐의 불안정한 내면이 강렬한 원색대비로 두드러진다.
<귀를 자른 후 파이프를 문 자화상>, 1889. 반 고흐의 불안정한 내면이 강렬한 원색대비로 두드러진다. 사진출처 다음 백과

  반 고흐는 화가로 활동한 10년 동안 습작을 포함해 250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 특이한 점은 그가 작품과 함께 많은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반 고흐의 작품은 우리에게 다가와 생생하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때로는 정면, 때로는 무표정으로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40여 점에 이르는 자화상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한 결과로 보인다.

  김선희 교수는 자화상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자신을 직면하고 수용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자화상은 그림을 통해 내 안의 여러 모습을 객관화하는 과정이에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들여다보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화폭에 옮기는 일은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자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죠.” 반 고흐가 남긴 편지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아는 일이 어렵다고 말하고 나는 그것을 믿어. 하지만 자신을 그리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야.”라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그에게 자화상은 끊임없이 내면을 탐색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반 고흐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남프랑스 아를에 있는 공동 작업실에서 폴 고갱과 함께 생활했으나 잦은 의견 충돌로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를 보낸다. 심지어는 자신의 귀를 자르기까지 하고 정신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럼에도 반 고흐에게는 그림이 전부였다.

별이 빛나는 밤, 1889. 반 고흐는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거친 선들과 빛나는 별의 소용돌이를 통해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표출했다. 사진출처 다음 백과
<별이 빛나는 밤>, 1889. 반 고흐는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거친 선들과 빛나는 별의 소용돌이를 통해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표출했다. 사진출처 다음 백과

  이 시기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하늘을 수놓으며 빛나는 별들이 어지럽게 느껴진다. 별빛조차 번지게 하는 거대한 바람과 함께 하늘 위로 타오르는 듯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인다.

  <별이 빛나는 밤>의 배경을 알면 그림의 표현 의도를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김성운 교수(삼육대 아트앤디자인학과)는 당시 반 고흐가 살았던 도시의 특징이 그림에 나타나 있다고 전했다. “아를에 가면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인 ‘미스트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게 불쾌한 바람인데다가 실제로 머리를 아프게 할 수 있거든요. 반 고흐의 경우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기에 작품처럼 모든 것이 뒤틀리고 구불구불하게 보일 수도 있는 거죠. 또한 그림 아래로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 준데르트의 모습이 보이는데, 고향에 대한 향수도 엿볼 수 있습니다.”

  우정아 교수(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는 반 고흐의 편지 내용을 통해 작품을 분석했다. “지도에 그려진 수많은 점처럼 반 고흐는 밤하늘의 별을 하나의 장소로 바라봤어요. 다른 도시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별을 사랑하던 그가 밤하늘을 관찰하며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게 아니었을까 상상해 볼 수 있어요.”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화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추수를 앞둔 삶을 표현한 작품이다. 자신이 느끼는 죽음의 이미지를 어두운 황색 밀밭에담은 반 고흐. 빈 도화지 앞에 선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화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추수를 앞둔 삶을 표현한 작품이다. 자신이 느끼는 죽음의 이미지를 어두운 황색 밀밭에담은 반 고흐. 빈 도화지 앞에 선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별이 빛나는 밤> 속 별들이 선명한 노란빛을 띠는 반면 비교적 탁하고 어두운 노란색을 사용한 그림도 존재한다. 1890년 7월, 반 고흐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그린 작품 중 하나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다. 노란 밀밭 위로 어두운 먹구름이 한없이 깔려있고, 앞에 보이는 세 갈래로 나뉜 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김선희 교수는 미술치료사적 관점에서 해당 그림을 해석했다. “이렇게 지평선이나 수평선 너머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대한 그림은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작품 속 두꺼운 붓 표현과 반복적인 선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리하고 진정하려는 반 고흐의 시도였다고 할 수 있어요.” 당시 반 고흐는 테오에게 극한의 외로움과 슬픔을 그림에 표현하고자 했다고 전하는데, 그의 절망과 고통을 그림이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숨결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 기분을 전환시켜 주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떠들어대는 걸 듣는 일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 1890년 4월, 반 고흐

  지금 이 순간에도 반 고흐의 작품은 우리에게 남아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울림을 준다. 우정아 교수는 반 고흐의 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여러 요소를 가진다고 말했다. “반 고흐는 붓의 움직임이나 색채가 굉장히 감정적인 동시에 보는 사람도 풍부한 감정을 느끼도록 해요. 반 고흐는 여러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고 지금까지도 그의 작품은 한 번도 잊힌 적이 없죠. 이러한 요소들은 사람들에게 좌절의 순간이 와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게 의미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요.”

  김선희 교수는 반 고흐의 작품세계가 각자의 마음과 상태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화가의 의도가 그림에 담겨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은 것 같아요. 특히 반 고흐는 그림을 통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표현했고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도 작품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편지로 남겼죠. 이러한 점들이 결국 반 고흐가 얼마나 그림을 사랑했고 그림을 통해 평온함을 추구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편지 속 이야기처럼 반 고흐의 그림에는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그림에 자신의 영혼과 진심을 바쳤음에도 당시 예술가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반 고흐.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던 그는 마침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예술 그 자체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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